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걸그룹, ‘삼성’과 닮았다?
‘친근한 한국 vs 불편한 중국.’요즘 일본인이 느끼는 한중 양국에 대한 상반된 온도 차이다. 실제 생활 체감으로 보면 확실히 한국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반면 중국은 영토 분쟁 심화로 한층 불안해졌다. 주역은 ‘K-팝(한국 노래)’이다. 식을 줄 모르는 일본 속 한류다.
한류는 크게 3세대로 나뉜다. 1세대는 한류 탄생의 계기였던 드라마 ‘겨울연가’에 열광한 ‘아줌마 부대’다. 2세대는 이후 진출한 가수·탤런트의 개별적인 활동 시기로 요약된다. 가수 보아가 대표적이다. 반면 3세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2010년 들어 물밀듯 밀려든 한국 걸그룹이 3세대 한류 열풍의 주역들이다.
한국 걸그룹의 인기는 대단하다. ‘소녀시대’는 일본 데뷔 1년도 안 돼 돌풍에 가까운 신드롬을 확산하고 있다. TV를 켜면 낯익은 한국 걸그룹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지난해 여름 이후 방송 빈도도 부쩍 늘었다.
길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환승 역세권인 시부야 전철역의 벽면 광고판에는 ‘소녀시대’의 전신 포스터가 걸려 있다. 옥외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한국 걸그룹의 뮤직 드라마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웬만한 노래방엔 책 한 권을 따로 묶어 K-팝을 소개한다.
걸그룹으로 대표되는 한류 3세대에 관한 일본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단, 과거 한류와는 느낌이 다르다. 한류 1~2세대가 인물 위주의 관심 표명이었다면, 3세대는 콘텐츠 위주의 비교 우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래를 그대로 들고 와 가사만 일본어로 바꿨는데도 대박을 내고 있다. 주간 동양경제는 “일본에 정착한 한류가 이젠 여성 그룹의 달라진 도전으로 새로운 파도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인기는 수치로 확인된다. “소녀시대, 한국 급성장 기업과 닮았다”
지난해 8월 11일 발매된 5인조 ‘카라’의 싱글 앨범은 3주 만에 10만 장이 팔렸다. 악수 이벤트에선 ‘카라’를 보려고 모인 팬이 1만 명에 달해 4차례에 걸쳐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카라’가 마련한 깜짝 무대(거리 라이브)에선 구경꾼이 너무 많이 몰려 노래는 한 곡만 부르고 행사를 접어야 했다.
순식간에 3000여 명이 몰려 교통마비·안전사고 등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포미닛’의 게릴라 공연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도 400명 규 모의 이벤트에 5000명이 넘게 몰려들어 화제를 모았다.
걸그룹의 선두 주자는 ‘소녀시대’다. 대형 스타답게 언론은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 성공 여부가 3세대 한류 지속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의 대성공이었다.
그들의 라이브 공연 첫날(2010년 8월 25일) 풍경은 NHK 9시 메인 뉴스로까지 보도됐다. 굵직한 정치·경제 기사를 모두 제치고 소녀시대가 NHK의 특집 보도를 장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첫날 운집한 소녀시대 팬이 2만2000명으로 집계됐을 정도다. 애초 5000여 명만 모여도 좋다고 했던 주최 측(유니버셜뮤직)은 일회성 무대로 준비됐던 행사를 3회로 늘리기까지 했다.
콤팩트디스크(CD) 초판 발매도 10만 장에 달했는데, 이는 일본의 유명 그룹조차 소화하기 힘든 기록으로 알려졌다. 순위 성적도 좋다. 데뷔곡인 ‘지(Gee)’는 지난해 9월 20일 오리콘(싱글 랭킹) 차트에서 단번에 4위에 올랐고 10월 말엔 주간 2위에 랭크됐다. 주간(싱글) 톱3 진입은 해외 여성 그룹으로는 30년 만의 최초라고 보도됐다.
유력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아예 소녀시대를 표지 모델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경제 현상에 천착한 심층 보도를 고집하는 경제 주간지가 외국 여성 그룹을 표지 모델로 내세운 것 자체가 파격이다.
제목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삼성 다음은 여기다’로 뽑으며 한국의 급성장 기업이 ‘소녀시대’와 닮았다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요컨대 ‘소녀시대’의 이미지와 성공 전략이 한국의 신흥 기업의 그것과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본 것.
발군의 품질 능력과 철저한 성과주의 도입으로 엘리트를 육성한 뒤 이를 토대로 처음부터 좁은 국내시장 대신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기사는 내수 침체에 고전 중인 일본 재계가 소녀시대를 벤치마킹해야 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철저한 준비·‘헝그리 정신’이 성공 비결
그렇다면 한국 걸그룹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정리하면 몇 가지로 요약된다. △지속적인 준비 기간 △검증된 실력 △계산된 시장 진출 △히트 상품의 중독성 △철저한 관리능력 등이다. 한국 걸그룹의 완벽한 호흡 실현이 가능한 데는 잔혹할 만큼 힘든 연습 기간에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 길게는 7~8년에 달하는 혹독한 노력이 이후 완벽한 공연 능력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종의 ‘헝그리 정신’이라고나 할까. 이는 가창력과 댄스 실력 등 검증된 실력과도 맥이 닿는다.
당연히 멤버끼리의 호흡도 완벽해질 수밖에 없다. 기술 혁신에 따른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반면 일본의 경쟁그룹인 ‘AKB48’은 좀 다르다. 이들은 높은 수준의 품질보다 존재만으로 충분한 일종의 아이돌 그룹이다.
처음엔 미숙하더라도 점차 성장하는 모습만으로 관객은 좋아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걸그룹은 아티스트에 가깝다. 비주얼은 아이돌인데 상품성은 아티스트이니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울 수밖에 없다.
계산된 시장 진출 포석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변수다. 걸그룹은 대부분 멤버 선정 때부터 세계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댄스와 가창력은 물론 화법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준비한 흔적이 엿보인다.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가 가능한 멤버 구성도 마찬가지다.
해외 진출 때 장벽이 되는 언어적 우려를 오히려 친근함의 수단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콘텐츠의 대중성, 즉 세계 표준 사양의 확보인 셈이다. 서비스 정신도 눈에 띄는 포인트다. 팬 서비스 정신이 높다는 건 중요한 장점이다.
팬과의 눈높이를 맞춰 따뜻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 게 팬들에게 먹혀들었다. 통상 악수만 하고 끝내는 일본 그룹들과 달리 포옹·뽀뽀 정도는 과감히 해주는 눈높이식 팬 서비스에 대한 열광이다.
더듬거리며 일본어로 말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호감 변수다. 이것 역시 관리 노하우에 포함된 의도된 훈련 결과일 수 있다. 이 역시 삼성 등 한국 기업의 인재 관리와 닮은 점이 많다.
-------------------------------------------------------------------------------
돋보기 ‘아홉 명 소녀’의 인기 비결
미끈한 각선미 등 1020 여성 팬에 어필
후지TV는 최근 소녀시대를 다룬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여기에선 소녀시대의 인기 비결을 비주얼을 중심으로 한 3가지로 요약했다. △카피의 법칙 △16 대 9의 법칙 △크로스의 법칙 등이다. 먼저 ‘카피의 법칙’은 인터넷 등 입소문이 보다 효율적으로 확산되는 새로운 도구를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TV 출연으로 밑밥을 던진 뒤 인터넷 등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실현하는데 성공해서다. ‘16 대 9의 법칙’은 HDTV의 확대 보급으로 9명에 이르는 멤버 전원의 진면목을 제대로 확인한 덕분으로 이해된다.
4 대 3의 아날로그였다면 그 해상도가 퇴색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로스의 법칙’은 팔과 다리를 자주 포갬으로써 여성미를 최대한 부각한 안무가 먹혀들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특유의 다리 각선미를 강조한 섹시미가 잘 전달됐기 때문.
그 덕분에 방송은 ‘소녀시대’가 중년 남성이 아닌 10~20대 여성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근감을 내세운 파워풀한 댄스와 빼어난 외모가 동경의 대상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change4dream@naver.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