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자립심 길러주신 프런티어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자립심’을 길러야 한다고 전라도 광주에 혼자 내려 보내 학교를 다니게 했다. 이때 나는 혼자 지내는 법을 알게 됐고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2010년 6월의 어느 날 잠실에서 앱(App) 개발자 콘퍼런스가 열렸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모인 자리인지라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고 연사도 30~40대다.

나는 62세의 나이지만 콘퍼런스의 연사로 나서 청바지를 입고 ‘스티브 잡스처럼 마케팅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젊은 개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앱 비즈니스에 대해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습관은 아버지가 그렇게 나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육사 출신이어서 전쟁 후 미국에 연수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미국이 신문명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고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졌다.

1970년대에 군을 전역하고 농협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컴퓨터를 견학하셨다. 작은 빌딩 크기 만한 CDC3300컴퓨터를 보고 온 후 아들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오늘 KIST에서 컴퓨터라는 것을 보았는데 앞으로 엄청난 일을 할 것 같다. 그러니 너희들도 컴퓨터를 배워라.”

이렇게 컴퓨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진공관으로 된 어마어마한 크기의 컴퓨터를 보게 되었고 코볼(COBOL)이라는 언어로 프로그래밍하면 펀치 카드로 구멍이 뚫린 카드를 읽어 실행했다.

1973년에는 프로그래밍을 배운 사람이 드문지라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회사의 영업 사원이 될 수 있었다. 컴퓨터 영업을 하면서 대기업의 엘리트들을 알게 됐다. 삼성전자가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면서 컴퓨터 영업을 할 사람을 찾고 있던 중 나를 알게 되었고 같이 일하자는 권유에 자리를 옮겼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아버지는 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남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없으니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니 출근 시간 30분 전에 출근하고 퇴근 시간 30분 후에 퇴근해라.”

삼성은 8시 출근이지만 나는 7시 30분에 출근했다. 그리고 낮에는 열심히 기업체와 공공기관을 돌아다니며 컴퓨터 영업을 했다. 영업을 잘해 보자는 생각으로 마케팅을 공부하게 됐고 삼성과 HP가 합작회사를 만들면서 나는 삼성HP의 마케팅 실장이 됐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자립심’을 길러야 한다고 전라도 광주에 혼자 내려 보내 학교에 다니게 했다. 이때 나는 혼자 지내는 법을 알게 됐고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45년 전 쯤에 읽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화살이 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온힘을 기울여 그대들을 구부리고 있다.” 로마 이야기 중 시저가 말한 “소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닭의 볏이 되라”는 구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대학 때는 서울로 올라왔지만 이번에는 부모님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다시 혼자 살아야 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해 그런지 독립심이 강하다. 마흔 살이 되던 해, 나는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하이테크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그 후 인터넷 비즈니스가 시작되자 인터넷 벤처 회사를 만들었고 인터넷 거품과 함께 이 회사도 사라졌다. 나는 빚을 지고 3년 정도 고생했다.

아날로그 비즈니스로 다시 돌아와 기업체에 경영 강의를 하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것은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 책 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아서인 것 같다. 지금까지 쓴 책이 경영 도서만으로 59권이다.

경영 도서를 쓰다 보니 새로운 경영 기법과 기술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아침 7시면 출근해 책을 쓰고 새로운 기술에 대해 공부한다.

지난 40년 동안 컴퓨터는 진화를 거듭했다. 메인 프레임 컴퓨터에서 미니 컴퓨터로, 다시 퍼스널 컴퓨터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변화했다.

유선 인터넷은 무선 인터넷으로 모습을 바꾸는 동안 나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나의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은 아버지가 40년 전에 디자인한 내 운명이다.

[아! 나의 아버지] 자립심 길러주신 프런티어
김영한 앱컨설팅 대표


1948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석사. 삼성전자와 휴렛팩커드에서 근무하면서 쌓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1988년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으며 국민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거쳐 마케팅MBA 대표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