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커플’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언어를 쓰고, 역사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데다 최신 TV 쇼 프로그램을 같이 보면서도 서로 극단적인 이질감을 느끼는 나라가 있다. 특히 이들 두 나라 국민들은 상대방에 대해 이질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바로 유럽 대륙에서 ‘괴상한 커플’로 불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다.

폴란드어판 뉴스위크는 최근 ‘공동의 언어로 갈라진 민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두 나라 국민 간 갈등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우선 폴란드어판 뉴스위크는 양국 간에 널리 퍼져 있는 ‘조크’를 통해 두 나라 간 미묘한 관계를 살펴본다.“독일인은 오스트리아인을 이해하길 원하지만 그럴 수 없고, 오스트리아인은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식의 표현을 통해 양국 간 미묘한 심리상을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오스트리아에서 ‘말썽 많은 형제(Streitbare Brueder)’라는 제목으로 독일인을 비꼰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됐다. 이 책에선 “외국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캐나다인·노르웨이인·체코인·칠레인으로 잘못 알아보는 것은 아무 문제없지만 나를 독일인으로 착각하는 것은 큰 모욕”이라는 식의 직설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epa01655886 Staying on a one-day official visit in Hungary, Austrian Chancellor Werner Faymann speaks during his joint press conference with the Hungarian Prime Minister in the Parliament building in Budapest, Hungary, 05 March 2009.  EPA/ATTILA KOVACS
epa01655886 Staying on a one-day official visit in Hungary, Austrian Chancellor Werner Faymann speaks during his joint press conference with the Hungarian Prime Minister in the Parliament building in Budapest, Hungary, 05 March 2009. EPA/ATTILA KOVACS
이처럼 같은 말을 사용하는 이웃 국가에 대해 편하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대중 일간지 빌트는 최근 오스트리아인을 ‘비하’하는 30여 개 농담을 과감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농담’중에는 “빨강·흰색·빨강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국기는 거꾸로 매달 수 없다”라든가 “가장 유명한 오스트리아인은 죽은 위인이거나 아놀드 슈워제네거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처럼 해외로 이민 간 사람”이라는 식의 ‘썰렁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뉴스위크 폴란드판은 이처럼 형제 국가 국민들 간에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로 형식주의적이고, 근엄하며, 딱딱한 프로테스탄트 전통의 독일과 사교성 있고 예의바른 가톨릭 전통의 오스트리아 간 대비와 대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차 대전 후 ‘반독일’ 감정 표출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제 시절 오스트리아로부터 슐레지엔 지역이 독일로 넘어가고, 1866년 보오전쟁(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에서 영토 상당 부분이 넘어간 뒤 20세기 히틀러 시절에는 합쳐지기도 했던 두 나라는 그러나 완전히 하나로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한 역사적 유산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후 유대인 학살이나 전쟁 책임론 같은 부담을 모두 독일에 전가하길 원했던 오스트리아인들의 밑바닥 정서가 독일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됐다. ‘말썽 많은 형제’의 공동 저자인 한네스 라이딩거는 “2차 대전 뒤 국가 재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인들은 중립을 추구했고, 이 과정에서 전범 국가 독일과 거리를 두기 위해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던 히틀러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즉, 오스트리아인들은 히틀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국적이 어디인지를 의도적으로 망각했고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히틀러는 독일인이고, 독일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뿌리 내린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외부에서 보기엔 ‘거기서 거기’지만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온 독일인들이 현지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도 양국 간 미묘한 심성이 자리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오스트리아엔 터키인 다음으로 많은 이주민이 독일인인데 그들은 오스트리아식 독일어를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게 현지인들의 눈에 거슬리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양국 간 신경전과 대립 감정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동화의 움직임도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한때 독일의 대중 일간지 빌트는 “반겨주지 않는 오스트리아로 휴가 가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여전히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40%는 독일인이다. “휴가를 즐기는 독일인 없이는 알프스 산맥 주변 오스트리아는 경제 위기 지대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인들이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의 영향으로 독자적인 오스트리아 독일어를 점차 잊어가고 있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김동욱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