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명품산업 벗기다
럭셔리(luxury) 제품, 이른바 ‘명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명품에 눈독을 들이면 ‘된장남·된장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새 명품은 20~30대 젊은이들에게까지 빠르게 파고들며 ‘멋’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 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품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이처럼 루이비통·구찌·샤넬 등 명품들이 이미 모두에게 친숙한 브랜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기업들, 명품과 관련된 파생 산업들, 그리고 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독특한 마케팅 방법들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내 명품 산업의 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봤다.

지난 4월 말 세계 최대의 명품 업체인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는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11% 늘어난 44억7000만 유로(약 6조7363억 원, 1유로=1507원, 6월 17일 기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다우존스 통신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42억5000만 유로를 웃도는 수치다.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명품 업계들은 작년 한 해 된서리를 맞았었다. 지난해 LVMH의 순익 13%, 매출은 1% 줄어들었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에 명품 소비가 되살아나며 LVMH의 1분기 실적도 크게 늘어나게 된 것.

특히 LVMH의 대표적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1분기 매출은 17억3000만 유로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8% 증가했다. 지난해 큰 타격을 입었던 시계와 보석류의 매출은 33% 늘어났다. LVMH는 “모든 브랜드의 매출이 두 자릿수로 늘어났다”며 “명품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회복됐으며 중국 시장이 성장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기존의 명품 소비 지역이 경제 위기의 여파로 명품 소비를 줄인 반면 소득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명품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09년 94억 달러어치의 명품을 사들이며 세계 2위의 명품 소비국으로 발돋움했다. 이 수치는 2008년 명품 소비액 30억 달러의 3배가 넘는 수치다.

한국 역시 중국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만큼 한발 앞서 주요 명품 소비국으로서 소비를 꾸준히 늘려가는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은 매년 20~30%의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국내시장 매년 20~30%씩 성장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김병언 기자 misaeon@ 20100514..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김병언 기자 misaeon@ 20100514..
실제로 국내 명품 업계 빅2라고 할 수 있는 루이비통코리아와 구찌그룹코리아의 2009년 매출액은 각각 3721억 원과 282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34%, 40%씩 성장했다.

영업이익 또한 루이비통코리아는 418억 원을 올려 전년에 비해 35% 늘어났고 구찌그룹코리아는 452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79%나 점프했다.

또 글로벌 기업의 현지법인인 이들 업체와 달리 국내 대기업 계열로 아르마니 등 20여 개 명품을 수입해 업계의 ‘큰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 또한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이 회사의 매출액은 4390억1718만 원, 영업이익은 285억20만 원을 기록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249억2807만 원을 기록, 전년(187억2480만 원)에 비해 62억여 원이나 많은 이익을 거뒀다.

국내 명품 산업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를 둘러싼 관련 산업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명품 유통의 중심지인 백화점의 경우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2010년 4월 주요 유통 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명품의 매출 비중은 10.3%에 이른다.

공항이나 시내의 면세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면세점 중 매출 1위인 롯데면세점의 전국 8곳을 분석한 결과 내국인 매출 비중은 2010년 3월 기준 58%에 이른다.

이들 중 대부분이 조금이라도 싸게 명품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다. 또 중고 명품 및 온라인 명품 업체들도 활황이다.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명품’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약 50만 개의 상품 정보가 나올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명품 전당포, 명품 공동 구매, 명품 경매 등도 등장한 상태다. 이와 함께 잡지·방송 등 명품 관련 미디어 산업, 이른바 ‘짝퉁’으로 불리는 위조 명품 산업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해외 명품 소비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를 ‘가치 소비’의 증가에서 찾고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특별한 가치를 얻고 싶어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중산층 소비자들이 조금 무리해서라도 좀더 비싼 제품을 사들이는 상향 구매 현상, 즉 ‘트레이딩 업(trading up)’도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노려 명품 업체들도 ‘매스티지(대중 명품)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엔트리 명품’을 내놓으면서 부유층이 아닌 일반인까지 명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며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한편으로 온라인이나 미디어를 통한 빠른 정보의 확산도 명품 소비의 증가에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온라인 등을 통해 해외 명품들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국내에도 들어오면서 명품 구입자들 사이에서도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과 다른 제품을 사는 행위’가 또 다른 유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명품의 역사

1837년 루이비통, 프랑스 유지니(Eugenie) 황후 궁정에서 트렁크를 만들기 시작. 같은 해 티에리 에르메스, 마구 제조 회사 설립. 100년 후 손자 에밀이 현대적인 에르메스로 재탄생시킴.
1854년 루이비통, 파리에 첫 매장 오픈.
1895년 토어스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영국에 소개. 보오전쟁 당시 장교들이 착용.
1913년 코코 샤넬, 파리에 첫 매장 오픈.
1915년 일본에 버버리 브랜드 소개됨.
1932년 구찌오 구찌, 대표 상품 구찌 로퍼 출시. 1년 후 아들 알도는 현재의 구찌 로고 탄생시킴.
1935년 살바토레 페라가모, 피렌체에 작업장 오픈.
1947년 크리스챤디올, 허리를 강조한 ‘뉴룩’ 발표. 50년 후 존 갈리아노 ‘새로운 뉴룩’으로 크리스챤디올을 부흥시킴.
1956년 모나코 왕후이자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을 딴 에르메스 켈리백 발표.
1978년 미우치아 프라다, 할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대히트.
1983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전통과 혁신을 겸비한 샤넬로 재창조.
1990년 구찌에 영입된 톰 포드, 도미니크 드 솔레가 함께 구찌를 재부흥시킴.
1999년 버버리, 모델 케이트 모스를 통해 체크무늬 비키니를 선보이며 혁신성 강조.
2001년 에르메스, 도쿄에 11층짜리 ‘플래그십 매장’을 세우며 아시아 본격 공략. 같은 해 상하이에 럭셔리 쇼핑몰이 생기며 명품 시장 형성.
2006년 아르마니와 샤넬, 홍콩에서 오뜨꾸뛰르(맞춤복) 쇼를 개최하며 아시아에 최고급 명품 시장 문 열림.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