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브리즈 한다윗 대표

2년 만에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용 애플리케이션 160여 개를 만든 회사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사람들은 앱 개발사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회사 사장은 자신의 회사는 앱 개발사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파는 회사’라고 말한다. 이 회사의 이름은 바닐라브리즈다.

바닐라브리즈는 흔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회사의 규모나 매출 정도는 앱 개발사 수준을 뛰어넘는다. 불과 2년 전 3명이 창업한 이 회사는 30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했고 월매출 40만~50만 원 수준에서 지금은 월매출이 수억 원대에 이른다.

사업 초기에는 애플의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이 주력이었으나 지금은 구글 안드로이드, 삼성 바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폰7 등 다변화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바닐라브리즈를 이렇게 부른다.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맏형 격의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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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지금까지 취재한 스타트업 창업가들과는 좀 다른 경력을 갖고 있었다. 시작은 이 분야 인물에 걸맞게 야후 미국 본사에서 시작했지만 그 이후 경력이 다채로웠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야후 본사에서 일하던 그는 2000년 코카콜라에 입사해 마케팅팀에서 일하다가 2003년부터 M&A부띠끄에서 부동산 자산 평가 일을 했다. 마케팅은 그렇다고 쳐도 부동산 자산 평가는 좀 뜻밖이다.

부동산 자산 평가 일이 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회사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보기술(IT) 분야의 얼리어답터로 활동하다가 구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다시 IT쪽으로 온 것이다. “검색 결과 UI를 컨설팅해 주는 일을 하던 중 함께 일하던 팀과 너무 잘 맞아 같이 창업하게 됐죠.” 한 대표의 설명이다.

간단히 말했지만 그가 창업하게 된 계기는 또 있었다. 마음에 썩 들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그는 건강이 나빠졌는데, 그 와중에 교통사고까지 당해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러면서 그는 ‘청춘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내 페이스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업으로 마음을 굳혔죠.”

한 대표는 UI·UX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그게 2008년 10월 1일이다. 프로젝트를 함께하던 3명이 창업했고 곧이어 2명이 합류하면서 창업진이 완성됐다. 사무실을 구하기 힘들어 아는 선배 사무실에서 신세를 졌다.

“처음 창업할 때는 사실 좀 막막했습니다. 앱을 10개 정도 만들면 그중 하나 정도는 성공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10월에 창업하고 그 다음해 2월 말까지 바닐라브리즈는 9개의 앱을 만들었다. 그때까지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3월에 열 번째 앱이 나왔다. 2009년 3월 4일 아이폰 앱스토어에 출시된 ‘아이건(i-Gun)’은 출시 5일 만에 앱스토어 전체 랭킹 100위에 진입했다. 국내 앱 개발사로는 가장 좋은 성적이다. 그 뒤 아이건은 1년 반 남짓한 기간 동안 650만 건이 다운로드될 정도로 인기 몰이를 했다.

상복도 터졌다. 작년에 출시한 아이건 얼티미트는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하는 모바일 기술 대상을 받은데 이어 올해에는 아이건 슈터가 모바일 기술 대상을 받았다. 아이건이 출시된 이후 바닐라브리즈는 150여 개의 앱을 추가로 더 만들었다. 국내 회사 중 단일 회사로 이렇게 많은 앱을 앱스토어에 올려놓은 회사는 없었다.

아이건은 아이폰의 동작 인식 기능을 활용, 총을 실제로 장전해 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임형 앱이다. 하드코어 게임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앱이다. 그래서 한 대표는 바닐라브리즈는 단순 게임 회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앱 개발사는 더더욱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주는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바닐라브리즈는 ‘소비자 가치에 혁신을 일으키자’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그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해 바닐라브리즈는 ‘클래시컬 뮤직 마스터 컬렉션’이라는 앱을 일본에서 출시했다. 저작권이 소멸된 클래식 음원 1000곡을 하나의 앱에 담았다. 가격은 처음에 999달러로 정했다. 한 곡에 0.99달러씩인 셈이다. 저작권이 소멸됐으니 음원료는 들지 않는다. ‘앱스토어 최고 가격, 최대 음원, 최대 용량’이란 콘셉트로, 이 앱은 일단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이 앱을 출시하면서 바닐라브리즈는 이벤트를 열었다. 한시적으로 1000달러에 육박하는 이 앱을 1달러에 팔겠다고 마케팅을 한 것이다. 이 전략이 일본에서 통했다. 일본에서는 저작권이 소멸된 음악 CD라도 3000~4000엔은 줘야 살 수 있는데 무려 1000곡이 든 앱을 단돈 1달러에 살 수 있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12시간 만에 일본 앱스토어 1위에 올랐습니다. 반응이 엄청났죠.” 한동안 일본에서는 “‘클래시컬 뮤직 마스터 컬렉션’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아이폰을 사야겠다”는 사람들이 대거 생길 정도로 사회적인 이슈가 됐었다.

일본 앱스토어 1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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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브리즈는 철저하게 개인의 경험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데 집중하는 회사다. 한 대표는 기술보다 사람들의 경험이 우선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스마트폰에 기능은 많지만 이것을 기술적으로 설명하고 접근하면 따분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들도 그런 제품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죠. 그냥 아이폰으로 총싸움을 실감나게 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사람들의 경험으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쉬워집니다.”

바닐라브리즈는 아직까지 본격적인 게임보다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앱을 많이 만들어 왔다. 아이건 외에 ‘레인 얼럿(Rain Alert)’이 대표적이다. 이 앱은 미리 설정해 놓으면 비가 올 확률이 50%가 넘을 때 알려준다.

누구나 한번쯤 예고 없이 찾아온 비 때문에 갑자기 편의점에 뛰어 들어가 우산을 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비가 오는 줄 모르고 나갔다가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되돌아간 적도 있을 것이다. 바닐라브리즈의 앱은 이런 소비자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경험을 중시해서일까. 한 대표는 직원들이 매일매일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는 것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다. 1주일에 최소 한 번씩은 제철 과일을 한 박스씩 사서 직원들과 함께 나눈다.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과 함께 외출도 한다. 사람들이 밖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지, 오프라인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함께 겪어보기 위해서란다.

바닐라브리즈가 또 관심을 갖는 것은 플랫폼을 넘어선 비즈니스 모델의 다각화다. 그중에서도 광고 기반의 무료 애플리케이션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 바닐라브리즈는 이미 올 들어 아이건 시리즈의 무료 버전에 시범적으로 모바일 광고를 붙여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하루 매출액 400만 원 돌파, 누적 매출 1억 원을 달성했다. “단발성 애플리케이션보다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앱이나 서비스형 앱은 애드몹(AdMob)과 같은 광고 플랫폼을 이용하면 유료 콘텐츠 못지않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이건 시리즈를 통해 모바일 광고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바닐라브리즈는 리듬 액션 게임 ‘프로젝트 케이(Project K, 가제)’를 광고 기반의 프리미엄 애플리케이션으로 준비하고 있다. 바닐라브리즈는 게임 분야를 독자적인 브랜드로 키울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돈이 되겠지 싶어 한 것들은 의외로 돈이 별로 안 됐습니다. 결과가 처참했죠. 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던 것들은 오히려 큰 수익을 가져다줬습니다. 사업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열심히 하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밤을 새워서라도 즐거운 일을 해야죠.”

임원기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