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찾아낸 스포츠 ‘틈새 종목’

최근 미국에서 ‘라크로스(Lacrosse)’라는 운동이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잠자리채처럼 생긴 스틱을 이용해 공을 던지고 잡고 슛을 하는 라크로스를 즐기는 인구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라크로스는 원래 북미 캐나다 원주민들이 12세기 초부터 즐겨오던 운동이었다. 이 경기를 본 프랑스 기독교 선교사 장드 브레뵈프(Jean de Brebeuf)가 1637년 유럽에서 ‘라 크로스’라고 기록한 것이 현재의 명칭이 됐다고 한다. 프랑스어의 ‘정관사(the)’에 해당하는 ‘라(la)’와 막대기를 뜻하는 ‘크로스(crosse)’가 합쳐진 말이다.

1856년 캐나다 치과 의사인 윌리엄 조지 비어스(William George Beers)가 몬트리올 라크로스 클럽을 세운 것이 현대화의 시초였고 1928년과 1932년에는 올림픽 시범 경기로 채택되기도 했다.

1987년 첫 리그가 출범했고 두어 차례 이름이 바뀌어 현재는 ‘내셔널 라크로스 리그(The National Lacrosse League)’로 불리며 미국과 캐나다 12개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1년에는 6개 팀으로 구성된 ‘메이저 리그 라크로스(MLL:Major League Lacrosse)’라는 공식 프로리그도 탄생, 현재 미국 내 10개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팀이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라크로스의 저변이 탄탄하다. 현재 대학에 라크로스 팀을 운영하는 곳은 남자는 240개, 여자는 300개다. 미국 내 고교 라크로스 팀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90년과 2008년 사이에 무려 528% 성장했다고 한다.

2007년 조사에 따르면 라크로스 인구는 1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기록으로는 선수만 52만 명으로 2008년보다 8.4% 증가했으며 2001년과 비교하면 2배 증가했다고 한다. 그중의 절반이 유소년들로 구성된 점도 특이하다.

라크로스의 인기 비결은 높은 점수가 나와 축구나 야구처럼 지루하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배우기가 쉽다. 뛰고 잡고 던지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슈팅하는 것이 전부다. 비용도 덜 든다. 헬멧, 눈 보호 장비 스틱, 고무공 등 다해 봐야 30만 원 선 안팎이다.

명문대들의 차별화 전략 적중
[한은구의 마이애미 통신] ‘라크로스’ 선풍적인 인기 몰이 중
이런 라크로스의 숨겨진 매력은 미국 내 스포츠 장비 판매업자들에게 향후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종목으로 주저 없이 라크로스를 꼽도록 만들었다.

빅 리그들이 걸핏하면 리그를 보이콧하니 파업을 하니 하면서 싸움을 하는 것도 이러한 신종 스포츠로 팬들의 관심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라크로스가 인기를 끈 배경 가운데 주목할 것이 있다. 이는 ‘명문 대학’들의 차별화 전략이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인 코넬·프린스턴·브라운·예일대 등은 전미대학체육협회(NCAA)가 운영하는 챔피언십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1년 내내 열리는 스포츠 잔치에 명문 대학들은 찬밥 신세다. 사실상 공부만 잘하는 대학인 셈이다.

해마다 전국을 ‘3월의 광란’으로 몰아넣는 농구 챔피언십 64강전에서 올해 코넬대가 16강전에 오른 것이 아이비리그 역대 최고 성적일 정도로 명문 대학들은 스포츠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해 왔다. 한국적인 정서로 따지면 ‘대학이 공부 잘하는 곳으로 알려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포츠가 ‘국기(國技)’나 다름없는 미국 대학생들로서는 아쉬운 대목일 수밖에 없다.

명성이 한참 떨어지는 대학에 스포츠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 아이비리그 대학으로서는 말 못할 설움이었다. 농구나 미식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의 유명 선수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스포츠 명문 대학들이 스카우트해 버리기 때문에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새로운 종목을 찾았고 라크로스가 해답을 줬다. 이런 노력 덕에 아이비리그 대학은 라크로스에서는 ‘스포츠 제국’에 가까운 시러큐스·노트르탐·노스캐롤라이나·오하이오스테이트 등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명문 대학들이 ‘라크로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해 이를 자신들의 주력으로 키운 것은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들이 모두 달려드는 분야에서는 돈만 썼지 얻을 것이라곤 별로 없다.

‘틈새시장’을 찾아내 그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라야 한다. 자신의 사업 분야에 ‘라크로스’처럼 새롭게 부상할 인기 종목은 없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