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버드’를 끌어내린 ‘컷더로프’의 반란
‘앵그리버드(Angry Birds)’ 천하가 과연 반년 만에 끝날까요? 미국 앱스토어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게임 카테고리에서 ‘컷더로프(Cut the Rope)’가 론칭 사나흘 만에 봄부터 굳게 1위를 지켜 온 ‘앵그리버드’를 끌어내리고 왕좌를 차지했습니다.열흘 만에 유료 앱 100만 다운로드를 돌파, 앱스토어 개설 후 최단기간에 100만을 달성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이 게임은 프랑스·독일·이탈리아·핀란드·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앱 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컷더로프’는 물리학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퍼즐 게임입니다. 게임 이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줄(로프)을 잘라 줄에 매달린 캔디를 개구리 ‘옴놈’의 입에 넣어주면 미션이 끝나는 게임입니다.
문제를 풀 때마다 레벨이 올라간다는 점에서는 ‘앵그리버드’와 같습니다.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에 어느 줄을 자르느냐입니다. 줄을 잘못 자르면 캔디가 개구리 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죠.
개발자는 러시아 게임 개발 스튜디오인 젭토랩(ZeptoLab)입니다. 웹사이트(zeptolab.com)에는 ‘재미 과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작고 독립적인 팀’이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물리학 교실에서 사용하는 실험용 비커를 로고로 채택한 것으로 봐선 실험을 중시하는 스튜디오인가 봅니다.
게임 배급은 ‘앵그리버드’ 배급사인 칠링고(Chillingo)가 맡았습니다. 아이폰 및 아이팟터치용은 0.99달러, 아이패드용은 1.99달러. 무료 앱 ‘컷더로프 라이트’도 있습니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기술 판도…전 세계가 경쟁 무대
물론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앵그리버드’가 ‘컷더로프’를 밀어내고 다시 왕좌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봄부터 유료 앱 1위를 지켜왔던 게임인데 쉽게 밀려나진 않겠죠. ‘앵그리버드’는 로비오(Rovio)라는 핀란드 개발사가 만든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는 아주 단순합니다. 고무줄 새총에 새를 장착해 돼지우리를 박살내면 됩니다. 그런데 스토리가 있습니다. 새들이 애지중지하는 알을 돼지들이 훔쳐가서 요리해 먹은 게 육탄 공격의 시발점입니다.
로비오는 ‘앵그리버드’ 덕분에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이 게임은 작년 12월 앱스토어에 론칭돼 지금까지 무료 앱은 1100만 개 이상, 유료 앱은 700만 개 이상 다운로드 됐습니다. 금년 말이나 내년 초에는 유료 앱 ‘텐밀리언셀러’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앵그리버드’나 ‘컷더로프’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무료 게임 ‘위룰(We Rule)’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죠. ‘위룰’은 게이머가 성주가 돼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방직공장·제과점·푸줏간 등을 운영해 포인트를 적립, 레벨을 올리는 게임입니다. 게임 앱을 무료로 제공하고 게임에 필요한 ‘모조(주술액)’를 팔아 돈을 법니다.
테크놀로지 세계에서는 “자고 났더니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기술이나 시장 판도가 너무 빨리 바뀐다는 얘기죠. 게임도 그렇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업계는 핀란드나 러시아 업체를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말 아이폰이 들어오면서 달라졌습니다. 어느 게임 업체 기획 담당자는 트위터에서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며 하소연하더군요. 달리 생각하면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달라진 건 아이폰과 앱스토어 때문입니다. 핀란드나 러시아의 이름 없는 게임 개발사가 앱스토어 덕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될 줄은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세상은 달라졌는데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게임을 규제하지 못해 안달인 여의도와 광화문 나리들의 마인드입니다. 낙후된 법제 때문에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대개 해외 앱스토어에서 게임 앱을 구매합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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