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경제계 Up & Down

해마다 세밑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가장 상투적인 표현이면서도 널리 회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를 정리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도 어려울 듯싶다.

올 한 해 경제계에도 미처 숨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건·사고들이 벌어졌다. 으레 그렇듯이 새롭게 주목받아 스타덤에 오른 이가 있는가 하면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무대 밖으로 퇴장한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뉴밀레니엄 첫 10년의 마감인 올해 역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위기의 그림자 때문에 경제계의 사정은 더욱 녹록하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들이 정리되며 조금씩 숨통을 틔워가던 경기는 올 5월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발 재정 위기가 불거지며 또 한 번 세계경제의 주름이 깊어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등 재정 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앞 글자를 딴 PIIGS라는 신조어까지 생겨 해당 국가로서는 상당한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국내 경제계에도 뜬 별과 진 별이 등장했다. 새롭게 부상한 이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데 반해 퇴장을 준비해야 하는 쪽에선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SPECIAL REPORTⅡ] 뜨고 진 ‘별들’…실적에 울고 웃다
삼성가(家) 3세들, 최고 ‘뉴스 메이커’

올 한 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재계 인사는 단연 삼성그룹 3세들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장녀 이부진, 차녀 이서현 씨가 그 주인공. 이들은 연말 이뤄진 승진 인사에서 각각 삼성전자 사장(이재용), 호텔신라 사장·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이부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이서현) 등으로 승진했다.

본격적인 3세 경영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로, 이 회장의 ‘젊은 조직론’ 발언이 나온 후 신속히 이뤄져 더욱 화제였다. 더욱이 이부진 사장의 파격 인사가 눈길을 끈다.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전략 전무에서 단숨에 2계단을 뛰어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올랐다.

글로벌 기업의 위상답게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컨트롤타워의 부활도 주목받았다. 이와 관련해 ‘미래전략실’을 이끌어가게 된 김순택 부회장과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도 단연 눈길을 끄는 승진자들이다. 최지성 부회장은 이윤우 부회장의 사임으로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이끌게 됐다.

금융권에선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주목받았다. 지난 6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결정으로 회장에 선임된 어 회장은 7월 13일부터 공식으로 회장에 추대됐다. 어 회장 취임 전 9개월 동안이나 공석이었던 KB금융지주 회장직은 우리금융 민영화 등과 엮여 금융권 최대의 관심사였다.

고려대 63학번인 그는 회장 취임 전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는 등 이른바 ‘친MB’ 성향으로 분류돼 노조와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하며 핫이슈의 주인공이 됐다. 4조6888억 원에 이르는 인수 금액을 들인 김 회장은 이로써 총자산 316조 원의 국내 3위 금융그룹 회장으로 도약하게 됐다.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했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도 눈부셨다. 이 부문에서 주목을 받은 이는 소녀시대·동방신기·보아·슈퍼주니어 등으로 대표되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다.

1995년 기획사를 차린 그는 현재 지분 27.8%를 보유한 대주주 신분이지만, 실질적으로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맡고 있다.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 성공 등 SM엔터테인먼트의 올해 실적은 눈부시다.

대우증권 추정 자료에 따르면 예상 매출은 826억 원, 영업이익도 328억 원에 이른다. JYP와 YG엔터테인먼트 등 시장 빅3 안에서도 단연 출중한 성적이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지난 11월 1일 공시 기준으로 보유 주식의 평가액이 1000억 원을 넘어서 연예인 출신 주식 부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차 없는 책임 경영 퇴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나오는 법. 아이폰4와 갤럭시S 등이 몰고 온 스마트폰 바람은 애플과 삼성전자의 가치를 최고조로 올려놓았지만 반대로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진 기업도 등장시켰다. 변화하는 바람의 속도를 감안하지 못하고 부진을 보였던 대표는 LG전자의 남용 전 부회장이다.

LG전자는 지난 9월 17일 이사회를 열고 남 전 부회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자진 사임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스마트폰과 발광다이오드(LED) 등 차세대 TV 등에서 실기(失期)하며 기업 경쟁력을 깎아먹었다는 문책성 인사다. 휴대전화·TV·에어컨 등에서 글로벌 빅3에 올랐던 LG전자는 올 2분기 영업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젊은 삼성’을 기치로 쇄신된 조직이라면 올드 보이들의 퇴장은 당연하다. 과거 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의 실세였던 이학수 전 삼성전자 상임고문과 김인주 전 삼성전자 상담역은 각각 삼성물산과 삼성카드 고문으로 물러났다.

최도석 삼성카드 부회장도 12월 3일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이로써 과거 삼성을 좌지우지했던 실세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는데, 삼성의 성과 원칙 인사가 반영된 결과라는 게 내부의 시선이다. 최지성 부회장 단독 체제가 들어서며 이윤우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도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았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대외 협력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전 회장,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전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신한금융 3인방도 올해 체면을 구긴 인사들이다. 신한은행이 신상훈 사장을 부당 대출에 따른 배임 혐의, 경영 자문료 횡령 혐의 등으로 고발하면서 불거진 신한금융 사태는 결국 라 전 회장, 신 전 사장, 이 행장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기업 이미지와 신용도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현재 검찰은 라 전 회장에 대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기소할 방침이다.

신 전 사장은 12월 초 전격 사퇴했지만 검찰은 이미 제기된 혐의에 대해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다. 이 행장 역시 고소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행장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상황으로는 신한금융을 이끌어 온 3인방 모두 현직을 떠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지난 7월 13일에는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옷을 벗었다. 5년 9개월의 짧지 않은 행장 재임 시절 동안 국민은행은 국내 리딩 뱅크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순이익 면에서 처음으로 신한은행 등에 밀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 전 행장은 선진국민연대 인사 영입 등 ‘정권 줄대기’ 의혹도 받았다. 지난 2008년 7월 선진연대 후신인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의 유선기 이사장을 경영 자문으로 영입한 데 이어 작년 3월에는 같은 곳 사무총장인 조재목 에이스리서치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던 것.

강 전 행장의 불명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퇴임 후 한 달여 뒤에 열린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강 전 행장은 통화 옵션 상품인 ‘키코’ 판매 책임과 함께 카자흐스탄 BCC은행의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경영전략위원회 보고 없이 너무 비싼 값을 치러 400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과실도 지적받았다.
[SPECIAL REPORTⅡ] 뜨고 진 ‘별들’…실적에 울고 웃다
‘맷값 폭행’ 최철원 결국 구속

재벌은 아니지만 ‘재벌가 친척’이라는 이유로 주목 받은 CEO도 있다. 남모르는 선행 같은 뉴스는 애초에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물류 및 위성 DMB 차량용 단말기 유통, 수입차 병행 수입 판매 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M&M그룹의 최철원 회장은 12월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구속 수감됐다.

최 전 대표는 최종관 전 SKC 고문의 장남이다. 최 전 고문은 최종건 SK그룹 창업자의 친동생이다. 지난 2002년 33세의 나이로 SK글로벌 상무를 거쳐 M&M그룹 회장을 맡아온 최 전 회장은 기업 M&A 과정에 불만을 품은 50대의 탱크로리 운전사를 사무실로 불러 이른바 ‘맷값 폭행’을 한 혐의로 수감됐다.

조폭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야구방망이 폭행 후 맷값으로 2000만 원짜리 수표를 던졌다는 것. 최 전 회장은 이번 사건 외에도 수시로 직원들을 폭행하고, 심지어 사냥개를 동원해 여직원을 위협하는 등 초법적인 작태를 이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기업인들의 별세도 이어졌다. 지난 5월 23일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이 88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타계했다. 고(故)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자의 3남인 김 명예회장은 1943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상과를 졸업하고 1945년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수료했다.

이후 1947년 삼양사에 입사해 1956년 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들어 현 삼양그룹의 주력인 제당업에, 1960년대에 화학섬유 사업에 진출해 오늘날 삼양사의 주축을 일궈낸 주인공이었다.

또 김 명예회장은 양영재단과 수당재단 등의 장학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2만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고 420여 명의 대학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해 왔다. 김 명예회장은 이 밖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금탑산업훈장(1986), 한국의 경영자상(1989), 유일한상(2001) 등을 수상하며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웃어른이었다.

지난 12월 10일에는 또 한 명의 원로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 ‘증권·금융계의 거목’이라고 불리던 고(故) 양재봉 대신증권 명예회장이다.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한 양 명예회장은 맨 처음 은행원에서 시작해 1973년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한 뒤 1975년 중보증권을 설립하면서 오늘날 대신증권의 초석을 닦았다.

50년간 금융 외길 인생을 걸어 온 그는 1984년 대신경제연구소, 1986년 대신개발금융, 1987년 대신전산센터를 설립했고 1988년에는 대신투자자문, 1989년 대신생명보험, 1990년 송촌문화재단, 19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을 세웠다. 송촌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며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돌리겠다’는 평소 신념을 실천해 나갔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

올해의 말말말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지난 2월 5일 ‘호암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 특검 특별 사면이 이뤄진 지 얼마 안 돼 나온 말 치고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는 평.

“남자한테 참 좋은데”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자사의 산수유 건강기능식품 광고에 직접 출연해 한 멘트로, 고개 숙인 남성들에게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북한의 폭침 직후 연평도를 방문해 그슬린 보온병을 들고 한 말. 정계 대표적 군미필자로 통하는 그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진짜 폭탄주네” 송영길 인천시장

역시 연평도 현장을 방문해 포격에 그슬린 가게의 소줏병을 보고. 안 대표 못지않은 무개념 발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맞았다.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 타블로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가 학력 위조 논란 속에 뱉은 넋두리. 방송사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로 사회 문제화됐다.

“제 점수는요” 슈퍼스타K 심사위원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가슴 뭉클한 스타 도전기로 올 한 해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참가자 점수 발표 전 심사위원들의 이 말에 여러 사람이 간장을 녹여야 했다.


취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