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생생토크
북한의 3대 권력 승계가 현실화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으로 지명된 지 하루 만에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됐다. 이제 북한은 현대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3대 세습’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아직 반쪽짜리”라면서 “북한 당국이 우상화 작업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체제 안전을 위해 남한에도 당분간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우상화 작업을 위한 ‘속성재배’ 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과연 누가 ‘김정일 시대’에서 ‘김정은 시대’로 넘어가는 ‘판’을 깔아줄 것이냐다.
이와 관련,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 대사관들이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에 대한 정보 수집을 강화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김정은의 고모이자 현재 북한 권력 2인자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부인이다.
그녀는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 위원에 머무른 남편 장성택을 제치고 투표권을 갖는 정치국 정위원에 선출됐다. 북한 역사상 최초의 대장 자리에도 올랐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은 김경희에게 힘을 더 실어 장성택의 권력 비대화를 막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김정은의 당권 장악 과정을 진두지휘할 인물로 역시 피를 나눈 혈육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탈북자 가운데 일부 고위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아침에 일어나면 남한 신문에 난 뉴스를 자주 챙겨본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는 장성택의 급부상을 다룬 기사가 적지 않았는데, 김 위원장이 이를 곱지 않게 봤다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매제인 장성택의 급부상을 경계하는 인사 조치로 분석했다.
인간 김경희의 과거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탈북인 단체들에 따르면 매우 대범하고 독한 성격이다. 1946년 5월 30일 김일성의 셋째 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인 김정숙은 그녀가 세 살 때인 1949년 출산 중 출혈이 멈추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은 이후 소설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의 딸과 살다가 오랜 비서로 일했던 김성애와 결혼했다. 김성애가 의붓어머니로 들어오면서 김경희는 어린 시절을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보냈다고 한다.
대범하고 독한 성격의 소유자
한 대북 소식통은 “김경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장성택과의 연애 과정”이라며 “원래 김일성은 군부 출신의 사위를 생각했고 당은 김정일, 사위는 군에서 자신을 보좌하게 할 계획이었지만 김경희가 같은 학급 동무인 장성택과 사귀어 혼을 많이 냈다”고 했다.
협박과 감금 중에도 고집을 꺾지 않자 결국 김일성조차 두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택과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는 설이 유력한 가운데 장금송이라는 딸이 있지만 자살했다는 말도 있다.
결혼 생활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 김경희는 1980년대부터 술에 빠져 살았다. 납북자가족모임의 한 인사는 “김경희가 술을 많이 마시고 술주정이 심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향해 “장성택, 술 더 마셔”라고 거침없이 말했다는 것이다. 김경희의 기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오빠인 김 위원장을 위해서는 막후에서 온갖 굳은일을 도맡았다는 후문이다. 주로 사생활 관리를 맡았다.
김 위원장을 대신한 자식 관리도 그녀의 역할 중 하나였다고 한다. 대북 전문가들은 “조용한 후원자의 위치에 있던 김경희가 조카 김정은이 무난하게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전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포커스는 이제 김경희”라고 전망했다.
이준혁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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