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달인’ 스타 CEO들

최고경영자(CEO)는 기본적으로 영업이든 관리든 마케팅이든 혹은 연구·개발(R&D)이든 모든 업무에 능통한 ‘종합 예술가’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CEO든 보다 자신 있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먼저 은행권을 대표하는 CEO 중 영업의 달인을 꼽으라면 김정태 하나은행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1년 하나은행 창립 멤버로 초기 영업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마케팅 팀장’, ‘학습조직’, ‘지점별 주특기’, ‘토요일 미팅’, ‘야간산행’ 등 직원들의 영업력을 끌어내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또 김 행장은 하나대투증권 사장 시절 강력한 영업 드라이브를 통해 제2의 도약을 이끌어낸 CEO로 평가받는다. 은행장 취임 이후에는 격의 없는 의사소통을 위해 은행장실 이름을 ‘조이 투게더 룸(Joy Together Room)’이라고 명명하고 누구나 쉽게 은행장실을 찾을 수 있게 했다.

그는 또 직원들과 무등산·팔공산 등 야간 산행을 즐겨한다. 이 같은 김 행장의 독특한 경영법은 영업 출신 CEO 특유의 스킨십 경영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병덕 국민은행장 역시 은행 내 최고 ‘영업통’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30년에 가까운 국민은행 재직 생활 중 대부분을 영업 관련 현장에서 뛰어왔기 때문이다. 민 행장은 1981년 입행한 후 줄곧 영업 현장에서 뛰어오며 2007년 경서지역본부장·남부영업지원본부장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개인영업그룹 부행장으로 일한 뒤 2010년 행장의 자리에 올랐다.
[영업직의 재발견] ‘현장에 답 있다’…조직 장악력 탁월
은행권, 영업통 전성시대 맞나

영업 출신답게 민 행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그는 작년 8월 취임 후 수시로 전국 영업 현장을 돌면서 직원들을 격려해 1년여간의 경영 공백으로 위축됐던 영업력을 단기간에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 행장은 영업 현장의 경험을 상품 개발에 접목해 새로 출시한 신상품도 잇따라 히트시키고 있다.

증권업에서는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이 소문난 영업통이다. 최현만 부회장은 이른바 ‘박현주 사단’으로 분류되는 미래에셋의 창업 공신이다. 옛 동원증권 서초지점장을 지내면서 탁월한 영업력을 보이다가 지난 1997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함께 미래에셋 창업을 위해 동원증권을 떠났다.

박 회장과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이 자산운용에 집중했다면 최현만 부회장은 직접 발로 뛰는 경영을 통해 능력을 발휘하며 ‘미래에셋’ 돌풍을 이끌었다. 특히 그의 ‘337 경영’은 영업 달인만이 가질 수 있는 행동 지침이다. 하루 3개 지점에서 3명의 고객을 만나고 70%의 힘을 현장에 쏟는다는 것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역시 영업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CEO다. 유 사장은 과거 ‘제임스 유’로 불리던 한국 주식 영업담당 세일즈맨이었다. 영업맨으로 활동 당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전설의 제임스’다.

지난 1992년부터 1999년까지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당시 국내 증시 하루 전체 거래량의 5%를 혼자 담당한 기록을 세웠다. ‘전설의 제임스’ 역시 이 당시 붙여진 별명이다.

보험권에서는 황우진 푸르덴셜생명 인터내셔널 최고마케팅책임자가 영업의 달인으로 꼽힌다. 지난 1990년 인사부장으로 푸르덴셜에 입사한 황 전 사장은 푸르덴셜생명 한국법인이 시장 철수를 고려할 만큼 상황이 어렵던 시절 직접 영업 활동에 뛰어들었다. 영업을 하면서 황 사장은 무려 3번이나 최우수 지점장으로 선발될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지난 2003년 사장에 선임된 후 7년간 한국 푸르덴셜생명을 이끌어 온 황우진 전 사장은 올해 초 탁월한 영업 능력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푸르덴셜 인터내셔널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옮겼다.

삼성전자·현대차 CEO ‘눈에 띄네’

유통업에서는 최병렬 이마트 사장이 유명하다. 신세계 내에서 그의 별명은 ‘최틀러’다. 한번 결정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본인이 직접 영업 현장을 하나하나 챙기는 ‘현장 경영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1974년 신세계에 입사한 뒤 대형 마트 사업 초창기인 1996년부터 이마트로 자리를 옮겨 분당점·서부산점 등의 점장을 지냈다.

토종 주류 업체인 수석무역 김일주 사장은 낮보다 밤에 더 바쁜 CEO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83년 두산씨그램 입사 후 28년간 주류 영업통으로 뛰어온 그가 거르지 않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장이 되고서도 밤이면 ‘현장 영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업계 최고의 영업통 출신 사장으로 평가 받는 비결이다.

제조업에서는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업맨의 신화’로 불린다. 최지성 부회장은 반도체·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 분야를 두루 거치며 오늘날 삼성전자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기여한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다.

1977년부터 30여 년간 삼성에서만 일해 온 최 부회장은 반도체 해외 영업을 담당하며 14년간 반도체 신화를 일구는 데 일조했다. 그는 2006년 보르도 TV를 앞세워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 품목으로 끌어올렸다. 또 2007년 정보통신총괄 사장을 맡고부터는 다양한 휴대전화 라인업으로 전 세그먼트를 공략하는 이른바 ‘글로벌 플레이어’로 전략을 수정해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냈다.

최 부회장은 세계시장을 휩쓸며 디지털 제품을 판다고 해서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5년 법인이 없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1인 사무소장으로 발령 받은 뒤 1000여 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반도체 기술 교재를 암기한 후 바이어들을 상대했다. 또 알프스 산맥을 차량을 타고 넘어 다니며 부임 첫해 100만 달러어치의 반도체를 팔았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양승석 현대자동차 사장 또한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발로 뛰는 영업통이다. 양 사장은 1977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뒤 20여 년간 현대종합상사의 영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2000년 현대차 해외영업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인도법인장 시절에는 현지 최다 판매 실적을 기록하는 등 현대차에서 손꼽히는 마케팅 전문가이자 해외 영업파로 불린다.

의류업에서는 김진형 남영비비안 사장이 ‘영업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는 대표적인 샐러리맨 출신 CEO다. 란제리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78년 입사, 영업 일선을 뛰었고 영업부장을 거쳐 1996년 국내영업총괄본부장을 맡으면서 의류 유통업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2002년 7월엔 이 회사 최초의 ‘영업맨’ 출신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는 지난 2009년 국내 유통업과 내의류 산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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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영업인의 우상’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영업 사원에서 5조 매출 그룹 오너로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1.07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1.07
전문 경영인은 아니지만 뼛속 깊숙이까지 영업인의 혼을 가지고 있는 그룹사 오너가 있다. 바로 ‘영업의 신’으로 불리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바로 그다.

윤 회장은 1971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윤 회장의 실적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입사 1년 만에 전국 360여 판매원 가운데 실적 1위를 움켜쥐었고 전 세계 최고 판매원에게 주는 벤튼상을 수상했다.

윤 회장 스스로도 ‘판매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공언할 정도로 그는 판매의 귀재다. 웅진그룹이 방문판매의 지존으로 올라선 것도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웅진그룹 매출은 5조2960억 원, 영업이익은 493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