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 노멀
2010년 다보스 포럼에서 집중 논의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인 ‘뉴 노멀(New Normal)’은 세계 최대 채권 투자 기관인 핌코의 최고경영자(CEO) 무하마드 엘 에리언이 주장한 ‘위기 후 전략’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새로운 표준’이라는 뜻의 뉴 노멀은 이후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뉴’가 있으면 ‘올드’도 있게 마련, 수년간 경제 위기를 겪은 사람들은 그동안의 세계 질서였던 ‘올드 노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데서 새로운 표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기존 국제·경제 질서에 대치
미국 주도의 슈퍼파워 경제, 탈규제화, 세계화, 금융 혁신, 신자유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올드 노멀 경제는 짧은 시간 내에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모든 이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 시간문제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장 과열과 거품 경제라는 부작용이 불거지면서 세계경제는 치명타를 맞고 유럽 재정 위기 등 지금도 여기저기서 불안한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뉴 노멀은 올드 노멀과 대치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뉴 노멀이 강조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우선 ‘저성장 시대’를 들 수 있다. 세계경제는 2000년대 들어 고성장을 지속하다가 2007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에 따른 불황을 경험했다. 고용 악화에 따른 소득 정체와 위험 회피 성향 확대로 가계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즉, 부채를 늘리면서 소비를 확대해 왔던 가계가 저축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함에 따라 소비 및 투자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주요국의 재정 정책이 긴축 기조로 전환된 것도 민간의 소비 및 투자를 위축시켜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압박하고 있다.
뉴 노멀은 금융회사의 과도한 위험 투자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 조치도 논의하고 있다. 금융 규제와 감독이 소홀해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는 반성에 힘입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보통주 등 손실 흡수 능력이 높은 기본 자본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미국에서는 2010년 2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기능을 다시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볼커 룰’을 통해 금융 규제의 고삐를 조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편 ‘저탄소 경제’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국제 공조와 자국의 환경 보전을 위해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 규제 강화가 사실상 새로운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면서 기업의 신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있다.
세계 질서도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G2 양극체제와 G20 다극체제가 병존하는 과도기를 맞았다. 중국의 성장으로 미국과 중국의 경쟁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래했고 양국의 시각차가 국제 갈등을 야기하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경제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에너지 환경, 핵무기 확산 방지 등 국제 이슈를 논의할 때 G20이 최고위급 협의 기구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설정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 케인스 경제학파의 주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경제 위기 이전 ‘올드 노멀’ 시기의 과잉을 해소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 등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향후 각국의 경제성장 모델에서 정부의 개입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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