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공작소 박혜성·박희성 대표
얼굴이나 손발의 생김새마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들 중에는 생긴 것과 달리 성격이 서로 정반대일 때가 많다. 천연 비누 공방과 매장인 비누공작소의 대표 박혜성·박희성 자매 역시 그렇다. “제가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비해 동생은 사람을 좋아하고, 또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난히 활발한 성격이었어요.”(박혜성)학창 시절부터 언니인 혜성 씨가 조용히 집에서 만들고 꾸미는 일과 번역 일 등에 재미를 붙였던 반면 동생인 희성 씨는 일찌감치 대학 다닐 때부터 무역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활발한 사회생활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나갔다고 한다. 함께 천연 비누 사업을 시작한 후에는 각기 가장 자신 있는 일을 맡아 일을 꾸려나가고 있다.
“언니가 비누를 구상하고 만들면 제가 마케팅·영업·고객관리를 하는 식이죠.”(박희성) 두 사람이 대표를 맡고 있는 ‘비누공작소’는 현재 청파동 숙명여대 앞에 2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수십여 개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천연 비누를 판매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전시회에 참여해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요 몇 년 전부터는 한류 붐을 타고 있는 일본의 각종 매스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일부러 비누공작소를 찾는 일본인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몇 년 전부터 좀더 본격적으로 수출 길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일본 고객들이 점점 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굳이 수출이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비누공작소 천연 비누의 우수성을 외국에까지 충분히 알릴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이 붙었다고나 할까요?”(박희성)
2003년 비누공작소를 열기 전까지 두 사람은 그야말로 잘나가는 대기업 사원이었다. 대우와 LG, KT와 외국계 회사 등에서 각각 정보기술(IT)과 해외 마케팅 등의 업무에 종사했다. “그렇게 조직에 한 7~8년 계속 몸담아 있다 보니까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박혜성)
MBA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가려고 했다. 유학을 앞두고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들른 외국의 한 서점에서 천연 비누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을 보게 됐다. 그리고 혜성 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비누에 쏟은 열정, 비누로 표현하는 자신감
“처음부터 사업 아이템으로 주목한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에 가깝죠.”(박혜성) 그 길로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에 천연 비누 책과 관련 재료들을 꽉꽉 채워 넣은 후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천연 비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피부 미용에 좋은 재료를 선별하는 일에서부터 배합하고 색과 모양을 내는 일 등 작업 하나하나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번 팔아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믿을만하고 가장 친한 친구인 동생에게 한번 같이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죠.”(박혜성)
어렸을 때부터 농담 반, 진담 반처럼 언젠가 나중에 같이 사업을 하자고 약속했던 사이였다. “마침 일이 되려고 했는지 그때 전직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때였거든요. 다른 회사에 들어가기보다 언니와 함께 일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사업을 결심했죠.”(박희성)
사업을 결심하고부터는 주저할 게 없었다. 의기투합한 바로 그날 희성 씨는 매장 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혜성 씨는 매장에 진열할 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 자매는 앞뒤 재고 자시고를 잘 못해요. 뭘 하나 시작하면 오직 그것만 생각하죠.(웃음) 그때도 그랬어요.”(박희성)
사업 자금은 두 사람의 퇴직금과 유학 준비 자금을 털어서 마련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업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고급 천연 비누 시장이 전혀 형성돼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나에 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로열젤리를 비롯해 한방 약재, 꿀, 각종 허브, 에센셜 오일 등 천연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진 고급 천연 비누는 이렇다 할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힘들어도 더 좋은 비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년이면 몇 차례고 외국을 오가며 더 좋은 허브나 오일 등을 구하기 위해 애썼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장·미술관·전시회 등을 미친 사람들처럼 쏘다니곤 했죠.(웃음) 단순히 좋은 재료로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색이나 디자인에도 많이 신경 써야 하는 게 바로 천연 비누이니까요.”(박혜성)
천연 비누를 쓰고 싶어도 자신에게 맞는 비누를 찾는 게 힘들어 지레 포기하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착안해 누구나 쉽게 비누를 고를 수 있도록 네이밍에도 신경을 썼다.
“예를 들면 엄마들이 쓰면 좋은 천연 비누에는 ‘우리 엄마의 청춘’, 아기들이 쓰면 좋은 순한 유기농 비누에는 ‘우리 아가의 단꿈’, 남성들의 거친 피부를 위한 비누에는 ‘내 남자의 아침·저녁’이란 이름을 붙였죠.(박희성)
그렇게 만든 비누들이 지금까지 총 2000여 종류에 달한다.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많은 종류다. 그 많은 비누를 개발하고 판매하면서 축적된 경험은 이들 자매에게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외국의 그 어떤 고급 천연 비누보다 우리가 만든 게 훨씬 더 예쁘고 더 좋은 비누라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죠. 세상 그 어떤 비누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박희성)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자매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매가 어렸을 때부터 늘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는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지만 한 번 날기 시작하면 나는 게 훨씬 쉬워진다고 하셨어요. 무슨 일을 하든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죠.”(박혜성)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은 정답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후 비로소 이들 자매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인근 백화점의 브랜드 입점 담당자가 이들 자매의 천연 비누 매장을 눈여겨보고 입점을 권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성과가 좋아 또 다른 곳에 입점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명동·코엑스 등에도 매장을 내게 되고 점점 일이 많아지더라고요.”(박혜성) 폭발적인 반응으로 단기간에 매장 수가 6개까지 늘었을 때쯤 자매는 청파동의 매장 2군데를 제외하고 모든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매출이 좋은 데 비해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늘어 감당이 되지 않더라고요. 직원 관리도 힘들고요. 그래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온라인 쇼핑몰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죠.”(박혜성)
온라인 쇼핑몰로의 진출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다. 입점한 쇼핑몰마다 폭발적인 매출을 올렸다. “모 쇼핑몰에서는 전체 1만여 개의 제품군들 중에서 우리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죠.”(박희성)
“온라인 쇼핑몰에 진출한 후 카피 제품들도 많이 생겼지만 우리는 크게 신경 안 써요. 겉모양은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어도 재료나 성분만큼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으니까요.”(박혜성)
“함께하는 이가 있어 도전은 즐겁다”
실제로도 비누공작소의 비누들은 천연 비누 브랜드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은 매출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자매는 조만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려고 한다.
“비누공작소를 시작한 지 8년여가 지났어요. 이제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비스까지 수반되는 새로운 형태의 비누 아이템을 구상할 시점이죠. 그래서 내년엔 언니와 함께 유럽에 갈 예정이에요.”(박희성)
“도전은 쉽지 않겠죠. 하지만 함께하는 친구이자 동료가 늘 함께 있으니 뭐가 무섭겠어요. 그저 지금까지처럼 즐겁게 열심히 할 뿐이죠.”(박혜성) 약력 : 박혜성(왼쪽) 1971년생. 어섬션대(Assumption University) 경영학과 졸업. 대우건설 방콕 현지법인 수주 입찰 관련 마케팅. KT DB와 인터넷 비즈니스 관련 해외 홍보 마케팅. 2003년 비누공작소 창업. 현재 비누공작소 공동대표(현).
박희성 1971년생. 어섬션대(Assumption University) 중국 비즈니스(Business Chiness) 전공. LG 및 외국계 IT 회사에서 해외 마케팅 담당. 2003년 비누공작소 창업. 비누공작소 공동대표(현).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