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및 기업들의 재산 해외 도피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세율이 낮거나 특정 사업 활동에 조세 감면 혜택을 주는 이른바 조세 피난처 국가들로 돈을 빼돌려 세금을 탈루하거나 재난을 은닉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관세청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조세 피난처로 분류되는 62개 국가와 우리나라 사이의 지난해 수출입 실적은 1382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외환 거래 규모는 무려 2552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국가와의 수출입 실적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30%에서 지난해 16%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외환 거래 비중은 오히려 20%에서 28%로 크게 높아졌다.

또 조세 피난처 국가에서 수입 신고한 금액은 428억 달러였지만 수입 대금 지급액은 1317억 달러로 그 3배에 이르렀다. 실제 나가야 할 돈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심각한 국부 유출 현상을 입증하는 결과다.

국가별로는 영국·싱가포르·홍콩 등의 순서를 나타냈다. 영국은 수출입 비중이 전체의 6%(88억 달러)에 불과한 반면 외환 거래 비중은 무려 32%(828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세청, ‘역외 탈세와의 전쟁’ 선포
국세청은 IT산업발전, 금융거래기법 혁신, 국제거래증가 등 기업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고 고도화, 지능화하는 첨단 탈세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탈세방지센터TF'를 발족하고 8일 부터 업무에 들어 갔다.
/허문찬기자  sweat@  20110208
국세청은 IT산업발전, 금융거래기법 혁신, 국제거래증가 등 기업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고 고도화, 지능화하는 첨단 탈세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탈세방지센터TF'를 발족하고 8일 부터 업무에 들어 갔다. /허문찬기자 sweat@ 20110208
수법도 교묘하다. 해외 현지법인이나 페이퍼 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이용해 단가를 조작하거나 허위 용역비용을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를 몇 단계에 걸친 자금 세탁 과정을 거친 뒤 금융상품이나 실물 자산 등에 투자하기도 한다.

약 1000억 원의 재산을 빼돌리고 430억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최근 기소된 봉제완구 업체 에드벤트엔터프라이즈의 경영진은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소득을 빼돌리고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경유해 스위스 비밀 계좌로 자금을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해외 소득 탈세 혐의로 적발돼 3392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세금이 부과됐던 4개 기업 및 사주들 또한 해외 현지법인과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가공의 투자 손실을 만들며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었다.

불법적 방법으로 재산을 해외 도피시키는 것은 단순히 세금 탈루나 재산 은닉 차원을 넘어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점에서 악질적 조세 포탈 행위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납세 회피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조세 형평주의에도 어긋난다. 또한 우리 경제의 성장 기반까지 훼손되는 만큼 그 어느 사안보다 엄정히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역외 탈세 방지를 위한 노력을 대폭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관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바탕으로 3개월간 정밀 분석을 실시해 불법 외환 유출 여부를 가려내기로 했다.

또 국세청은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벌여 올해 1조 원 이상의 탈루 소득을 찾아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역외 탈세 전담 기구를 신설하는 한편 정보원을 고용해 홍콩을 비롯한 국제금융 중심지 4곳, 상하이 등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역 6곳, 한인 밀집 지역 5곳 등에 대해 현장 정보 수집에도 나서기로 했다.

납세는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할 의무다. 정부가 해외 도피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고 세금을 추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은 물론 해외 거래가 빈번한 개인·기업들의 금융거래, 해외 투자 등을 철저히 점검하면서 탈세를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스위스 등 외국 정부와의 공조 협력을 강화해 필요하다면 은행 비밀 금고 등에 대한 금융 정보를 얻고 공동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체제도 갖춰둘 필요가 있다. 다만 역외 탈세 조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봉구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