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안전공사_공기업 경영 혁신 현장을 가다

지난해 3월 18일 행정안전부는 지방 공기업 26곳에 대해 ‘청산’과 ‘통폐합’ 결정을 내렸다. 지방공기업정책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통폐합, 조건부 청산, 자체 경영 개선 등 강도 높은 조치가 내려진 것.

언론도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지방 공기업 부채 문제의 심각함과 심의 결과를 알렸다. 언론이 호들갑을 떤 데는 이유가 있다. 1969년 지방공기업법이 제정된 이후 매년 해당 공기업들의 경영 평가가 이뤄졌지만 실제로 강력한 구조조정 조치가 뒤따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기업 개혁이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기업의 부채 감소와 건전한 재무구조 확립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항상 지적돼 온 문제다. 이명박 정부 역시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주요 의제로 삼았다. 사업 규모가 작고 통폐합이나 청산에도 여파가 적은 지방 공기업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자산 규모 100조 원에서 10조 원대에 이르는 거대 공기업들의 부채 규모가 크게 증가하는 데 있다.
[Business Special] 바꾸고 고치고’…쉼없는 체질 개선
한국전기안전공사, 선진화 모범 사례

국회 예산정책처 ‘공기업 재무 현황 분석’에 따르면 최근 6년(2004~2009년) 동안 22개 공기업의 재무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기업 부채 규모가 129조3546억 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의 82조6966억 원에 비하면 156.42%에 이르는 가파른 증가율이다.

부채 규모 증가에 비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007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공기업의 영업이익은 2004년 대비 3조2115억 원 감소(5조9691억→2조7576억 원)했고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2조8939억 원 감소(5조1973억→2조3035억 원)했다.

더욱이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 등 주요 거대 공기업은 6년간 금융성 부채가 100% 이상 급증했다. 돈을 빌리면 이자가 느는 것은 당연지사. 금융회사에 물고 있는 이자 비용만도 6년간 2조2814억 원(2조1024억→4조3838억 원)이나 늘었다. 이자 증가율만 108.51%에 이른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부채 규모를 줄이고 부실 자산을 처리하는 등 재정 건전성 확보에 힘을 쏟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한국이 위기 돌파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요인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한 기초 체력과 재무 건전성 확보에서 찾는 전문가들도 많다.

실제로 2009년 말 기준으로 공식적인 정부 부채는 359조6000억 원으로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여기에 공기업 부채를 더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앙정부가 관할하는 21개 공기업의 연결재무제표상 총부채는 2009년 말 기준으로 235조1000억 원에 이른다. 공식 정부 부채 대비 65.4%에 달하는 높은 수치다. 공기업 부채는 IMF 정부재정통계편람에 따라 공식적인 정부 부채에서 제외되고 있지만, 공기업 파산 등 우발적 상황에서는 재정 부담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잠재 채무로 분류된다.

공기업의 부채 증가는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개별 공기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공기업이 수익성도 대체로 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08년 이전까지 부동산 경기 호황 등에 힘입어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수익률이 크게 낮아졌다.

이렇듯 공기업 수익성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장기적 수익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 확장에 있다. 공기업의 태생적 한계도 재무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실제로 영업이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스공사나 전력공사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는 정부의 요금 인상 최소화 정책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스공사·전력공사는 2004년 이후 생산 단가의 연평균 상승률이 각각 14.7%, 15.7%였음에도 불구하고 판매 단가 증가율은 8.8%, 1.9%에 그쳤다.

하지만 과감한 경영 효율화와 임금 체계 개선, 신사업 전략 등을 통해 공기업 선진화 모범 사례를 보인 곳도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3선 의원 출신인 임인배 사장이 취임한 2008년 10월까지 적자 규모만 600억 원에 달하는 대표적 부실 공기업이었다.

하지만 2년 만인 2009년 자본금 127억 원으로 자본 잠식 상태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부채비율도 376%까지 낮아졌다. 만성 적자 기업이 신임 사장 취임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돌아선 것이다.

‘1초 경영’으로 흑자 기업 변신

만성 적자 공기업이 흑자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임 사장은 “‘1초 경영’을 통해 스피드 경영을 실천한 데 비결이 있다”고 말한다. ‘공기업은 느리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한 고민 끝에 나온 1초 경영은 단순한 ‘빨리빨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극대화해 고객이 만족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남보다 빠르게 공급한다는 뜻이다. 임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전 직원 회의를 통해 회사의 문제점을 도출해냈고 직원들은 이를 공감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기된 문제점 중 220여 개를 취합해 그중 24가지를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각 부서별로 ‘1초경영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매주 수요일에는 임원 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Business Special] 바꾸고 고치고’…쉼없는 체질 개선
제일 먼저 시작된 혁신 작업은 조직의 슬림화다. 우선 총 정원의 10%를 감축했다(2876명→2587명). 또 13개 본부, 53개의 지사 중 2개 지사를 폐지했다. 임금 체계 개선도 이뤄졌다. 신입 직원의 연봉을 14% 축소하는 대신 채용 규모를 확대해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 동참했다.

간부 직원들의 성과급도 20% 반납했고, 이를 통해 청년 인턴 40명을 새로 고용했다. 민간 기업에선 일반화된 연봉제와 성과급 차등 확대 등도 임 사장 취임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2009년 말을 기준으로 제기된 문제점의 99% 이상이 개선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대적인 조직 정비로 원가절감의 효과를 이뤘다면 다양한 수익 모델 확대는 영업이익 증대에 큰 몫을 차지했다. 공사가 2009년 한 해 동안 협약(MOU)을 맺은 공공 기관 및 기업 수는 722개에 이른다. 협약과 함께 24시간 긴급 출동 서비스인 ‘비즈니스콜 ’제도가 새로 운영됐다.

이전에는 시도조차 되지 않았던 해외 사업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우선 해외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들과 MOU를 체결해 현지에 공동 진출했다. 전기 안전 기술력에 대한 국내 기업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중동·동남아 등지에서는 교육 사업을 통해 국내 전기 안전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 진단 등 전기 안전 컨설팅 사업도 펼쳤다.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전기안전공사가 해외 사업을 통해 얻은 순수익만 30억 원에 이른다.

현재 전기안전공사는 재무 현황에 대한 모든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방만 경영, 무리한 사업 확대, 과도한 임금 체계 등으로 상징되는 공기업 부실 요인을 과감히 탈피한 전기안전공사는 공기업 경영 선진화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취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