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나도 11시쯤 알았다. 국토부가 왕따도 아니고….”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7월 21일 기획재정부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재정부가 이날 오전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관계 장관 회의’를 열겠다며 국토부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실무자급에서 아무런 사전 협의가 없었음은 물론 정 장관도 회의 시작 3시간 전에야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 장관은 부동산 정책 주무장관으로서 회의 후 공식 브리핑까지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21일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20100721............
21일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20100721............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비율 상향 조정) 여부를 포함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은 원래 7월 22일 열린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확정할 예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예정에 없던 관계 장관 회의를 열기로 하고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까지 하라고 하니 정 장관이 당황할 만도 했다.

회의 결과는 정 장관을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았다. 이날 회의의 결론은 ‘결론이 없다’는 것이었다. 관계 부처 장관들이 좀더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결론이다.

장관들이 긴급하게 모인 만큼 중대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관측됐지만 결국 주요 사항에 대한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다음날 열린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을 논의하지 않고 미소금융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다.

정 장관은 브리핑에서 “DTI 완화 등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동안 주택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DTI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정 장관이었기에 행간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묻어났다.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7월 19일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이 곧 발표될 것이며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불이 붙었던 주택 거래 활성화 논의가 “발표를 연기한다”는 정 장관의 ‘허무 브리핑’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정 장관, 회의 시작 3시간 전에 연락 받아

관계 장관 회의의 결과는 기획재정부와 금융 당국이 국토부에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요약된다. 그동안 국토부는 줄기차게 DTI 완화를 요구해 왔다.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려면 은행 대출 한도를 늘려줌으로써 주택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DTI 규제로 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여력이 제한돼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재정부는 가계 부채를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기 위해서는 DTI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이미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부동산 거품 붕괴를 겪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러 DTI를 완화하면 자칫 가계 부채가 통제 불능의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와 재정부는 DTI가 주택 수요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현행 DTI 비율은 40~60%인데 실제 주택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DTI 비율은 평균 20% 안팎이기 때문이다.

대출을 더 받고 싶은데 DTI 한도에 걸려 대출을 받지 못해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이는 DTI 한도를 높인다고 해서 주택을 구입할 목적으로 대출을 더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DTI가 적용되지 않는 지방의 집값이 수도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DTI 완화 반대론의 근거다.

청와대와 여권의 분위기도 DTI 완화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다. 주택 거래를 활성화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DTI 완화가 효과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DTI 완화가 부동산 시장의 투기 심리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기조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금융위원회 등 금융권 관리·감독 업무를 맡은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 13명 중 9명이 DTI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지금은 섣불리 규제를 완화하기보다 집값이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갈 때까지 시장에 맡겨 둬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올랐던 것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이라는 얘기다.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DTI 완화를 포함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국토부가 점점 외로운 섬이 돼 가고 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