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펀더멘털(fundamentals)’이다. 펀더멘털은 기업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 체력을 뜻한다. 펀더멘털 지표는 크게 성장성과 수익성으로 나누는데, 성장성은 ‘증가율’의 영역이다.

손익계산서의 최상단에 매출액이 있다. 매출액은 캐시 플로(cash flow)의 시작, 즉 제품과 상품을 팔아 받은 돈이다. 가장 대표적인 성장성 지표가 바로 매출액 증가율, 영업이익 증가율, 순이익 증가율이다.

다만 제조업체의 경우 투자 원금이 바로 회수되지는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키친 파동, 주글라 파동 등과 같이 여러 해가 걸려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을 논할 때는 1~2년이 아니라 3~10년 정도로 장기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기업의 성장 평가와 관련해 주식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주가수익률(PER)’이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이다. 비교적 간단한 공식이지만 ‘성장성’이라는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지표다.

A와 B 두 기업이 있다. 둘 모두 EPS가 1000원으로 같다. 주가를 정의하는 기준 중 하나가 수익 가치의 합이라고 하면 두 기업의 주가는 같아야 한다. 하지만 EPS가 같다고 주가가 같은 기업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일례로 A, B 기업의 주가를 각각 1만 원, 2만 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PER가 A기업은 10배, B기업은 20배가 된다.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첫째, EPS 증가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성장성이 다르다는 말이다. 두 기업의 EPS가 똑같아도, 이는 현재의 EPS일 뿐이다. B기업의 향후 3년 평균 EPS 증가율이 30%, A기업은 15%라고 하면(심지어 EPS가 감소할 수도 있다) PER는 당연히 EPS가 빠르게 성장하는 B기업이 더 많이 받아야 한다. PER는 EPS로 투자금을 회복하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둘째, PER를 결정짓는 또 다른 변수는 이익의 ‘안정성’이다. C, D 두 기업이 있다. C기업의 EPS가 매년 증가와 감소를 반복한다. 반면 D기업은 EPS가 매년 꾸준히 증가한다.

그러면 EPS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C기업보다 EPS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는 D기업에 대한 투자 매력이 더 높아지고, 이에 따라 D기업이 더 높은 PER를 받게 된다.

상식적으로 주식 투자는 낮은 주가에, 즉 저(低) PER에 사서 높은 주가에, 즉 고(高) PER에 파는 전략을 추천하고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재미있게도 고 PER에 사서 저 PER에 팔고 나오는 전략이 적절할 때가 더 많다.

주가가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EPS가 워낙 낮기 때문이다. 턴어라운드하는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더욱이 적자에서 흑자 전환하는 기업이라면 최상이다. 이런 기업은 흑자 전환 초기에 가장 높은 PER를 향유하게 된다. 최근 2년간 기아자동차와 하이닉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은 결국 애널리스트로서 누구나 고민하는 기업의 ‘가치 평가(valueation)’로 귀착된다. 애널리스트가 특정 기업에 대해 투자 의견을 제시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목표 주가다.

그런데 목표 주가를 추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 PER를 어떻게 적용하느냐 여부다. 목표 PER에 따라 예상 목표 주가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PER 배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물론 세상만사가 과학의 영역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엔 인간의 직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아트의 영역으로 끝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래도 애널리스트가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선 최대한 직관을 배제하고 과학화하고 계량화한 밸류에이션 방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할 것이다.


[경제산책] 직관을 배제한 과학 투자의 길
조병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약력:
1964년생. 87년 연세대 수학과 졸업. 93년 연세대 경제학 석사. 99년 현대증권 기업분석팀. 2003년 LG투자증권 기업분석팀. 2006년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09년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