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복수’
수요 공급의 법칙. 상품의 수요량·공급량과 그 가격의 함수관계를 설명한 법칙으로 경제학의 기본 이론이다. 수요량이 증가하거나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가고, 수요량이 감소하거나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내용으로 현 전세 시장에 딱 들어맞는 이론이다.전세 수요는 급증하는데 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시장에서는 전셋값이 어디까지 오를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이다. 2008년 11월만 해도 전세가 나가지 않아 ‘역전세란’을 우려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전세대란을 넘어 그야말로 ‘전쟁’ 수준이다.
전세 물량 부족은 현 정부의 책임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 당시 수도권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기보다 도심의 용적률을 높여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주택정책을 밝혔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뒤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서울 외곽에 신도시에 맞먹는 보금자리주택단지를 짓겠다고 발표하고는 도심을 규제로 꽁꽁 묶어 버렸다.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집값 상승이 두려워 미루는 사이 도심의 주택 공급 물량은 씨가 말랐다. 현재 간간이 나오는 서울 지역의 아파트 물량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때 작품이다. 전셋값 사상 최고가 돌파
전세는 수요에 탄력적으로 움직인다. 공급이 조금만 줄어도 전셋값이 큰 폭으로 오른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세난은 순전히 공급 부족 탓이다.
서울 시내에 대규모로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물 건너갔다. 그 여파로 전셋값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올랐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의 전셋값 상승률은 평균 7.1%로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뛰기 시작했던 2002년(10.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권 전셋값은 6.3%, 서울은 6.4% 상승했다. 지방은 아파트 공급 부족에 따른 수급 불균형으로 부산이 13.7%, 대전은 15%나 치솟았다.
전셋값을 단지별로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울은 이미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강남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전셋집 잡기에 혈안이다. 도곡 렉슬 109㎡형은 지난해 봄 5억5000만 원에서 6억5000만 원으로 1억 원(18%)이 뛰었다.
일원동 한신아파트 115㎡는 3억7000만 원으로 지난해 전고점(3억2000만 원)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잠실동 리센츠 109㎡는 2008년 봄 입주 당시 2억5000만 원이었지만 현재는 배가 오른 5억 원에 전세가 나와 있다.
이마저도 물량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의 얘기다. 강북도 마찬가지다. 도봉구 방학동 한양아파트 102㎡ 전셋값은 지난해 1억2000만 원에서 올해 1억5000만 원으로 무려 25%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시장의 복수’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도심 주택 공급을 소홀히 한 탓이라는 것이다. 올해 전국의 입주 물량은 최소 35%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올해 전셋값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로 시장을 대체하려고 하지만 이럴수록 시장의 복수는 가혹해질 뿐이다.’ 로마 시대의 말이지만 한국의 부동산 시장과 딱 들어맞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셋값 상승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문권 편집위원 m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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