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박충근 기획재정부 인사과장은 얼마 전 금융위원회로 옮길 의사가 있는 직원들을 알아보던 중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위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박 과장은 “예전에는 금융위에서 아무리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도 이쪽에서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며 “이제는 서로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가려서 보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내년 말부터 주요 경제 부처가 모두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로 이전하지만 금융위는 서울에 남는다”며 “그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 부처 세종시 이전을 계기로 금융위가 인기 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그전에는 경제 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 금융위는 직원 수에 비해 업무량이 많다고 알려져 기피 부서로 찍혀 있었다. 그랬던 금융위가 이제는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재정부 직원들까지 가고 싶어 하는 인기 부처가 됐다.

“세종시 이전, 이제는 코앞 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2번째)이 17일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의 영업정지기에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1.02.1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2번째)이 17일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의 영업정지기에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1.02.1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이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인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가 실시한 전입 공고에서는 지원자가 50% 이상 늘기도 했다. 재정부의 한 공무원은 “세종시로 갈 생각을 하면 가족과 떨어져 살 일이나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할지가 걱정이지만 금융위 직원들은 그런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종시 이전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 2년도 더 남은 일이고 그전에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겨 세종시 이전 계획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곧 닥쳐올 일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북한 체제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생겨 갑자기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 한 세종시로 가지 않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더욱이 여성 공무원들의 고민이 크다. 기혼 여성은 남편과 자녀를 서울에 남겨 놓고 떠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 걸리고 미혼 여성은 세종시로 내려가면 자칫 결혼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한다.

여성가족부가 서울에 남게 된 것도 여성 공무원들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정부의 한 여성 사무관은 “비율로 치면 여성가족부의 여성 공무원 비율이 높겠지만 절대 수로 치면 재정부의 여성 공무원이 훨씬 많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세종시 이전이 고민스러운 것은 공무원들만이 아니다. 정부 부처와 함께 이전이 결정된 국책 연구 기관 직원들도 앞날이 걱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 등 17개 국책 연구 기관도 내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세종시로 옮긴다.

세종시 이전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들 연구 기관에서는 인력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 덕분에 서울에 남는 금융연구원과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우수 연구 인력이 몰리고 있다. KDI에서 연구부서장을 지낸 A 연구위원은 최근 금융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고용과 산업 부문을 담당해 온 B 연구위원도 서울 소재 한 대학으로 옮겨 3월부터 강의를 한다.

공무원들과 국책 연구 기관 직원들은 세종시 이전에 대한 반대급부가 없다는 점에도 불만을 갖고 있다. 세종시로 갈 경우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서울에 있는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하는 등 개인적으로 일정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세종시에 건설하는 아파트를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분양가가 평당 700만 원대로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다는 게 공무원들과 국책 연구 기관 직원들의 불만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부채를 안고 있는 LH가 공무원들 대상으로 돈을 벌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