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유통 경로

‘루머’의 속성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사람이 모르는 ‘독점적 정보’의 메리트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이쯤 되면 호기심 어린 소문 차원이 아니라 무언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루머 혹은 정보가 유통되는 이유는 끊임없는 수요 때문이다. 기업·정계·언론계 등을 가리지 않고 정보에 목말라 하는 이들이 존재하게 마련. 불법적인 유통 경로, 또는 확인되지 않은 허위 소문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정보의 유통 자체는 막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지난 2005년 초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연예인 X파일’ 사건은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흐지부지되며 마무리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정보 폭력’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하며 수사 의지를 밝혔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정보지’는 끊임없이 생산돼 올 초에는 ‘X파일 3탄’이 나돌았을 정도다.

“사실로 확인되는 확률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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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최진실은 루머에 의해 희생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전에 자살한 모 남자 배우가 최진실에게서 사채를 얻어 썼다는 게 루머의 내용. 터무니없는 소문으로 밝혀졌지만 루머의 당사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을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증권사 여직원 백모 씨는 결국 40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졌고 다니던 회사에도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주로 연예인들에 관한 루머라면,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한 루머들은 주로 재계와 정계·관가·언론계 등의 소식을 담고 있는 게 특징이다. 소위 ‘찌라시’로 불리는 사설 정보지의 경우 연예가 관련 소식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한 증권사 홍보 담당 관계자는 “찌라시에 나온 내용 중 사실로 확인되는 확률은 정보지가 생산되는 모임별로, 받아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0~30% 수준”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적중률만 놓고 보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정보지의 유혹은 바로 이 20~30%에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때 한보그룹을 비롯한 기업의 부도설, YS 정권 때 차남 현철 씨의 국정 농단 등은 정보지를 통해 알려진 대표적인 ‘특종’ 사례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 몇몇 대기업을 손 볼 것’이라는 루머도 돌이켜보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사설 정보지의 유통 경로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연예인 X파일과 최진실 루머가 돌았던 2005년과 2008년에도 수사 당국의 대대적인 의지가 발표됐지만 진원지와 몸통을 찾아내지 못한 채 결국 수사를 접어야 했다.

베일에 싸여 있는 사설 정보지, 그리고 이들을 유통시키는 세력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유통 경로에 대한 내용은 대략 알려져 있다.

증권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루머는 몇몇 ‘정보 모임’에서 시작된다. 현재 추산되는 모임의 개수는 대략 10여 개 정도. 이들 모임의 멤버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분야의 정보들을 서로 공유해 최초의 정보 자료가 만들어진다. 증권사·은행 등 금융업 관계자, 국회의원 보좌관, 전직 국정원 관계자, 언론사 기자, 대기업 정보 담당자, 경찰 및 검찰 관계자 등이 ‘모임’의 주요 구성원들이다.

평균 1주일에 1~2번꼴로 모이는 이들이 가장 애용하는 장소는 점심시간 이후 낮 시간대의 ‘룸살롱’이다. 방마다 독립된 구조로 되어 있어 보안 유지가 쉽고 이 시간대에는 드나드는 이들도 적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4~5개 정도의 소문(정보)을 내놓으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렇게 취합된 내용들은 멤버 각자가 소속된 기관의 최고위층에게 보고된다. 이때 만들어진 보고서가 최초의 정보지가 되는 셈이다.

모임의 특성상 보안은 생명과 같다. 따라서 멤버로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모임에서는 6개월 이상의 관찰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취합된 정보를 e메일이나 팩스로 전달하는 것도 금기다.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화 내용이 저장되는 않는 특성 때문에 ‘메신저’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인편으로 문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정보 모임을 통해 만들어진 정보지가 멤버들의 소속 기관이 아닌 외부로 유출되는 경로는 확인된 것이 없다. 복잡하게 얽힌 인맥 혹은 몇몇의 경우 금전 관계에 의해 유출된다는 추측 정도가 전부다. 다만 최초의 ‘로 데이터’를 공유하는 모임끼리도 교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중에 유통되는 정보지의 내용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발달로 급속 확산

최초의 모임에서 취합돼 만들어진 정보지는 또 다른 몇몇 모임을 통해 확산되기 시작한다. 사설 정보지 업체들이 접근하는 것이 이 단계다. 인맥이나 금전 등에 의해 정보업체에 넘어간 자료들은 이때부터 돈을 받고 살 수 있는 ‘유료 찌라시’로 둔갑한다.

몇몇 대기업의 경우 정보 담당자들이 따로 있고, 이들이 최초 모임의 멤버들이기 때문에 굳이 돈을 주고 정보지를 사는 일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는 존재한다. 중소기업 등 평소 이런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한 중견기업 사장의 경우 “골프나 술 모임 때 정보지에 나온 내용을 모르고서는 대화에 끼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최근 2~3년 사이 100만 원대까지 시가가 떨어졌지만 한창 비쌀 때는 1년에 600만 원에 이르기도 했던 고가의 사설 정보지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사설 정보지가 음지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면 공인된 정보지들도 존재한다. 언론사가 작성하는 ‘경영 보고서’나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보고서’ 등이다. 특히 언론사 보고서는 이를 원하는 기업체 등에 돈을 받고 판매되기도 한다.

요즘 들어 ‘찌라시’의 파급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인터넷과 메신저 서비스 등 온라인 인프라의 발전 때문이다. 특히 메신저 서비스는 정보의 생명인 속보성 면에서 종이 매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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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전 종이 정보지의 유효 기간이 1주일 정도였다면 최근에 쏟아지는 정보들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메신저의 경우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나 전달된 데이터가 기록에 남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어 보안 유지의 장점이 크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유출된 루머가 급속히 퍼진다는 특징도 함께 지니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 중 이제 막 발을 디딘 신참급 직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투자 가이드로 루머를 확산시키기도 한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생긴 각종 투자 관련 커뮤니티도 새로운 루머의 진원지다. 사설 투자 관련 사이트나 포털의 증권방 같은 곳에는 이른바 ‘작전 세력’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이 모인다.

최근 두산 건설의 유동성 위기, 계열사인 밥캣의 유상증자설 등이 커뮤니티와 메신저를 통해 급속히 전파된 악성 루머들이다. 특정 종목이나 기업과 관련한 정보가 대부분인 이런 루머들은 기존의 종이 정보지와 따로 묶어 ‘증권가 찌라시’로 분류하기도 한다.

커뮤니티의 활성화와 전업 개인 투자자들이 증가하면서부터 오히려 사설 정보지를 능가하는 정보 소유자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증권가 정보지는 그야말로 ‘뜬소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증권사 관계자들조차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최근의 풍속도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