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수입 세단 '3차 3색' 매력 비교
한국의 수입차 시장, 특히 최고급 세단은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BMW 7 시리즈가 나란히 1, 2위를 달리고 있다(그래프 참조). 그러나 지난해 출시된 아우디의 뉴 A8, 재규어 올 뉴 XJ, 폭스바겐 뉴 페이톤은 신차 효과에 힘입어 꾸준히 판매량을 늘리며 선두 그룹을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최고급 세단 ‘3차(車)’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우디 뉴 A8 4.2 FSI 콰트로(노멀 휠 베이스)2010년 1월의 첫 출근길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폭설, 2011년 1월을 강타한 이상 한파는 한국에서 필요한 자동차의 조건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단 눈이 내리면 아무리 최고급 세단이더라도 후륜구동은 ‘먹통’이 되어 버린다는 것.
그리고 섭씨 영하 16도 이하에서 응고되기 시작하는 경유차(SUV가 주로 경유차이므로)도 대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고급 세단 중 휘발유 엔진과 상시 사륜구동을 택하고 아우디는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고급 세단을 타는 ‘사장님’일수록 눈 덮인 비포장도로를 갈 일이 의외로 많을 수 있다. 공장들이 시골길을 한참 들어간 곳에 있고, 또 외지에 별장을 두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 눈 덮인 밤 시골길을 빠져나올 때라도 아우디 A8이라면 든든한 느낌이 들 것이다.
다만 사륜구동 자동차가 빙판길에서 잘 달리기는 하지만, 서는 것까지 잘 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겨울철 사고율이 높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2010년 11월 3일 국내 출시된 아우디 뉴 A8은 올드 모델보다 크고 넓어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의 인상을 결정짓는 풀 LED 램프로 강인한 인상을 강조했다. 다소 여성스러워보였던 기존 모델에서 변화를 준 것이다.
4163cc의 직분사 엔진은 최고 출력 371마력, 최대 토크 45.4kg·m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5.7초로 줄었다. 8단 자동변속기는 시속 70km에서부터 8단으로 항속이 가능하고, 시속 130km까지도 RPM(엔진 회전수)이 2000을 넘지 않아 연비 개선에 도움을 준다.
엔진·변속기와 함께 고속 주행 성능을 개선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는 강화된 ‘보디’다. ‘퓨전 알로이(Fusion Alloy)’로 불리는 새롭게 개발된 알루미늄 복합 자재를 통해 기존 모델 대비 6.5kg를 경량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적 비틀림 강성(static torsional stiffness)은 이전 모델보다 20% 향상됐다. 이 때문에 고속 주행 시 차체의 떨림이 감소해 진동과 소음이 줄어들었다.
뱅앤올룹슨 오디오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실내 습기 제거가 5초 이내에 완료되는 등 고급차로서의 상품성은 뛰어나지만 국내에서 이식한 내비게이션은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더구나 시승차의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롱 휠 베이스가 출시되지 않아 뒷좌석에 VIP가 앉을 정도로 넓지 않고 조수석이 완전히 앞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점 때문에 ‘쇼퍼 드리븐(운전사를 두고 차주가 뒷좌석에 타는 차)’으로의 매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재규어 올 뉴 XJ 5.0SC 슈퍼스포트(롱 휠 베이스)
우선 시승한 차가 재규어에서 가장 비싼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듯하다. XJ 3.0디젤 숏 휠 베이스는 1억2990만 원이지만 시승한 차는 2억 원이 넘는 5.0SC (슈퍼차저) 슈퍼스포트 롱 휠 베이스다.
2억 원이 넘는 차량인 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성능만큼은 화끈하다. 5000cc V8 DOHC 슈퍼차저 엔진과 ZF 자동 6단 변속기의 조합으로 시속 0→100km 가속 시간은 4.9초에 불과하다.
무게도 1960kg으로 2톤이 넘어가지 않는다. 정지 상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풀로 밟으면 강력한 휠 스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밖에서 지켜봤다면 굉음과 함께 연기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값비싼 타이어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짓이겠지만 참기 힘든 유혹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엔진음이다. 시속 80km 이상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엔진 소리와 흡사한 폭발음이 고동치듯 들려온다. 후륜 구동축이 돌아가는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조화를 이뤄 마치 값비싼 스포츠카를 탄 느낌을 준다. 엔진음이 노이즈가 아니라 ‘아트(art)’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실내 인테리어는 갈색 가죽과 고동색 우드 패널이 조화를 이루며 클래시컬한 느낌을 준다. 실내에 쓰인 모든 우드 패널은 한 그루의 나무에서 나온 것을 써 색과 결이 통일감을 이룬다. 이와 정반대로 계기판 전체가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로 이뤄져 속도계와 엔진 회전계는 그림으로 표시된다. 운전하는 것이 마치 전자오락을 하는 듯하다. 클래식과 하이테크의 완벽한 조화다.
값비싼 차답게 오디오도 프리미엄급의 바우어&윌킨스(Bowers & Wilkins)가 적용됐고 총 20개의 스피커가 장착됐다. 롱 휠 베이스 모델이기 때문에 뒷좌석의 다리 공간도 충분히 넓다. 그러나 운전의 재미가 너무 커서 뒷좌석에 앉아만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리지 않을까. 다만 이 고성능의 대가는 낮은 연비와 기름값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폭스바겐 페이톤 V6 3.0 TDI
페이톤과의 에피소드 하나. 고속도로에서 시속 225km로 달리고 있던 중 뒷좌석에서 자다 깬 일행이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숫자를 보고 “저게 지금 속도냐?”라고 물었다. 운전자가 “그렇다”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승객의 잠이 확 깼다는 실화다.
폭스바겐은 페이톤의 차체(섀시) 조립 시 모든 접착 면을 아연으로 도금해 견고함을 강화했다. 대부분의 차들이 경량화를 위해 용접 포인트를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접착제를 쓰는 것과 반대로 간 것이다. 폭스바겐 측에 따르면 페이톤의 차체는 처음부터 시속 300km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이 덕분에 페이톤의 중량은 2300kg으로 꽤 무거워졌다. 시승차는 3.0 디젤 모델이었지만 페이톤 휘발유 모델(배기량 4.2리터, 사륜구동)은 연비가 리터당 6.6km로 꽤 낮은 편이다. 앞서 언급한 같은 조건의 아우디 A8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5리터 엔진의 재규어 XJ보다 낮은 연비다. 그래서인지 페이톤의 판매를 이끄는 주력은 디젤 모델이다. 가격도 가솔린차(1억3790만 원)보다 디젤(9130만 원)이 매력적이다.
최고급 세단에서는 디젤엔진의 소음이나 진동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디젤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다. 폭스바겐의 주력 모델인 골프·파사트·투아렉이 모두 디젤엔진 모델이 주력일 정도로 방음·방진 대책이 확실하다.
게다가 디젤은 정지 상태일 때 소음이 가장 크고 엔진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소음과 진동이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페이톤은 고강성 차체와 디젤엔진, 묵직한 중량감과 사륜구동의 안정감으로 속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조용해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뒷좌석 승객이 시속 220km에서도 속도를 체감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가 K5를 개발할 때 파사트와 알티마의 핸들링을 벤치마킹했다고 알려져 있다. 페이톤은 그 파사트의 상위 모델이고 핸들링 역시 굉장히 편하다. 직진 안정성이 뛰어나면서도 코너 공략에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의외의 발견이다.
두터운 C필러가 ‘견고함’이라는 차의 성격을 말해주듯, 실내 인테리어는 좋게 말하면 보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한 느낌이다. 하이테크적인 감성보다 ‘자동차를 탄다’는 익숙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재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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