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이번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면 일관된 특징이 있다. 선거 등 ‘외풍’을 이유로 장관들이나 수석들을 도매금으로 갈아 치우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해 국면 전환용으로 인사를 활용하지 않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일관된 인사 철학이다.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 크게 세 번 여권을 개편했는데 그때마다 이런 이 대통령의 신념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그러다가 결국 쇄신 목소리가 터져 나온 지 2~4개월 후에 전격적으로 개편을 실시한 공통점이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이 일었을 때다. 그해 4월 말부터 개각 및 청와대 참모들을 바꾸라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인사 쇄신’을 압박했다. 이 대통령은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1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대통령

/청와대제공
11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대통령 /청와대제공
당시 이 대통령은 “훈련을 세게 했는데 뭘 또 바꿔야 하나”라고 차단막을 쳤고 청와대에서도 “국면 전환을 하기 위해 개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권이 출범한 지 몇 개월이 안 됐는데, 이제 일을 할 만한 상황인데 사람을 바꾸면 ‘어떻게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나’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결국 6월 청와대 참모진 대폭 교체에 이어 7월 초에 개각했다.

불과 두 달 후에 금융 위기가 터지자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됐다. 여당에서부터 인적 쇄신의 불을 지폈다. 금융 위기에 대한 초동 대처 미흡 등의 책임을 물어 경제 라인 교체론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는 “국면 전환용으로 안 한다”고 버텼다.

“전쟁 중 장수를 바꿀 수 없다”, “개각의 ‘개’자(字)도 논의된 적이 없는데 자꾸 얘기가 나오니 당황스럽다”는 등을 내세우며 방어했다. 그러다가 4개월이 지난 2009년 1월 경제 부처 중심의 개각이 단행됐다.

지난해 4·29 재·보선 패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 등을 거치면서 당·정·청을 일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 대통령은 8월 말에 가서야 청와대 참모를 교체하고 9월 초에 총리를 포함한 개각을 실시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압력 계속돼

이번 ‘6·2 지방선거’ 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나라당이 참패하자 화살은 고스란히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를 중심으로 연일 “청와대부터 사람을 바꿔라”고 압박하고 있다.

일단 청와대는 ‘7·28 재·보선’까지 개각과 청와대 참모들 인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공격의 강도가 더 세지면서 당·청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운찬 총리의 여권 쇄신 요구설마저 터져 나오면서 여권은 회오리 속에 들어간 분위기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참패하자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청와대와 정부를 일신하라고 공격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선거는 당이 치르는 것’이라며 당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당·청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번엔 이명박 정부에서 ‘어게인 2006’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장관 한 명을 바꾸기 위해선 거쳐야 할 절차가 적지 않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사람 고르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고 말했다.

후보 몇 사람을 골랐다고 하더라도 세밀하게 검증하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린다. 이 때문에 ‘7·28 재·보선’ 이전에 개각을 현실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각의 시그널을 준다면 그 순간부터 국정 운영이 마비되다시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고민이다.

‘7·28 재·보선’ 전에 여권을 개편할 경우 또 다른 부담이 있다. 장관 후보자들은 청문회를 거치면서 야당의 집중 공세를 받을 수 있다.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히면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청와대 참모들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지만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다만 변수가 있다. 당·청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거나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을 경우다. 청와대가 쇄신에 소극적이라는 모습이 비춰지면서 ‘7·28 재·보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청문회 부담이 없는 청와대 참모들부터 면모를 바꾸고 개각은 선거 이후에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