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학문 단위 개편

중앙대의 변화 2년은 학내에 들어서는 순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150억 원을 쏟아 부어 증축한 중앙도서관, 370억 원이 든 15층의 기숙사, 이 밖에도 신축 중인 R&D센터와 약학대학 등 캠퍼스의 지형을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인프라 확충을 통한 외형적 성과와 발전은 내실 있는 변화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대신 학문과 교육의 체질 자체를 바꿔줄 시스템의 전환이 진정한 변화의 조건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그동안 국내 대학의 교육 시스템, 특히 방만하게 운영된 ‘학문 단위’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부문으로 지적돼 왔다. 학과 간 이기주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지체돼 왔던 학문 단위 개편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 바로 중앙대다.

중앙대의 구조개혁을 총지휘하고 있는 박범훈 총장은 “18개의 단과대학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놓은 상태에서는 대학의 형평성 논리에 밀려 연구와 교육,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앙대는 두산그룹을 새로운 법인으로 영입한 후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대학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학문 단위를 재편성했다. 이와 함께 대학 경영의 틀을 바꾸는 혁신적인 개혁안이 이어졌다.

개혁의 시작은 구조개혁안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난해 봄 각 단과대학 교수들로 이뤄진 ‘계열위원회’와 대학본부를 중심으로 한 ‘본부위원회’의 구성이 그 시작. 두 개의 위원회는 각각의 초안 작성을 위해 작년 초부터 협의와 토론을 거쳤다.

2009년 2학기부터는 주말도 반납한 채 각자의 안을 수정, 점검하고 드디어 12월 29일 1차 안을 처음 공개했다. 이후 올해 2월 통합안이 도출되기까지 심도 있는 토론회와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회에는 각 단과대학별 및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이 모두 참여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고 드디어 올해 3월 말에 최종안을 확정했다. 지난 4월에는 정식으로 법인 이사회를 통과해 2011학년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경영 틀 바꿀 혁신적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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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적용돼 운영될 학문 단위 재편성의 기본 목적은 ‘대외 경쟁력 있는 학과 육성, 유사 중복 학과 통합을 통한 교육 수월성 제고, 국제사회가 선호하는 인재 양성’이다.

핵심은 역시 각 단과대학의 재편이다. 현재 중앙대의 학문 단위는 18개 단과대학에 77개 학과로 이뤄져 있다. 이를 10개 단과대학과 46개 학과(부), 61개 모집 단위로 광역화하게 된다.

박용성 이사장은 지난 2008년 말부터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학교 규모에 비해 단과대학과 학과 수가 너무 많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실제로 중앙대는 서울 소재 대학교 중 국립대인 서울대 다음으로 학과 수가 많아 지방 국립대 수준으로까지 확장돼 있었다.

박 이사장은 “옛날에는 학문 단위가 수십 년, 수백 년 갔지만 이제는 10년도 못 가는 것이 있다. 대학의 기득권 세력 때문에 실제 학과는 그대로 두고 학과명, 즉 간판만 바꿔다는 신장개업만 성행했다”며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돼 온 대학 구조조정 지연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중앙대는 기초학문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인문학과 자연계 관련 학과를 광역화하고 의생명공학 전공을 신설해 입학 정원을 늘릴 계획이다. 외국어 관련 학과는 언어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까지 교육 내용의 범위를 확대한다. 공과대학에는 20~30년 후 미래 사회를 선도할 인공지능·로봇공학·의료공학·에너지공학 등의 학문 분야 신설을 검토할 계획이다.

경영계열의 경우 서울과 안성 캠퍼스의 유사 관련 학과를 경영학부로 통합해 국내 최대의 경영학부를 만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한 금융과 물류 산업의 핵심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금융공학 및 국제물류학 분야의 신설도 논의할 예정이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중앙대의 강세 분야였던 예술 분야는 별도의 집중 육성 방안이 마련된다. 이번 학문 단위 개편 안에서도 가장 큰 폭으로 변화가 이어질 예정이다. 우선 기존의 3개 대학 14개 모집 단위가 1개 단과대학, 5개 학부로 광역화된다. 또한 디자인학부를 신설해 시각, 공업·의류 및 인테리어 디자인 전공을 확충해 디자인 산업의 핵심 인재를 육성할 틀을 마련하게 된다.

학문 단위 재배치와 함께 대학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새롭게 구성되는 거버넌스도 주목받고 있다. 각 계열별로 신설하는 ‘부총장제’가 그 핵심. ‘인문·사회·사범’ 계열, ‘자연·공학’계열, ‘의·약학’계열, ‘경영·경제’계열, 마지막으로 ‘예·체능’계열 등 5개로 재편되는 학문 단위는 각 계열별로 부총장을 둬 자율 경쟁 체제를 유도하게 된다.

계열 부총장은 예산, 교원 임용 및 인사, 교육 및 연구 지원 기능의 전권을 가지면서 계열별 행정 시스템을 총괄한다. 이를 통해 계열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의 위상을 갖춘다는 목표다.

부총장 임명장을 비롯해 박 이사장이 수여한 임명장에는 임기 시작을 알리는 날짜만 있을 뿐 종료일은 없다.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소신껏 일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하지만 막강해진 권한 만큼 막중한 책임도 따르는 게 부총장제의 특징이다.

교육과 연구 관련 업무가 부총장의 권한으로 이양됨에 따라 앞으로 총장은 발전기금 모금, 국제 교류, 산학협력단 운영 등 대외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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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별 책임부총장제로 역할 강화

대학 전체의 거버넌스가 바뀜에 따라 행정조직도 현재 12처 69팀에서 11처 22개팀으로 군살을 뺄 예정이다.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을 위한 행정 서비스의 질도 좋아진다. 캠퍼스별로 관리본부를 설치해 학생 종합 행정서비스센터를 통한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학문 단위 재조정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캠퍼스도 이에 맞게 조정될 필요성이 있다. 대학본부는 이를 위해 지난 2월 인천시와 신캠퍼스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천 검단 신도시 지역에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캠퍼스는 이미 추진 중인 경기 하남캠퍼스와 별개로 건설된다.

인천과 하남 두 곳에 모두 캠퍼스가 들어서면 중앙대는 서울캠퍼스를 중심으로 동과 서를 지하철 등 단일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멀티 캠퍼스 체제를 갖추게 된다. 각 캠퍼스에 들어갈 학문 단위와 구체적인 운영 방안은 확정된 학문 단위 재조정 계획과 ‘CAU2018+발전계획’에 의거해 추진될 예정이다.

중앙대의 학문 단위 구조 개혁은 국내 대학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사상 최대 규모다. 글로벌 생존 경쟁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기업의 시스템이 대학 운영에 본격적으로 적용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중앙대는 이를 통해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18년에 국내 5대, 세계 100대 대학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