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오심, 무엇을 남겼나

스포츠 경기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돼야 한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심판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경기를 주관한다. 심지어 심판의 오심까지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심판의 권위를 존중한다.

그러나 이번 남아공 월드컵은 심판들의 오심을 권위로만 인정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은구의 마이애미 통신] 권위에만 급급해선 ‘신뢰’ 금가
한국은 지난 6월 17일 아르헨티나와의 조별 예선에서 1 대 2로 뒤지던 후반 31분, 이과인에 쐐기 골을 허용했고, 결국 1 대 4로 패했다. 당시 리오넬 메시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골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과인에게 연결되면서 실점했는데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

당시 한국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맹추격하고 있던 터라 오심이 없었다면 경기 양상은 충분히 뒤바뀔 수도 있었다.

또 미국은 슬로베니아와의 경기에서 2 대 2로 팽팽히 맞선 후반 41분 미국의 모리스 에두가 넣은 골을 쿨리벌리 주심이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아 거센 논란을 불렀다.

외신에 따르면 호세 마르시아 가르시아 아란다 FIFA 심판위원장은 “쿨리벌리 주심의 반칙 선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면서도 “FIFA 심판위원회에서 보기에 좋지 않은 판정도 있었다”며 오심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잉글랜드는 독일과의 16강전에서 1 대 2로 뒤진 전반 38분께 미드필더인 프랭크 램퍼드가 찬 공이 크로스바의 아랫부분에 맞고 골문 안쪽으로 떨어졌다가 튀어 올랐으나 골로 인정받지 못했다.

수차례 방송된 TV의 느린 화면에서는 명백한 골임이 확인됐다. 오프사이드나 경고 등에 관한 오심 판정은 상당수 출전국들이 한 차례 이상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빈번하게 쏟아졌다.

유연성 담보돼야 신뢰 얻어

심판의 오심은 비단 축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퍼펙트게임이 오심으로 불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6월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 아만도 갈라라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9회 말 투아웃까지 26명의 타자를 맞아 한 차례도 진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 명만 아웃시키면 퍼펙트게임의 대기록이 가능했다. 그러나 27번째 타자가 친 땅볼이 1루로 정확하게 송구됐다. 누가 봐도 아웃이었다.

그런데 1루심 짐 조이스는 세이프를 선언했다. 조이스는 경기 후 “내 심판 인생의 최대 오점”이라며 “오심으로 퍼펙트게임을 놓친 갈라라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심을 해결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비디오 판독을 활용하는 것이다. 문제가 소지가 있을 때 즉시 비디오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축구는 다른 경기와 달리 경기 도중 쉬는 시간이 없어 비디오 판독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첨단 장비가 발달해 신속한 판단이 가능한 만큼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3D TV를 통해 경기를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중계 카메라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경기 장면을 포착하기 때문에 앞으로 심판의 오심은 더욱 명확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오심은 심판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심판의 권위에 급급하다가 더 중요한 경기의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국가정책이나 기업들의 전략도 오심 논란에 자주 휩싸인다. 과거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서는 오심도 경제 성장의 한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와 스마트폰 등 모바일 환경의 변화로 대중들의 감시와 여론 조성이 활발해지면서 오심은 심각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는 ‘뇌관’으로 변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 사업은 명백한 오심으로 판정이 났지만 정부가 권위를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종시는 한 차례 오심을 번복했다가 다시 뒤집어 판정의 신뢰성을 상실했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오심’에 대한 소비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스포츠가 오심으로 얼룩지고 있는데 이를 바꾸지 않고 권위에만 연연한다면 언젠가는 팬들의 외면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정부 개발 정책과 성장 위주의 기업 전략도 권위에 의존하기보다 오심을 즉각 받아들이고 번복할 수 있는 유연성을 담보해야만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을 것이다.

맨해튼(미 뉴욕 주)=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