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 이익 낸 일본전산

[Japan] “리먼 쇼크야, 고맙다”…위기를 기회로
“이번에 ‘리먼브러더스 쇼크’로 세계적 금융·경제 위기가 터진 건 정말 잘된 일이었다. 그 덕분에 2009 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에 매출은 줄었지만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일본 교토의 일본전산 주주총회장. 나가모리 시게노부(65) 사장은 주주들에게 경영 실적을 보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드디스크 모터 분야의 세계 1위인 일본전산은 세계적 경제 위기에 발 빠른 체질 개선으로 대응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 회계연도 이 회사의 매출액은 5874억 엔(약 7조64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783억 엔으로 50.6% 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519억 엔으로 83.2% 신장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작년 4분기(10~12월)와 올 1분기에 각각 15.4%와 15.9%를 기록했다. 오랫동안 지속해 온 11%대의 이익률이 껑충 뛰어올랐다. 일본전산은 매출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면 이익률이 20%까지 뛸 것이라고 자신한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대부분 일본의 전자 대기업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데도 일본전산은 어떻게 괄목할만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얘기는 작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 이익률 배증 프로젝트 가동 = 2008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일본전산의 경리부문이 2009년도에 1200억 엔의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임원회의에서 보고했다. 리먼 쇼크로 수주량이 반 토막 난 상황이었다.

매출이 절반으로 줄면 한 달에 100억 엔씩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1973년 창업 이후 “절대 직원은 해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지만 임원회의에선 “이번엔 감원을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가모리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에 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당시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회사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이후 더욱 큰 회사로 성장한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들 회사가 대공황을 극복한 비결은 ‘이익률 배증(WRP)’이라는 개선 프로젝트였다. 매출이 반으로 줄더라도 종전과 똑같은 이익을 내는 경영 혁신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2009년 신년회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번 위기에도 감원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라. 다만 사원은 5%, 간부는 10%씩 임금을 삭감한다.”

임금 삭감은 직원들의 위기감 공유를 위한 조치였다. 나가모리 사장은 “경쟁사들이 움츠릴 때일수록 우리에겐 기회”라며 10만 명 이상의 전 사원들에게 개선 테마를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3개월간 사내에선 5만 건 이상의 비용 절감 등에 관한 개선 아이디어가 나왔다. 보통 이런 공모를 하면 수백 건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위기감이 참여도를 높였다. 직원들의 개선안은 현장에 즉각 반영됐다.

그 결과 매출은 예상대로 절반으로 줄었지만 적자는 나지 않았다. 개선 활동이 빛을 내면서 2009년 4월 이후 이익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주가도 시가총액도 사상 최고치까지 뛰었다.

◇ 비상금 확보도 철저히 = 나가모리 사장은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했다. 실제 적자가 날 경우를 가정해 비상금을 확보했다. 그는 당초 우려대로 연간 1200억 엔의 적자가 난다면 1500억 엔 정도의 여유 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무담당 임원을 불러 은행으로부터 1500억 엔을 대출 받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담당 임원은 “지금 같은 시기에 은행에서 그렇게 큰돈을 빌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빌릴 수 있느냐”고 묻자 “신청 금액의 3분의 1 정도는 나올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가모리 사장은 “그럼 간단하다. 필요액의 3배를 대출 신청하라”고 지시했다. ‘돌파 경영’으로 유명한 나가모리 사장다운 결론이었다. 일본전산은 결국 2000억 엔을 대출받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대출은 6개월 후 모두 갚았다.

일본전산은 지난 3월 말부터 전 사원들에게 임금 삭감분을 1%의 이자를 얹어 지급하고 있다. 1%는 일본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의 2배다. “중요한 건 비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기회는 반드시 있다.”(나가모리 사장)

◇ 원래부터 튀는 호통 경영 =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은 일본에서도 ‘튀는 경영’으로 유명한 경영인이다. 그는 “직원들을 혹독하게 가르치지 않고 경기가 어려워질 때 구조조정 운운하는 사람은 경영인 자격이 없다”고 일갈한다.
[Japan] “리먼 쇼크야, 고맙다”…위기를 기회로
1973년 사장을 포함해 단 네 명의 직원이 시골의 창고를 빌려 시작한 이 회사가 현재 계열사 140개에 직원 수가 13만 명에 달하는 대기업이 된 비결은 나가모리 사장이 쥐고 있다.

나가모리 사장은 소위 ‘삼류’로 불리는 범재들을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명문 대학 출신이나 해외파는 고사하고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크고’, ‘화장실 청소 잘한다’는 이유로 직원을 뽑았다.

이들이 생면부지의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만들어냈다. 나가모리 사장은 “인재는 어려울 때 힘을 발휘한다. 누가 우리 사람인지도 어려울 때 비로소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스피드가 50%다. 중노동이라고 할 만큼의 노력은 30%다. 능력은 15%, 학력은 고작 3%, 회사 지명도라야 2% 값어치일 뿐이다. 이것이 불황을 이기고 돈 버는 기업의 전략 안배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직원의 노력과 속도라는 것이다.

일본전산의 모토는 세 가지다. 첫째, 즉시 한다(Do it now). 둘째, 반드시 한다(Do it without fail). 셋째, 될 때까지 한다(Do it until completed). 저돌적이고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표어는 바로 나가모리식 경영의 원동력이다.

이런 경영이 가능한 것은 그의 리더십 때문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근무 중 1분 1초도 쉼 없이 직원들 혼내기에 바쁘다. 그의 경영 철학도 ‘호통 경영’이다. 그런데도 일본전산의 이직률은 업계에서도 낮은 편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호통을 애정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는 “칭찬만 하면 바보 만들기 십상”이라며 “제대로 크는 사람은 혼나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주변에는 꾸중에 침울해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꾸중을 들으면 자신을 질책하면서 ‘발전적 반발심’을 가지고 일에 더 덤벼든다.

“누군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확실하게 혼낼 수 있는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호통만 쳐서 될 일은 아니다. 호통 경영은 탄탄한 조직 문화 위에 세워진다.

호통 경영의 핵심은 세 가지다. 우선 ‘한번 실수하면 끝장’이나 ‘낙오자가 되면 다신 기회가 없다’는 위기감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부활하고 다시 올라 설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둘째, 상대를 혼낸다는 것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충분한 관심과 좋은 점을 찾은 후에 혼내는 것이 필수다.

셋째, 상대에 따라 혼내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 개인의 환경이나 성격, 소질과 장단점을 파악해 적절한 표현과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회의석상에서 혼내야 할 경우와 사무실에서, 혹은 단 둘이서 혼내야 할 경우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가모리식 경영은 결과적으로 일본전산을 성공 반열에 올려놓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나가모리 사장의 이런 리더십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존경받는 CEO 30인’에 나가모리 사장을 포함시켰다. 그와 이름을 나란히 한 사람은 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내로라하는 경영인들이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