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토크

내년 예산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여야 간 폭력 사태가 재연됐다. 그런데 여야의 폭력 사태 속에서도 주요 유력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일찌감치 최대한 챙겨 놓은 것으로 드러나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엔 여야 의원이 따로 없었다.

앞에선 ‘죽네 사네’하면서 정작 뒤에서는 힘 좀 쓴다는 정치인들이 ‘자기 지역 챙기기’에 제대로 힘을 써놓았으니 국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201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영계획안 수정안 등을 살펴보면, 경북 포항과 울릉도 관련 예산은 국회 계수조정소위 기간 동안 당초 정부 예산보다 최소 1623억 원이 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이자 국회 부의장을 지낸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지역 예산을 ‘형님 예산’이라고 해서 아예 논외로 제쳐 놓았다고 한다.
폭력 국회 뒤에 숨겨진 진실
힘 있는 의원들 ‘지역구 예산 챙기기’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의 지역구인 마산 지역 예산도 정부 예산보다 최소 430억 원가량 늘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 예산 논의의 지휘봉을 잡는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다.

경남 양산이 지역구인 박희태 국회의장의 지역 예산은 182억 원 증액됐으며, 충북 제천·단양을 지역구로 둔 송광호 국토해양위원장도 충주제천고속도로 등을 위해 120억 원을 증액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여야 원내 사령탑인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역구(부산 남을) 예산으로 용호만 매립지 예산 17억 원을 살리는 한편 부산 지역 예산을 대폭 늘리는데 크게 일조했다고 한다.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어 정부 제출안(309조5천518억원)보다 4천951억원 순감된 309조567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날 표결은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의원 등 166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사회를 보았으며 찬성 165명, 반대 1명으로 통과됐다.
     2010.12.8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어 정부 제출안(309조5천518억원)보다 4천951억원 순감된 309조567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날 표결은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 한나라당과 미래희망연대 의원 등 166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사회를 보았으며 찬성 165명, 반대 1명으로 통과됐다. 2010.12.8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고기능수산식품지원센터, 목포신항 등을 위해 65억 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했고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충남 홍성·예산)도 33억 원 정도 증액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예산 심사에 참여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물급 인사들은 모두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를 얻어냈다. 국회 및 각 정당 홈페이지에는 비난하는 목소리로 도배돼 있다.

‘국가나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가 아닌 힘깨나 쓴다는 양반들을 위한 예산 전쟁(champe)’, ‘결국 다음번 선거를 앞둔 보장성 보험을 확실히 들어 놓은 것인가(bandibul74)’, ‘모든 것은 처음부터 라이브 쇼였다(jjbunny)’ 등의 댓글은 이번 행태를 바라보는 민심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해당 지역구 주민들의 시각은 또 다른 모양이다. 자기 지역과 연관된 예산이 포함된 일부 네티즌들은 “몇 년째 계속 미뤄져 왔던 사업 예산이 이제야 반영됐다. 모든 것을 다 가져온 것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조정되지 못한 절차가 못내 아쉽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우리 정치의 한계 아니겠는가”라는 의견이 눈길을 끈다.

여하튼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 논의 과정이나 의사 처리 과정은 꼭 이번 예산안 처리를 보지 않더라도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국민적 반감도 이제는 분노를 넘어 포기 수준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적 분노가 선거가 아니더라도 다른 집단적 저항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