불황 속에 약진한 이케아의 성공 비밀

중저가 조립 가구 전문 매장인 이케아(IKEA)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관련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가구 업계가 긴장하는 반면 이미 해외에서 이케아의 제품을 접해 본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한국 언론의 보도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한국인들에게 아직도 낯선 이름인 스웨덴 기업 이케아가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케아가 가진 경쟁력이나 파괴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60년 전통 깨고 회계장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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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이케아가 ‘DIY 가구’라는 신개념을 도입해 싼값에 실용적인 가구를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소비재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실제로 이케아에서 가구를 구입하면 물건이 집에 도착한 후 이를 일일이 조립해 완성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말하자면 반제품 형태로 최종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대신 가격 거품을 확 빼버린 것이다.

디자인 면에서도 이케아 제품은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렬한 배색 효과와 단조로우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의 가구들은 젊고 실용적인 세대의 감수성과 딱 맞아떨어진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검소함과 모던한 패션 감각. 이케아의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 두 가지는 바로 유럽인들의 몸에 배어 있는 생활 정서와도 맞아떨어진다. 스웨덴 기업 이케아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선풍적 인기를 누린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케아는 이러한 명성에 걸맞지 않게 기업 내부 사정에 관한 한 비공개 원칙을 지켜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순이익 규모를 포함한 핵심 재무 정보를 창업 (1943년) 이후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어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케아가 기업 이익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난해 말부터다. 창업 67년 동안 지켜온 기업 이익 비공개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회계장부를 열어 보인 것이다.

이케아의 2010 회계연도(2009년 9월~2010년 8월) 순이익 규모는 27억 유로에 이른다. 이는 2009년도 실적에 비해 6.1%나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실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년도에 비해 7.7%나 증가한 판매 호조(총 230억 유로)에 힘입은 것이다.

매출의 80%를 유럽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이케아의 글로벌 판매 전략에 비춰볼 때 이는 눈에 띄는 약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유럽 국가 대부분이 이 기간 동안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와 재정 위기 확산으로 소비 침체를 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이 기간에 이탈리아에서 11% 이상의 매출 증가세를 보였고 스페인에서도 전년에 비해 8% 이상 더 많이 팔았다. 중국과 러시아 등 비 유럽권 국가 소비자들에게 이케아 제품이 먹혀들기 시작한 것도 7.7%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케아는 최근 들어 건강하고 스마트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된 일련의 스캔들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러시아 일부 매장에서는 뇌물 스캔들이 터져 고위 임원이 해고되기도 했고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아동 노동과 관련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에 60년 전통을 깨고 재무제표 일부를 공개한 것도 훼손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고육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1943년 이후 줄곧 이케아가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의 1인 영향력 아래 가족 소유 형태의 기업으로 존재해 온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열일곱 살 때 이케아를 창업했다. 이케아(IKEA)라는 독특한 이름이 만들어진 유래를 보면 개인 소유 형태를 고집해 온 이 회사의 배경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IKEA라는 이름은 바로 창업자 이름의 첫 글자와 그가 어려서부터 자라난 농촌 마을의 지명 엘름타리드(Elmtaryd)와 아군나리드(Agunnaryd)의 첫 글자를 각각 따온 뒤 이 4개의 알파벳을 순서대로 조합해 만든 것이다. 그만큼 이 회사에서 창업자 개인과 그 가족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게다가 일부 시장 관계자들은 이케아의 기업 지배 구조가 복잡하고 불투명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례로 이케아의 상표권을 관리하는 이케아 시스템스의 모기업인 이케아 홀딩스는 주요 주주나 의사결정권자의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럽 국가들의 기업 문화에 비춰보면 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론도 있다. 개방형 또는 주주 자본주의형으로 불리는 미국식 기업 시스템과 달리 여전히 일부 유럽 기업들은 근로자와 은행 등 이해관계인들의 참여 하에 오너 중심적 지배 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지배 구조의 투명성과 관련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성장세를 바탕으로 해외 매장을 더욱 공격적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이미 세워 놓고 있다. 이 회사는 2010년 한 해 동안에만 이미 8개 나라에 12개 매장을 새로 연 바 있다.

자원 재활용·포장 간소화에 높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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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1개 매장이 진출해 있는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해 20여 개까지 늘린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중국 시장에서 거둔 성공 사례에 고무됐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글로벌 매출의 5% 안팎에 머무르고 있는 아시아·대양주 시장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국에 이어 한국이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아직까지 손수짜기(DIY) 형태의 가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소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어느 기업이든, 특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나름의 핵심 가치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검소함’이다. 소비재를 생산·판매하는 유통업체가 ‘검소함’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가치는 이케아의 창업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이케아의 발상지인 스웨덴 남부의 스마랜드 지역은 빈곤층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당시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이들에게서 늘 부족한 재료를 갖고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내는 재능을 발견했다.

당시 이 저소득층 주민들이 보여준 손재주와 상상력이 바로 오늘날 이케아의 제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 가치, 즉 ‘저가와 실용’의 원천이 됐다. ‘검소함’을 추구하는 기업답게 자원 재활용, 포장재 간소화 등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이케아의 성공 비밀을 보도하며 미카엘 올슨 최고경영자의 말을 빌려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기업의 매출과 연결되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이케아의 디자이너들은 지난해 3인용 조립식 소파를 보다 효율적으로 포장하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새로운 포장 방식은 똑같은 공간에 이전에 비해 두 배의 소파를 적재해 저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이는 결국 소파 한 개의 가격을 100유로나 싸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DIY 방식으로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 사용하는 가구를 파는 이케아로서는 이런 방식의 비용 절감이 가격 경쟁력과 매출 확대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환경보호 정책이 매출 증대로 연결되고 이를 기반으로 환경 관련 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기업 내 양성 평등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다. 이케아는 200여 명의 임원급 관리자들 중 40%가 여성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이케아는 혁신적 비전을 가진 기업으로 평가된다.

주주 중심형의 미국식 기업 지배 구조로 분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이 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마케팅과 디자인 전략뿐만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성기영 영국 통신원(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sung.ki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