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파생 비즈니스

지난 4월 1일 오전 인천공항,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직접 귀빈을 맞으러 나왔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이는 ‘명품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

이 전무뿐만 아니라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직접 입국장에 나와 아르노 회장을 ‘영접’하고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의 면세점으로 안내했다.

같은 날 오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도 아르노 회장을 맞이했고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직접 아르노 회장에게 10층 면세점으로 안내했다.

롯데 측은 아르노 회장을 위해 롯데 에비뉴엘 1층 중앙홀에 피아노 연주와 전자악기 공연을 펼쳐 대대적인 환영 행사도 가졌다. 신세계에서도 정용진 부회장이 아르노 회장을 직접 접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노 회장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했지만 국내 유통 업계의 오너들이 총출동해 그를 맞았다. 루이비통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도 물론이지만 백화점과 면세점 등 유통 업체에는 그야말로 루이비통 유치가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르노 회장의 방문 목적은 현재 공항 면세점으로서는 세계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루이비통 매장의 입점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사를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인천공항·롯데면세점·신라면세점이 각자 루이비통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롯데와 신라는 각각 연 매출 4600억 원 안팎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라 루이비통 유치는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사활을 건 경쟁이다.

루이비통은 사람들이 붐비는 공항에 매장이 있으면 명품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는 판단 아래 이제까지 세계 그 어느 공항 면세점에도 매장을 두지 않았다. 인천공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루이비통 매장을 공항 내에 유치하면 세계적인 공항으로서의 입지를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재계 오너 패밀리들이 총출동한 이유
[베일에 싸인 명품 비즈니스 벗기다] 면세점·인터넷 ‘북적’…중고 숍 ‘특수’
박제가 선생은 ‘북학의’에서 “대저 제물은 우물과 같다. 물을 길으면 길을수록 자꾸 가득 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린다”고 말했다. 이는 경제 순환에서 소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말이다.

특히 부유층의 소비가 클수록 국민 경제에 선순환적 영향을 가져온다. 그리고 상류층에게 사치스러운 명품을 중심으로 소비하는 성향은 불가피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명품이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등 외국산 브랜드이므로 이러한 물건에 대한 소비가 우리 기업의 매출 증대, 투자 창출, 고용 증가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명품 소비 행태가 중산층까지 확대되면서 청담동의 명품거리에서부터 인터넷 벼룩시장까지 다양한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우선 유통업에서 명품 매장이 즐비한 백화점의 경우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2010년 4월 주요 유통 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명품의 매출 비중은 10.3%에 이른다. 백화점은 명품 유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아백화점은 한 건물 전체가 명품 브랜드 매장으로 가득 찼고 가장 호화로운 유통 공간으로 손꼽힌다. 이곳에는 아르마니에서부터 에르메네질도제냐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가 넘는 브랜드의 기성복과 피혁 제품, 시계와 보석류, 액세서리와 화장품, 그리고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 고가와 화려함으로 꾸며진 고급 이미지를 판매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이 2~3층의 독립된 매장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이상하게도 백화점 명품 코너나 면세점이 우리나라 쇼핑객의 선호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과 같은 주요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조차 하룻동안 방문하는 손님은 손으로 셀 수 있지만 백화점의 같은 브랜드 매장에는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플래그십 매장에 발 디딜 틈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항이나 시내의 면세점도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원래 면세점은 그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외국인에게 세금을 받지 않는 것이 취지이지만 한국 특산품보다 해외 명품 브랜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국내 면세점 중 매출 1위로 시장점유율 약 50%를 차지하는 롯데면세점의 전국 8곳을 분석한 결과 내국인 매출 비중은 2010년 3월 기준 58%에 이른다. 여행의 기회를 빌려 명품을 미리 쇼핑하려는 이들이 북적대고 있다.
중고 명품매장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르고 있다.
2008.02.2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중고 명품매장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르고 있다. 2008.02.27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또한 대치동 사거리의 은마종합상가는 명실 공히 중고 명품 전문 상가다. 상가의 1, 2층에는 7개의 중고 명품점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명품 가방 및 의류 주얼리 등을 조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려는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용하던 명품을 팔려는 이들을 위해 이 상점들이 온·오프라인상에서 위탁 판매해 주고 있는데 새것처럼 클리닝을 해주고 사진 촬영과 제품 정보, 정확한 감정을 통한 가격 책정, 판매와 배송까지 모든 것을 대리해 주고 15%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곳 중고 명품점의 한 대표는 “갖고 있던 명품에 싫증이 났거나 해외여행 때 샀던 제품을 아이 교육비용 마련을 위해 되파는 주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명품’이란 단어로 검색하면 수천 개의 전문 쇼핑몰이 검색되고 약 50만 개의 상품 정보가 나온다. 백화점·면세점·오픈마켓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뿐만 아니라 개인이 구매해 온 물건을 파는 명품 쇼핑몰도 수두룩하다.

이른바 ‘루이비통 아르바이트’도 최근 등장했는데 명품을 판매하는 개인 점포가 해외 배낭여행 가는 대학생들에게 가방과 지갑을 대신 사오게 하고 그 대가로 5%가량의 수고비를 제공한다.

짝퉁 명품도 어엿한 산업으로 자리매김

최근 명품과 관련해 명품 전당포, 명품 공동 구매, 명품 경매 등의 신종 업체도 등장했다. 특히 명품 전당포는 명품만을 담보로 삼고 급전을 빌려주는 금융업의 일종이다.

그리고 신용카드 업체도 고가품 구매가 늘수록 할부 금융의 수익을 얻으므로 명품 소비는 달가운 존재다. 명품과 신용카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짝퉁 명품 산업의 전문가라는 불명예를 얻으며 ‘메이드 인 코리아’ 짝퉁은 최고급 위조품으로 한국을 찾는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을 통해 수출되기까지 한다.

세계 관세 기구는 전 세계 위조품 핸드백·시계·액세서리·향수·옷 등의 매출 규모는 대략 연간 270억 달러라고 밝혔다. 합법적인 명품 산업 규모의 4분의 1 규모로 짝퉁 가격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마어마한 소비량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명품과 관련해 미디어를 빼놓을 수 없다. 우선 TV가 광고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문제는 간접광고에서 두드러진다. 스타의 출연료를 포함해 막대한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간접광고와 협찬을 외면할 수 없다.

드라마에서는 항상 재벌이나 초상류층 2세가 등장하는데 꼭 극의 내용에 필요해서라기보다 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가 명품의 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지는 명품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매체다.

TV는 간접광고 규제 때문에 상품명은 가려지지만 잡지는 “어떤 드라마에 주인공이 했던 목걸이는 ○○브랜드이며, 어디에서 얼마에 판매한다”는 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명품 광고주들 덕분에 무료로 잡지를 배포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이 마련되기도 한다.

이렇듯 명품 광고주에게 잡지는 제품을 알릴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럭셔리 잡지는 성업 중이며 현재 20여 종에 달한다.

그리고 명품의 상품 정보와 광고를 가득 싣고 부유층이 많이 모이는 곳 즉, 특급 호텔, 수입 자동차 매장, 금융회사 VIP 고객실, 스포츠센터, 백화점 등에 배포되고 있다.

고소득층과 소비 성향이 높은 골드미스의 증가, 명품 선호 정서 등에 힘입어 최근 패션·멤버십·럭셔리·남성 잡지 등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노골적으로 명품 산업을 지지하는 미디어는 케이블방송이다. 다수의 패션 채널에서는 패션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와 스타들이 걸치는 명품을 분석하거나 명품 숍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