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 삼성전자

지난해 매출액 136조 원, 영업이익 11조 원을 올린 삼성전자는 반도체·휴대전화·TV 등 디지털 미디어를 세 축으로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 최대의 기업이자 세계 최대의 전자 회사다. 전반적인 정보기술(IT) 제품의 불황 속에서도 올해 매출액 150조 원, 영업이익 15조 원이라는 엄청난 실적을 무난히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969년 삼성전자공업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삼성전자는 설립 당시 수원 매탄동의 허허벌판에 세운 종업원 수 36명의 ‘구멍가게’였다. 주력 사업은 일본 산요전자의 주문을 받아 TV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부품을 조립하는 ‘별것 아닌’ 사업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40년 만에 국내 9개 사업장과 9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아시아 경제의 거목이 됐다.
[2010 한중일 100대 기업] ‘불가능은 없다’…‘파격과 혁신’의 연속
태양전지·바이오 등 미래 투자 ‘주목’

삼성전자의 이 같은 성장은 ‘파격과 혁신’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무명’의 삼성전자가 도약의 씨앗을 뿌린 시점은 1983년 2월 고 이병철 창업자의 ‘도쿄 선언’이었다. 197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주축이 돼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첫발을 디딘 삼성전자는 도쿄 선언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당시만 해도 국내외에선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경기 기흥공장을 완성하면서 세계 전자 업계를 놀라게 했다.

‘제2의 창업’은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1987년부터였다. 이 회장은 먼저 삼성반도체통신과 삼성전자로 2원화돼 있던 반도체 사업을 과감히 통합했다. 더욱이 D램 반도체 부문에 투자를 단행해 5년 만인 1992년 D램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는 실적을 냈다. 이어 64MD램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93년은 삼성전자가 보여준 파격과 혁신의 전환점이 된 해다. 바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집약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기폭제가 됐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 일등 제품이 단 한 개도 없던 삼성은 1990년 말에 D램 반도체, 낸드플래시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을 무려 20여 개까지 늘렸다.

‘파격과 혁신’이 삼성전자의 정신이었다면 ‘과감한 도전’은 삼성전자의 행동 양식이었다. 카폰 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던 삼성전자는 1993년 휴대전화 사업 진출이라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이때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애니콜’이란 브랜드로 아날로그 휴대전화를 시판했다.

당시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 해외 기업들이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시장 진출은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국내외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2007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2위를 기록했다.

TV 사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1999년 ‘디지털 TV’라는 새로운 TV로 승부수를 던졌다. 선진국에 비해 60여 년 흑백 TV 생산은 늦었지만 디지털 TV라는 신병기로 해외 경쟁 업체를 따돌리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TV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6년부터 5년 연속 TV 시장점유율 1위를 이어가는 삼성전자의 비결은 해외 경쟁사가 TV 사업을 사양사업으로 보고 소극적일 때 역발상 투자로 시장을 선도하면서 디자인 혁신과 원가절감에 몰두했기에 가능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큰 도전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과감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진행한 과감한 인사 개혁은 바로 이 같은 고민에서 나온다.

안타깝지만 과거와의 이별을 고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며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성장 축과 함께 태양전지, 바이오 및 제약, 의료기기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삼성전자의 의지가 과거와 같이 ‘성공의 역사’로 기록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