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축복’이다

기후변화는 재앙인가 기회인가. 과학자들은 결코 예언가로 양성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관측 결과를 토대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내도록 훈련되며 때로는 필요에 따라 합리적인 예측을 내놓도록 주문받는다.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측들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접하는 것은 그것의 일부이거나 겉포장, 아니면 가공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관측한 데이터의 양이나 쓰임새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분석을 통해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오류가 없더라도 미래 예측에는 오차의 범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그 예측에 사용된 가정 자체도 때로는 검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도 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보고서에서 결정론적인 말을 적는 법이 없다. 예를 들면 “만약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 추세대로 계속 증가한다면 2150년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A부터 B 사이가 될 것이며 지구의 평균온도는 C도에서 D도 사이, 해수면은 E cm에서 F cm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YONHAP PHOTO-1510> Greenpeace activists light up the mockup of a bomb labelled CO2 during a campaign in front of the Chancellery in Berlin on March 25, 2009. Greenpeace called on the German government to be aware of the risks of a permanent CO2 storage.     AFP PHOTO    DDP/MICHAEL GOTTSCHALK    GERMANY OUT

/2009-03-25 22:38:42/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온실가스감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17일 202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과 한국제품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리란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Greenpeace activists light up the mockup of a bomb labelled CO2 during a campaign in front of the Chancellery in Berlin on March 25, 2009. Greenpeace called on the German government to be aware of the risks of a permanent CO2 storage. AFP PHOTO DDP/MICHAEL GOTTSCHALK GERMANY OUT /2009-03-25 22:38:42/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온실가스감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17일 202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과 한국제품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리란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기후변화에 취약한 유럽의 노림수


이 보고서를 입수한 기자는 B, D, F를 강조해 기사를 쓰고 데스크는 ‘해저 도시…런던’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뽑고, 운동가는 ‘당신의 집이 물에 잠긴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정치인은 ‘충격적인 예측이며 우리의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최선의 경우보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정작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과학자에게 되물어 본다면 이런 답변을 들을지도 모른다. “내 연구는 제한적인 변수의 영향만을 분석한 것입니다. 기후와 연관된 다른 변수들을 모두 고려한 것은 아니에요. 기후는 복잡한 현상이고 우리의 이해는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의 징후는 그 원인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관측되고 있다. 미래의 어떤 시점까지 기후가 얼마나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마도 과학자들이 예측한 최선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그나마도 과학자들이 정말 정확한 결과를 뽑아냈다고 가정할 경우에 그렇다.

국제정치의 장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전 지구적 아젠다로 만드는 데에 열심인 나라들은 모두 유럽 국가들이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까지 유럽의 이러한 노력들과 별개로 ‘미국식의 해법’을 생각하고 있었고 유럽이 선호하는 오바마 행정부는 코펜하겐 회의에서 고도로 정치적인 체면치레로 협약 체결의 실패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는데 성공했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을 필두로 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느끼는 ‘기후변화 위기의 온도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현상이며 온 인류에 대한 위협인데도 말이다.

기후가 변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지역은 바로 유럽, 특히 부자 나라들이 있는 서유럽과 북유럽이다. 이 지역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위도상에 위치하는 데도 날씨는 연중 온화한 대륙 서안 기후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지 않고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습격도 없다. 한강과 달리 템스 강과 센 강에는 둔치와 높은 제방이 없고 강물 코앞까지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수위가 연중 일정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도시의 사회간접자본도 기후에 맞게 설계돼 왔는데 대부분이 19세기에 지어졌다.

기후변화가 현실로 닥치고 그린란드의 내륙빙하가 녹아 멕시코만류의 흐름을 방해하면 이 지역 국가들은 더 이상 자연이 공짜로 운반해 주는 적도 지방의 열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겨울의 혹한은 단열이 형편없는 오래된 집들의 난방비를 급격히 높일 것이고 천연가스를 쥐고 있는 러시아, 가스관이 지나가는 우크라이나에 목줄을 잡힐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폭염은 노약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집중호우는 순식간에 도시를 물바다로 만들 것이다. ‘인류 멸망’보다 훨씬 실질적인, 당면한 위협이다.

반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이 위치한 저위도 지역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첫째, 그 지역의 기후는 원래 험악하다.

둘째, 먼 훗날의 얘기 같은데, 배는 당장 고프다. 셋째, 잃을 것도 별로 없다. 넷째, 선진국들이 생각 없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탓이라는 얘긴데, 보상금을 주지 못할망정 개발을 막는데 대해 반감이 앞선다.

저탄소 사회 여는 촉매제 될 수도
<YONHAP PHOTO-0061> A labourer works at a brick factory at Mandhay village, about 30 km (19 miles) of Agartala, capital of India's northeastern state of Tripura, December 9, 2009. The government said on Tuesday it will seek parliamentary approval to spend an extra 257.25 billion rupees ($5.5 billion) for the fiscal year to end-March 2010. REUTERS/Jayanta Dey (INDIA EMPLOYMENT BUSINESS)/2009-12-10 0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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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bourer works at a brick factory at Mandhay village, about 30 km (19 miles) of Agartala, capital of India's northeastern state of Tripura, December 9, 2009. The government said on Tuesday it will seek parliamentary approval to spend an extra 257.25 billion rupees ($5.5 billion) for the fiscal year to end-March 2010. REUTERS/Jayanta Dey (INDIA EMPLOYMENT BUSINESS)/2009-12-10 01:01:08/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해안 지역은 전형적인 계절풍기후 지대다.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강수량도 여름에 집중된다.

따라서 이 지역의 인프라는 변화무쌍한 기후에 맞춰 설계돼 있고 유럽에 비해 새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덕에 잘 갖춰진 편이다(일본의 홍수 대비 인프라는 아주 유명하다). 기후변화에 따른 추가 지출이 많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기후변화 문제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코펜하겐 회의에서도 한국이 중국과 연합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적극적인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치를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등 유럽 선진국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계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은 대표적인 산업국가다. 이 두 나라는 기후변화 담론이 세계화되면서 열릴 새로운 산업 경제적 기회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전략적 목표를 지향하고 신산업을 육성하는데 특출한 노하우와 충분한 과학기술 역량 및 투자 여력을 갖고 있다.

기후변화 담론이 촉발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기존 산업의 창조적 파괴를 요구하며 여기에서 살아남을 경우 승자 독식의 기회를 얻는다.

자동차·원자력·고속철도 등 기존 산업에 자극과 기회가 됨은 물론 태양광·풍력·조력·바이오연료·스마트그리드·수소에너지 등 새롭게 성장할 산업들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이들 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기후변화를 잠재적 재앙이라는 공포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후변화가 진실인지 부정하지도 긍정할 필요도 없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자는 것이 기후변화 담론의 의의라고 본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기후변화 위기론이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모르고 인류가 현명하게 대처해 극복해 낼지도 모른다. 실용적으로 생각할 때 그에 대한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기후변화 위기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올바른 방향이다.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기회다. 미개함과 게으름을 퇴치할 기회인 것이다. 찬란한 물질문명을 이룩했다지만 알고 보면 수천만 년 전에 먼저 살았던 생명체들이 장구한 시간에 걸쳐 응축해 놓은 태양에너지를 불과 백여 년 동안 죄다 뽑아내 써 버린 것이니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지구상에 넘치는 에너지를 잡아 쓸 궁리를 하지 않고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해 에너지 과소비 사회를 키워 왔으니 게으르고 비만하다고 욕하지 않을 수 없다. 화석연료가 그나마 남아 있는 동안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비를 마쳐야 한다.

이 작업에는 돈과 에너지와 긴 시간이 들기 때문에 단번에 저탄소 생태사회로 나아가자는 주장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이 길은 멀고 힘들며 화석연료를 빨아먹기는 쉽고 달다.

어쩌면 기후변화 위기론은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의 엉덩이를 차 일으키는데 제법 효과가 있는 수단일지 모른다. ‘앉아 있으면 다 죽어.’

[지구온난화의 숨겨진 진실] 위기감 온도차…한국엔 새로운 기회
박상욱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1972년 서울 출생. 1995년 서울대 화학과 졸업. 2002년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현). 2004년 서울대 이학박사. 2010년 영국 서식스대 SPRU 과기정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