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 제로금리 시대 일본인의 재테크

일본 가계가 선택할 수 있는 개별 상품 중 압도적인 인기 자산은 현금·예금이다. 1445조 엔의 금융자산 중 55.7%(806조 엔)를 차지했다(2010년 6월). 보유 비중 2위는 보험과 연·기금 준비금으로 27.2%(393조 엔)를 기록했다. 주식·출자금(6.6%, 95조 엔)과 채권·펀드(6.3%, 92조 엔) 등 위험자산은 소수에 그쳤다.

저축은 단연 일본 가계의 주력 자산이다. 불리기보다 지키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유는 많다. 당장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현금 가치가 높아졌다. 디플레 땐 현금 파워가 강해진다. 물가 하락만큼 추가 이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한국과 비교해 현금·예금·적금의 존재 이유가 높은 이유다.
[창간 15주년 기획특집 3] 개인 자산 운용법, 예ㆍ적금 '넘버원'…보험·주식 뒤이어
디플레이션으로 현금 가치 높아져

806조 엔 중 세부적인 보유 비중은 정기성 예금(465조 엔)과 유동성 예금(291조 엔)으로 나뉜다. 유동성 예금은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대신 단기·저리(혹은 무이자)로 운용된다. 정기성 예금은 일정 기간 인출이 안 돼도 금리가 좀 높아 그나마 유리하다.

더욱이 장기로 묶어둔 비율이 높다. 정액 예금 잔존 기간별 잔액을 보면 총 91조 엔 중 47조 엔(52%)이 7년 이상 잔존 기간이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2010년 3월). 여기에 잔존 기간 5년 이상까지 더하면 60조 엔(67%)으로 증가한다.

물론 이자 수익은 거의 없다.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의 이자 수준을 보자. 보통예금(0.02%)은 물론 슈퍼정기예금(0.03%, 1년)도 사실상 무이자나 마찬가지다.

실제 금융 위기 이후 일본 가계의 현금·예금 비중은 775조 엔(2008년 3월)에서 806조 엔(2010년 6월)으로 불어났다. 전체 자산 감소와 대조적이다. 위험 회피 차원에서 안전자산으로 시중 자금이 몰렸다는 얘기다.

향후에도 당분간 예·적금 비중은 증가할 전망이다. 1975년 23.1%에서 2.3%까지 추락한 가계 저축률(저축÷가처분소득)에서 알 수 있듯 금융회사의 유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중심의 우대금리 경쟁 심화가 대표적이다. 최근 인터넷 뱅킹 수요는 증가세다.

인터넷 전업 은행(7개사)의 합계 계좌가 1000만 개를 돌파하는 등 상대적 고금리와 다양한 기간 설정 등을 통해 가계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이자 수준도 높다. 정기예금(0.2~0.34%·1년)은 물론 보통예금(0.03~0.05%)까지 상대적 고금리를 제공한다.

보유 자산 중 6.6%(95조 엔)를 차지하는 주식·출자금은 일본 가계의 변방 자산 중 하나다. 기관·외국인과 함께 3대 투자 주체로 정착된 한국 가계와 사뭇 다른 특징이다. 위험을 싫어하는 안전 지향적인 투자 마인드가 한몫했다. 버블 붕괴 이후 폭락 기억도 건재하다.

하지만 최근 G20 회의 이후 1만 엔대에 올라서는 등 분위기가 좋다. 이 덕분에 증시로의 자금 유입도 목격된다. 2010년 2분기엔 1년 만에 자금(1조6000억 엔)이 유입됐는데 이 금액은 1998년 이후 최대치(분기 기준)다. 2009년 이후 하락 폭이 커 저가 매력에 호감을 가진 가계가 늘어난 덕분이다.

펀드는 2000년대 이후 관심 집중 자산이다. 전체 비중은 아직 미약하지만 상품 종류가 늘면서 위험과 안전 사이에서 고민 중인 일본 가계의 눈높이를 맞췄다는 평가다. 물론 아직은 작은 시장이다. 금융 위기 이후 안전 성향이 확산 중인 것도 걸림돌이다.

2008년 1분기와 2010년 1분기를 비교하면 리스크 회피 성향은 건재하다. 주식·출자금이 16조 엔(마이너스 1.1%) 감소했고 펀드에선 8조 엔(마이너스 0.6%)이 유출됐다. 주가 급락에 따른 시가 반영으로 덩치가 줄었을 개연성이 높다.

그나마 주식 자산보다 안정적이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분산 효과가 높은 펀드에 대한 기대감 때문으로 이해된다. 시가 변동을 반영하지 않으면 펀드로의 자금 유입이 꾸준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최근 위험자산 중에선 소폭이지만 유일하게 펀드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2010년 10월 주식형 펀드 잔액은 51조 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49조 엔) 2조 엔 늘었다. 다만 11조 엔 규모의 공사채 펀드는 위기 이후 정체 상태다. 이 둘을 합한 일본 가계의 펀드 보유액은 모두 62조 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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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위험과 안전 사이’ 상품으로 급부상

상품 종류(추가형 50조 엔)로는 밸런스형(19조 엔), 펀드 오브 펀즈(18조 엔), 인덱스형(4조 엔)이 주류다. 국내 주식형(3조 엔), 국제 주식형(5조 엔)은 일부에 그친다. 더욱이 매월 분배금 지급 펀드는 밸런스형 중에서도 절대 규모(16조 엔)를 차지해 단일 유형으로는 최대 덩치다.

매월 용돈처럼 안정적인 분배금을 원하는 고령 세대가 핵심 고객이다. 그만큼 펀드에는 고령 세대의 수요가 꾸준하다. 자금 유입이 많은 인기 펀드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통화 선택형 펀드와 리츠(REITs), 엔화 채권 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통화 선택형은 2010년 4월 이후 매월 3000억~4000억 엔가량 자금이 몰리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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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분에 잔액이 5조 엔(2010년 8월)까지 불어났다. 통화 선택형은 외국 채권 등 투자 대상 자산으로 운용돼 통화 간의 금리 차이와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어 인기다.

세부적으론 브라질(헤알)과 자원이 충분한 국가 통화가 관심 대상이다. 자금 유입 펀드의 공통점은 정기적인 고분배금을 지급한다는 점이다. 36개가 상장·거래 중인 리츠(부동산투자신탁)에 대한 관심도 높다.

평균 배당금(5.21%)만 봐도 10년 국채(0.95%)는 물론 도쿄1부 평균 배당(2.11%)보다 월등히 높다. 유동성이 높아 현물 부동산보다 매매가 쉬운데다 저가 경쟁력에 따른 추가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전망도 비교적 밝다.

재정 파탄에 따른 일본 부도설은 언론의 단골 논쟁 중 하나다. 그만큼 국가 채무(882조 엔, 2010년 3월)가 목에 찼다. 이때 반론의 주요 근거는 국가 채무를 담고도 남을 1000조 엔 이상의 가계 순자산 규모다. 실제 정부 채권의 절대 다수를 가계 예금 수탁 기관이 사들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가계의 직접 채권 투자는 일부에 그친다.

그나마 위기 이후 다소 줄었다. 일본 가계의 국채·재융채 보유 비중은 최근 36조 엔(2008년)에서 34조 엔(2010년 6월)으로 감소했다. 다만 개별 단위의 해외 채권에 대한 직접투자는 조금씩 늘고 있어 채권 자산에 대한 자금 유입이 현저히 줄었다고 볼 수 없다. 요즘 관심을 끄는 채권 자산은 개인 대상 국채다.

일본 정부가 재정 확보 차원에서 라인업을 강화하는 등 투자 환경을 우호적으로 바꾼 게 주효했다. 원래 개인 대상 국채는 최소 5년에 제공 금리도 시중금리보다 크게 높지 않아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인터넷 정기 상품보다 약간 낮은 금리(0.12%, 1년)의 3년짜리를 매월 발행해 유동자금 피난처로 매력을 높였다. 만기 3·5·10년의 3종류에 1만 엔부터 투자할 수 있다.

국채 상환액을 포함한 상당 자금이 국채에 재투자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낮은 판매 유인 등 한계도 있다. 증권사는 수수료가 적어 별로인데다 은행은 되레 자사 예금을 권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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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도심 월수익형 소형 물건 인기’

운용 자산으로서의 매력은 거의 상실했다. 대신 거주 공간으로서 기능성이 강조되는 추세다. 결국 완공·매입 단계에서부터 감각상각 개념이 적용되는 게 보통이다. 더구나 젊은 세대일수록 자가(自家) 보유 욕구가 낮다. 집을 사는 이유도 전매 차익보다 저금리에 저가 메리트, 세제 혜택 등이 먼저 꼽힌다. 디플레도 한몫했다.

매매 시세보다 임대·임차 정보가 훨씬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제공된다. 매매보다 임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생 월세로 사는 게 여러모로 낫다는 인식도 이젠 보편적이다. 1990년대 거품 붕괴, 가치 폭락으로 주택 인식이 달라진 결과다.

실제 주택지 가격은 1970년대(11.9%), 1980년대(7.30%) 이후 1990년대(마이너스 0.20%)부터 완전히 꺾여버렸다. 다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도심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매수 수요도 증가세다. 내진 설계, 관리 편리, 역세권 여부 등이 중시되면서 직주(職住) 환경에 대한 갈망이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 가계의 보험과 연·기금 준비금은 각각 216조 엔, 178조 엔에 달한다. 모두 393조 엔으로 전체 금융자산의 27.2%를 차지하는 주력 자산 중 하나다. 더욱이 연·기금은 생활 핍박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불입하려는 욕구가 높다.

최근 1층(기초연금)인 국민연금 연체 증가, 연금 붕괴 등 사회 안전망의 붕괴 지적도 높지만 25년 이상 납부하면 65세부터 현재 기준 월 1만4410엔을 받기 때문이다. 압권은 후생연금(직장)인데 연초 JAL의 법정관리 사례에서처럼 정년을 맞은 샐러리맨은 은퇴 후 상당 금액을 받는다.

고령 부부와 무직 세대는 월평균 수입 22만3000엔 중 20만7000엔(92.4%)을 연·기금에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더욱이 노후 불확실성에 따라 퇴직연금을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구체적이고, 개인연금도 활발하다. 최저 보증의 변액연금 신규 판매 정지 등으로 변액연금이 감소하자 정액연금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고령화에 따라 이들 연금자산 인기는 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험도 관심 대상이다.

외환거래는 안전보다 수익을 원하는 일본 가계가 선택한 위험자산의 선두 주자다. 실제 위험 수용자라면 단연 외환거래(FX)가 추천 1순위로 거론된다. 여름·겨울 상여 시즌이면 FX가 필수 자산으로 추천된다.

최근 엔고 상황이 지속되자 FX 거래의 투자 적기란 인식 하에 투자에 나서는 이도 적지 않다. FX 거래는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추구 모델이다. 다만 손실 사례가 많아지면서 요즘엔 경계론도 늘어나고 있다.

FX(마진) 거래는 통화의 실제 인수·인도 없이 선물 회사를 통해 계좌를 계설한 뒤 통화를 매매하는 방식이다. 환율 변동과 양국 이자 차이로 수익을 얻는 상품이다.

적은 증거금으로 많은 레버리지를 이용할 수 있고 수수료도 저렴하며 소액부터 투자할 수 있어 인기다. 저금리인 엔화를 빌려 매도한 뒤 고금리 통화를 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FX 관련 블로그를 비롯한 정보 교환도 정착됐다.

다만 FX는 투자 그룹이 한정됐다. 국민 자산으로 성장하기엔 거래 방법, 위험 정도, 전문 지식 등이 한계로 거론된다. 한탕을 노리는 부작용도 문제다. 금융 당국이 증거금 규모를 50배로 제한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실제 효과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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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유동자금 향방으로 본 인기 자산

물꼬 터진 30조 엔…안전자산 ‘굿’

2010~2011년은 일본 가계의 유동자금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해다. 10년 전 맡긴 정기예금 집중 만기와 개인 대상 국채 상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금 출처는 2010년 4월부터 만기 도래가 발생하는 우체국 정기예금과 2011년 1월부터 시작되는 개인 대상 국채 상환금이 대표적이다.

우체국 정기예금은 1980년부터 10년 간격으로 대량 만기 도래가 반복됐는데 2000~2001년엔 무려 100조 엔이 풀려나갔다. 이 가운데 80조 엔이 해지됐고 20조 엔은 이번에 만기에 도달한다. 개인 대상 국채의 상환 예정액은 8조 엔 정도다. 결국 약 30조 엔의 거액이 한꺼번에 방향 모색에 나선다는 의미다. 스미토모신탁은행의 분석으로 그 향방을 살펴보자.

먼저 지속적인 안전 지향성의 유지·확대가 거론된다. 금융 위기 이후 안전 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은 지속될 확률이 높다. 당분간 가계의 금융 행동 포지션은 ‘저축에서 투자로’가 아닌 ‘투자에서 저축으로’가 대세로 이해된다.

게다가 자금 유치를 위한 저축 기관의 경쟁 심화도 자금 피난처로서의 매력을 높인다. 결국 우체국 정기예금 20조 엔 중 12조 엔은 그대로 잔류하고 8조 엔이 유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8조 엔도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강한 우체국 고객임을 감안할 때 시중은행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국채 상환금은 우체국이나 시중은행이면 상당 부분 국채에 재투자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증권사라면 절반 정도는 펀드 등 위험자산에, 나머지 절반은 증권사 판매의 고정금리 3년물 국채에 투입될 확률이 높다. 결국 저축에서 투자로 전환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