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기대하는 위안화 절상 효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3일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월 26∼27일 토론토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G20 정상회의에서 절상 압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돼 온 위안화 환율과 관련, 지난 6월 19일 인민은행을 통해 절상 시사 성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 2년간 실질적으로 운용해 온 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를 복수 통화 바스켓제에 기반한 관리형 변동 환율제로 되돌린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압박 해소 그 이상의 전략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속 성장을 위해 성장 모델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차이나데일리)”이라는 설명이다. ◇ 새로운 출발점에 선 중국 경제 = 리커창 중국 부총리는 6월 22일 정치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회가 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을 주제로 가진 회의에서 “중국은 경제 발전 방식을 빨리 바꿔야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있다”며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 분쟁, 자산 버블, 연쇄 파업, 묻지 마 살인과 같은 사회 불안이 불거지면서 개혁개방 30년 고성장을 받쳐온 발전 모델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 정책은 경제 발전 방식 전환의 주요 수단이라는 게 중국 당국의 인식이다. 위안화 절상이 성장 동력을 투자와 수출에서 소비로 다원화해 해외 충격에 강한 경제 체질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세계시장으로의 부상이 탄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그랑 상파뉴산 포도만을 100% 사용해 100년 이상 숙성해 만든 코냑 루이 13세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곳으로, 명품 시장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레미마틴은 지난해 9월 한정판 루이 13세 레어 캐스크 43.8의 출시 행사를 중국 구이린에서 가질 만큼 중국 시장을 중시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구매력을 키울 위안화 절상은 레미마틴을 비롯해 루이비통·헤르메스·불가리·티파니 같은 명품 회사 주가에 호재가 될 것(조용찬 중국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율 개혁은 저부가가치 중국 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강한 기업으로 단련시키는 여건도 조성하게 된다. 실제 “2005년 환율 개혁 이후 3년간 21% 위안화가 절상되는 동안 수출 기업의 기술 수준이 올라가고 기업의 환율 변동 리스크 대응력도 커졌다”는 게 인민은행의 진단이다.
리닝 베이징대 민영경제연구원장도 “병법(兵法)에 사지에 몰아넣어야 비로소 살 수 있다(置之死地而後生)는 말이 있다”며 “기업들이 저위안에 의존해 수출해 온 시대가 끝나고 기술 혁신과 노동생산성 제고 등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중국이 6월 22일 일부 철강 제품과 살충제 비철금속 가공품 등 406개 품목에 대해 7월 15일부터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한 것도 무역마찰을 줄이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보조금이라는 보호막을 걷어내 기업들이 스스로 혁신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출 부가세 환급을 받지 못하게 된 대상은 대부분 에너지 과소비와 오염 배출이 많은 품목들이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2003년 취임한 이후 단계적으로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을 줄여 왔지만 금융 위기 이후 수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자 2008년 7월 달러 페그제로 복귀해 저위안을 유지하고 지난해 6월엔 2600개 품목에 대해 최고 17%까지 환급 세율을 적용하는 등 기업에 대한 보호막을 다시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빠른 경제 회복에 기여했지만 과잉생산과 에너지 과소비라는 후유증을 만들고 세계 각국과의 통상 마찰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중국은 환율 보호막을 걷기로 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다. 수출 기업 도산에 따른 고용 불안이 그것이다. 인민은행은 “중소기업에 적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환율 변동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위안화 절상에 따른 핫머니 유입도 중국 정부가 긴장하는 부분이다. “인민은행은 환율이 양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해 핫머니(단기성 투기자금) 유입 억제에 나설 것(위융딩 전 인민은행 통화위원)”이라는 대비책도 들린다.
위안화가 일방적으로 절상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핫머니 유입이 빨라져 결과적으로 자산 버블 억제를 위해 시작한 위안화 절상이 되레 자산 버블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 빨라지는 기축통화 행보 =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장기 전략 아래 위안화의 절상이 필요했다(조용찬 수석연구위원).” 이번 위안화 절상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달러 기축통화 흔들기에 나선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상하이시의 팡싱하이 금융사무국장이 6월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위안화로 무역 결제를 하는 외국 기업에 중국의 주식과 채권 및 은 행간 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하이 내 은행의 해당 계좌에 있는 위안화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위안화 국제화의 큰 걸림돌인 위안화 용도 제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이 중국 증시에 투자하려면 QFII(적격 외국인 기관투자가) 자격을 얻어야 하지만 위안화로 무역 결제하는 외국 기업에는 이에 준하는 특혜를 준다는 것이다.
같은 날 인민은행과 재정부 등 6개 부처는 위안화 무역 결제가 가능한 대상 국가를 홍콩·마카오·동남아이사 등 일부 국가(지역)에서 전 세계 모든 국가로, 중국 내 대상 지역도 상하이와 광둥성에서 20개 성과 시로 확대하는 내용의 위안화 무역 결제 정책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 지도부는 단순한 세계 공장에서 세계경제 질서의 설정자로 거듭나기 위해선 위안화의 국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은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처럼 세뇨리지 효과(화폐 주조권 이득)를 위해 위안화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한다(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겸임교수)”는 분석도 나온다. 위안화 사용 경제권을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은 정부와 민간이 갖고 있는 외화가 3조5000억 달러가 넘고, 해외 화교들이 보유한 자산이 2조 달러 이상으로 기축통화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 대국과 무역 대국에 이어 금융 대국으로 이어지는 강대국의 흥망사를 좇다보면 중국의 다음 행보가 보인다는 게 전 교수의 진단이다.
위안화 절상 등을 통해 이뤄질 위안화 국제화는 중국의 해외 자원 구매 파워를 더 키울 전망이다. 위안화 절상 시사 성명이 나온 후 첫 거래일인 6월 21일 구리·아연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2005년 환율 개혁 이후 1년 이상 글로벌 원자재 시장이 랠리를 펼친 게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중국은 이미 세계 면화의 41%, 납 36%, 아연 35%, 알루미늄 33%, 콩 23%, 원유 9%를 소비할 만큼 원자재 소비 대국이다. 특히 “중국은 올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에너지 소비 대국이 될 전망이다(저우다디 중국 에너지전문가자문위원회 부주임).” 조용찬 수석연구위원은 “위안화 절상으로 중국이 해외 자원뿐만 아니라 해외 부동산 투자와 해외 쇼핑의 큰손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저가 제품 수출로 저금리를 가능하게 했던 중국이 임금 인상에 위안화 절상까지 겹쳐 이젠 인플레이션을 수출해 각국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생산한 제품을 미국 빚을 내 소비하고 그 돈을 중국이 빌려주는 금융 위기 이전의 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변화다.
“위안화 절상이 세계경제의 성장 속도보다 성장 패턴을 바꿀 것(블룸버그통신)”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위안화 절상이 세계경제 지형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