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낙관하기는 일러 보인다. 험난한 앞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4대 금융 메이저인 KB·우리·신한·하나 등이 버티고 있다. 더욱이 농협금융은 건전성 및 수익성 등의 면에서 이들 4개 금융 그룹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 사업 부문의 포트폴리오 역시 앞서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영원한 5등에 머무를 가능성도 있다. 기로에 선 농협금융의 경쟁력을 분석해 본다. 2008년 1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민을 위해 일해야 할 농협이 금융 사업에서 몇 조 원씩 벌어 사고나 치고 역대 회장 등 간부들은 정치하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이권에 개입했다”라며 농협의 행태를 엄하게 질책했다.
당시는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이 농협의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 및 자회사 휴켐스 매각과 관련해 수십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것이 검찰의 조사 결과 밝혀져 떠들썩한 때였다.
농협중앙회는 그동안 신용 사업에 치중해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인 농산물 유통 등 경제 사업은 소홀히 하고 자본과 회계가 사업 부문별로 엄격히 분리되지 못해 경영효율성이 제약된다는 등의 비판이 이어져 왔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나 학계는 1990년대 후반부터 농협중앙회의 신용·경제 사업의 분리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산업과 금융이 분리되지 않음으로써 방만한 투자, 느슨한 심사, 경제 사업 부실의 신용 사업에의 이전 등의 폐해가 주요 지적 사항이었다.
이 대통령의 질타 이후 농협의 사업 구조 개편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다급해진 농협은 2008년 하반기부터 농협중앙회 자체적으로 연구 용역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농협개혁위원회가 건의한 개혁안을 토대로 농협법 개정에 나섰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현재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10일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009년 4월 농협중앙회장의 과도한 권한을 줄이기 위해 회장 직선제와 연임, 임원 인사 추천권을 없애는 내용의 농협법 1차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후 그동안 표류해 왔던 사업 구조 개편안을 마침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금융업계, 농협발 빅뱅에 긴장
이에 따라 신용·경제 사업 분리가 마무리되는 내년 3월이면 자산 규모 230조 원 규모의 금융지주회사(농협금융)가 탄생하게 된다. 자산 규모로 보면 KB·우리·신한·하나은행(외환은행 포함)에 이어 농협금융은 ‘빅5’에 올라서게 된다. 은행만 보면 농협은행(192조 원)은 국민은행(271조 원)·우리은행(240조 원)·신한은행(234조 원)에 이어 4위권이다.
농협은 이번 구조 개편에 따라 우선 중앙회 자회사로 금융 사업을 총괄하는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기존 금융자회사를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신용 사업 중 은행 업무를 분리해 농협은행을 설립하고 공제 사업도 분리해 생명보험·손해보험사도 설립한다.
종합 금융그룹으로 새로 태어나는 농협금융지주는 농업금융회사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시중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조직 형태를 갖춰 시중은행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농협은행은 일반 은행 업무 외에 조합 및 중앙회 자금 지원, 농업 자금 대출 등의 기능도 갖기 때문에 시중은행에 비해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와 함께 지방 구석구석 뻗어있는 영업망을 통해 충성도가 높은 농민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농협의 저력이다.
금융지주회사로 출범하면 출자 한도가 늘어나고 계열사별 고객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등 농협중앙회 시절의 법·제도적 제약 요인이 사라짐에 따라 날개를 달게 된다. ‘유사보험’ 형태였던 공제 사업을 보험업으로 전환하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할 수 있다.
또한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도 기존에 비해 금융지주 체제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농협의 사업 구조 개편과 관련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금융 부문에서 2009년 5000억 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을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고 2020년께에는 3조30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가 설정돼 있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는 농협발 금융시장 지각변동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은행권은 물론 보험·카드·증권업계별로 농협 계열사들이 점유율을 잠식하며 상위권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동차보험 시장 등 그동안 진출하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서도 진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 금융권은 농협발 ‘빅뱅’에 긴장하고 있다.
농협은 금융지주 회사로의 변모를 꾀하면서 프랑스의 협동조합 금융지주인 크레디아그리콜(CA)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농협처럼 프랑스의 협동조합 금융지주인 CA는 자산 규모 세계 6위이자 프랑스 최대 금융 그룹이다.
지난해 7월 김태영 농협중앙회 신용 대표는 “사업 구조 개편에 따라 NH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켜 프랑스 1위 금융 그룹인 크레디아그리콜처럼 국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크레디아그리콜과 같이 성공적인 농업금융을 근간으로 한 종합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 농협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김동환 선임연구위원은 “무엇보다 금융지주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전무한 현 상황에서는 업종별 자회사의 시너지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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