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사상 최고 실적의 비밀

1947년 화장품 제조업으로 시작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는 1951년 국내 최초로 합성수지 성형 제품을 생산했다. 1950년대 초면 6·25전쟁으로 국내 제조업 공장들이 폐허가 되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산업만이 근근이 유지되던 때다.

당시 밀수입된 셀룰로이드 빗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락희화학이 사출성형기를 들여와 한국 최초의 플라스틱 빗인 ‘오리엔탈 빗’을 만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이재형 상공부 장관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오리엔탈 빗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내보이며 “이것이 국산입니다”라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이 신기해하며 “나도 하나만 구해 주시오”라고 한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이로부터 60여 년 뒤인 2010년 7월 15일 미국 미시간 주 홀랜드시. LG화학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홀랜드 공장 건설은 미국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축사를 남겼다.

빗 하나를 만들어 한국 대통령을 감동시켰던 LG화학이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것이다. 비록 미국 대통령의 기공식 참석이 미국의 일자리 증가를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숨겨져 있더라도 그 주역이 LG화학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LG화학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7월 20일 LG화학은 2010년 2분기에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매출액은 5조28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8279억 원으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1.6% 증가했다. 순이익도 645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0%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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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석유화학 기업 아니다


LG화학의 사상 최대 실적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불황에 흔들리지 않고 호황에도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다는 점 △10년 뒤를 내다보고 일찍이 기술 개발에 투자한 것이 실적을 내기 시작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LG화학은 이제 단순히 석유화학 기업이 아니다. 정보 전자 소재 부문이 매출의 30%가량을 이루는 첨단 정보 전자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분기 매출액 중 석유화학 부문은 3조7651억 원, 정보 전자 소재 부문은 1조3003억 원이다. 특히 2차전지 분야의 매출액은 4286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8.5%에 해당한다.

LG화학에 따르면 최근 실적에 대해 “정보 전자 소재 중 편광판의 경우 10년 만에 처음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2차전지 분야도 성장하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은 꾸준히 원가 절감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 시장이 좋아지면 최대 효과가 나도록 되어 있다”고 비결을 밝혔다.

‘10년 만에’라는 말은 LG그룹 구본무 회장에게도 감회가 깊은 말이다. LG화학이 정보 전자 소재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1999년 청주에 2차전지·형광체·CCL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잇따라 리튬 이온 전지, 광학 소재, MBL용 원판 공장을 준공했고 액정표시장치(LCD)용 컬러필터 감광재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용 형광체 개발에 성공했다.

LG화학이 이처럼 첨단 소재 부문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발 빠른 선택과 집중 때문이었다. 2005년에는 LG생활건강을 분리했고 2006년에는 LG대산유화와 합병, 2009년에는 LG하우시스를 분리했다.

LG그룹을 탄생시킨 화장품 제조업과 건축 내장재 부문을 떼어내고 업종이 같은 유화 업체를 합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업부문을 단순화하면서 석유화학 부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새로운 사업 분야를 키우며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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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투자한 2차전지 결실


외부에서는 화학 업계가 첨단 정보 전자 소재에 진출한다는 것을 다소 무모한 도전으로 인식했지만 LG화학은 국내 최초로 리튬 이온 전지, LCD용 편광판을 개발해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특히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용 편광판은 세계 최강자였던 일본 니토덴코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석유화학 부문 내에서도 리스크를 최소화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장점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우 중동 지역의 신·증설 물량이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LG화학의 경우 경쟁 기업과 달리 중동에서 생산되는 범용 제품 비중이 20% 미만으로 그 영향이 제한적이다. 품목별로도 PVC·ABS·아크릴레이트·옥소알코올·합성고무 등 경기 사이클이 상이한 제품군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정보 전자 소재 분야에서도 연매출 2조 원이 넘는 LCD용 편광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외에 감광재, 프리즘 시트, 리튬 이온 2차전지 원재료 등 다양한 전자 재료 관련 제품들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흔히 주식 투자를 할 때 한창 잘나가는 업종은 그때가 꼭지인 경우가 많고, 3~4년에서 길게는 10년 뒤를 바라보고 유망한 기업을 골라야 워런 버핏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LG화학은 잘나갈 때 10년, 20년 뒤를 준비하며 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LCD용 편광판은 사업 진출 10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랐고 20여 년을 투자한 2차전지 분야도 지난해부터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처럼 장기적인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연구·개발(R&D)에 대한 꾸준한 투자다. LG화학은 대전에 기술연구원이라는 별도의 R&D 조직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국내외 특허만도 1만여 건 이상이다. 세계적 화학 회사인 다우케미컬 관계자가 LG화학의 연구소를 방문해 ‘한국에 이런 곳도 있었느냐’며 놀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꾸준한 R&D 투자를 통해 LG화학은 ‘범용’ 수지 중심의 화학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1996년부터는 정보 전자 소재 분야를 새로운 전략 연구 분야로 선정한 후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정보기술(IT) 제품 소재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국내 IT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2차전지 분야에서는 2003년 세계 최초로 2400mAh급 원통형 전지 개발 및 양산화에 성공했고 2005년에는 2600mAh급 원통형 리튬 이온 전지의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 LG화학의 2차전지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유럽의 볼보, 한국의 현대·기아차 등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에 납품 계약을 하며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LG화학의 호실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박재철 애널리스트는 “3분기에도 석유화학의 차별화된 수익성과 IT 성수기 효과를 바탕으로 8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연간 1조4000억 원 이상의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상반기에 6572억 원이 집행됐고 하반기에도 예정대로 투자가 집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내년 대산공장의 NCC 생산 용량을 10만 톤 증설하고, 올해 말부터 대형 2차전지 매출이 본격화되면 2013~2014년 1조 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된다.

2011년 하반기부터 상용화될 유리기판 사업도 성장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매수’ 의견을 냈다. 국내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7월 21일 일제히 LG화학의 목표 주가를 35만~4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