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산업 왜 커지나

금융 위기 여파로 해외 명품 시장이 침체돼 있는 반면 국내 명품 산업은 매년 20~30%의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루이비통코리아·구찌코리아 등 ‘명품 빅 2’의 매출액은 2009년 한 해 동안 1500억 원 이상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국에서 해외 명품 소비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가치 소비’의 증가에 주목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특별한 가치를 얻고 싶어 한다.

이에 따라 소비재 시장은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은 ‘보통 상품’과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프리미엄 상품’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마트에서는 기본 품질을 갖춘 저렴한 물건을 원하지만 명품 핸드백 같은 물건은 아무리 비싸도 구입하는 식이다.

즉,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 관계를 넘어 명품을 만드는 기업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중산층 소비자들이 조금 무리해서라도 좀더 비싼 제품을 사들이는 상향 구매 현상, 즉 ‘트레이딩 업(trading up)’도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노려 명품 업체들도 ‘매스티지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매스티지는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의 합성어로 명품 대중화 또는 대중 명품을 가리킨다. 명품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엔트리 명품’을 내놓으면서 부유층이 아닌 일반인까지 명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며 매출을 늘려가고 있는 것.

명품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여러 개를 구입하는 분산 소비 대신 명품 등 최고급 제품을 하나 사는 가치 소비 경향을 늘려가고 있다”며 “이 때문에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에도 소비자들의 명품 수요가 줄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원화 대비 엔화 값 상승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명품 구입을 큰 폭으로 늘린 점도 주원인으로 꼽힌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일본인 매출 비중 가운데 80%가 명품에 집중된다. 특히 올해 엔화 값이 올라 예년에 비해 명품 값이 30~40% 저렴해지자 구매 폭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베일에 싸인 명품 비즈니스 벗기다] ‘가치 소비’·‘신상’열풍 속 매출 쑥쑥
20~30대 젊은이도 명품에 열광

실제로 100엔당 원화 값이 1300원대로 올라선 지난해 10월 이후 국내 백화점 명품 매출이 큰 폭으로 올랐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명품관은 지난 2월 일본인 관광객들의 명품 구입 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14.2배나 증가했다. 현대백화점도 지난 2월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 오르는 등 평균 20~30%대 신장률을 보였다.

한편으로 온라인이나 미디어를 통한 빠른 정보의 확산도 명품 소비의 증가에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최근 국내에서 명품 소비의 핵심 계층으로 떠오른 세대는 바로 정보에 빠른 20~30대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보면 이 같은 분석은 설득력을 가진다.

즉 어떤 명품 제품이 출시됐는데 대다수의 명품 마니아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면 명품을 산 의미가 별로 없다. 하지만 온라인 등을 통해 해외 명품들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국내에도 들어오면서 명품 구입자들 사이에서도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른 제품을 사는 행위’가 또 다른 유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신상 열풍’이다.

온라인의 발달은 한국만의 독특한 명품 유통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바로 ‘온라인 명품 중고 시장’이다. 일례로 대학생 A모 씨가 100만 원대의 신발을 샀다고 치자.

그는 새로운 명품 청바지를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 중고 시장에 이 제품을 90만 원에 팔았다. 명품은 중고라고 해도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새로 손에 넣고 싶은 명품과 기존 명품을 중고 시장을 통해 팔고 사기를 반복하는 ‘인터넷 바꿈질’을 통해 항상 트렌드를 앞서가는 ‘신상족’으로 거듭날 수 있다.

실제로 ‘중고나라’ 등 포털 사이트의 카페를 가보면 중고 명품들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온다. 즉, 초기비용만 좀 들이면 많지 않은 추가금을 들여 사용해 보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의 명품 브랜드 시장은 인터넷 판매 채널이 정식으로 구축돼 있지 않다. 해외의 경우 웬만한 명품들은 인터넷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워낙 온라인 구매 및 중고 거래가 매우 발달한 한국 시장의 특성상 고급 제품으로서의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명품 업체들이 온라인 판매 채널을 닫아 놓고 있는 것이다.

신품 가격 상승으로 ‘샤테크’도 등장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명품 가격이 올라도 판매량은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로 명품 업체들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달러 값이 크게 오르자 ‘환율’을 핑계로 제품 가격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20~30% 정도 오른 가격은 그대로였다. 국내 명품 기업들이 명품 소비의 증가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다.

올해도 일부 명품 업체들은 인기 품목 가격을 슬그머니 올렸다. 인상률은 낮게는 2~3%, 높게는 10~11%에 달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명품 업체 대다수의 본사가 있는 유럽 지역의 통화인 유로화는 원화 대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유로 환율은 지난해 초 1700원 후반 선에서 올 초 1600원 초반 정도로 10% 이상 내렸다.

이들 명품 업체들은 “환율 변동에 관계없이 본사의 가격 정책에 맞춰 국내 판매 가격도 조정하고 있다”며 “같은 모델이라도 매 시즌 원가가 높아지고 인건비·물류비 상승도 반영해야 해 일부 제품만 가격을 올렸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에선 유로화 환율 하락을 이유로 판매가를 2∼7%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국내시장서 명품의 가격이 여러 가지 이유로 꾸준히 오르자 일부에선 명품을 구입해 사용한 뒤 이를 중고 시장에 되팔아 이득을 남기는 ‘샤테크(샤넬+재테크)’가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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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급성장하는 중국 명품 시장

중국, 5년 내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으로
쇼핑몰이 밀집한 상하이 난징루의 시민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
쇼핑몰이 밀집한 상하이 난징루의 시민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0.04.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명품 시장은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로 명품 시장 규모가 전년보다 8%가량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2009년 세계 최대의 명품 기업인 LVMH의 매출액은 1% 줄어들었으며 특히 순익은 13%나 감소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글로벌 명품 시장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진공청소기와 같이 세계의 명품을 ’빨아들이며‘ 폭발적으로 소비를 늘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시사 경제 주간지인 요망신문주간은 지난 4월 세계명품협회 통계를 인용해 2009년 중국의 명품 소비 금액이 94억 달러로 전 세계 시장점유율 27.5%를 기록했으며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명품 소비국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또 골드만삭스가 예상한 작년 중국 명품 소비 금액 50억 달러의 2배에 육박하는 것이며 2008년 명품 소비액 30억 달러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특히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 명품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 5년 후 연간 명품 소비가 146억 달러까지 높아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명품 소비 증가는 중국 사회의 심한 빈부 격차를 반영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거치며 소비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작년 중국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푼 과잉유동성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부동산과 명품 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