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연세대 임용 비하인드 스토리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뭐, 그런 어려운 질문을…. 잘 지냈습니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은 그간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이 전 부회장은 1973년에 삼성전자 입사해 1992년 무선사업부를 맡은 후 2000년 정보통신총괄 대표이사를 맡아 ‘애니콜 신화’를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7월 1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을 지낸 뒤 2008년 5월 대외협력처 부회장을 맡은 것을 마지막으로 2009년 1월 삼성전자를 떠났다.

충남 보령 출신의 이 전 부회장은 올해 3월 민주당 안희정 충남 도지사의 대항마로서 한나라당 영입설이 돌기도 했다. 야인으로 1년 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시간 때문에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잘 지냈다”고 짧게 답한 것이다.

총장 수준의 예우 받는다
[술집 인터뷰]
삼성전자 이기태사장.
김정욱기자 haby@2006.11.24
[술집 인터뷰] 삼성전자 이기태사장. 김정욱기자 haby@2006.11.24
연세대는 7월 5일 이 전 부회장을 글로벌융합학부 정교수로 정식 임명했다고 밝혔다. 이 전 부회장의 이번 교수 임용은 재계나 학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급 임원이 대학의 석좌교수나 객원교수로 부임하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이 부회장처럼 곧바로 전임교수로 임용될 뿐만 아니라 총장 수준의 최고 예우를 받는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또 교수가 되려면 반드시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도 벗어나 있다. 대개 CEO에 오를 정도면 현업에 있을 때라도 석·박사 학위를 따 놓고 퇴직 후 강단에 서는 것이 보통이다.

이재용 연세대 공과대학 학장은 “건축학과에는 더러 학사 출신 교수가 있는데, 그 외 학과에서 학사 출신이 정교수가 된 것은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파격적 대우에도 불구하고 이 전 부회장의 영입은 쉽지 않았다. 이 학장은 “(강단에 서는 것 자체를) 본인이 매우 고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부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남을 가르친 경험이라곤 통신학교 교관을 한 것이 전부인데, 제가 뭐 학생들을 잘 가르치겠느냐”면서도 “다만 지난 30년 동안 쌓은 감각과 실전 경험을 학생들에게 잘 전수해 주면 기업과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존 교수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이 학장은 “교수들도 아주 반기고 있다. 공대에서 연구하는 프로젝트들은 사실 수익으로 연결돼야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세계적 기업에서 글로벌 사업을 이끌었던 분이어서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이 전 부회장도 “정보기술(IT)이 여러 산업 분야에 융·복합화하는 추세인 만큼 이론보다 실질적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연구 과제를 부여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 커갈 수 있도록 학생들의 커리어 관리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로벌융합학부는 에너지·IT·나노기술 등 기존 학과 체계에서 하기 힘든 융합 학문을 연구하는 연세대 공대의 신설(10번째) 학부다. 지식경제부가 실시하는 ‘IT 명품 인재 양성 사업’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핵심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스타급 CEO 출신을 영입한 연세대는 유리한 고지를 밟은 셈이다.

글로벌융합학부는 학생과 교수가 100%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인천 국제캠퍼스에서 수업이 이뤄지며 학부생은 2011년 3월부터 수업을 받는다. 이 전 부회장의 역할은 대학원생과 학부 3, 4학년을 위한 심화과정을 맡아 연구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이다.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으로서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그의 견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잘 대응하고 있고, 안드로이드의 개방형 운영체제도 확산돼 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좋은 승부가 될 것”이라고 짧게 대답했다.q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