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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은 전 세계에서 동경의 대상이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이 모토를 내걸었다. 복지 1번지로 꼽혔던 북유럽도 그러했다. 스웨덴이 대표적이었다.

경제체제에서도 유럽은 독특한 제도와 전통을 구축해 왔다. 시장경제, 자본주의라고는 했지만 유럽은 달랐다. 광대한 물산, 풍부한 자원, 치열한 경쟁, 승자의 독식…. 이런 개념의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많이 달랐다.

고용 문제만 해도 미국은 쉽게 해고하는 대신 재취업도 쉬운 구조였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았다. 그러나 유럽은 달랐다. 좁은 땅에 제한된 자원을 잘 나눠 먹는 구조였다. 작은 집에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평화 공존해 온 전통이었다.

나눠 먹고 약자를 과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은 사회민주주의적 전통에 기인했다. 국가가 출산을 책임지고, 개인 생활에 과도할 정도로 개입하는 것은 결코 이상 국가나 공산주의 체제의 주장이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경쟁의 원리가 분명한 미국식 자본주의나 회사·기업이 모든 것을 책임지다시피해 온 일본식 자본주의와 달랐다. 그런 유럽식 복지 모델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회 발전 원리가 흔들리는 징후다.
<YONHAP PHOTO-0462> (100522) -- BERLIN, May 22, 2010 (Xinhua) --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L) shakes hands with British Prime Minister David Cameron at a press conference in Berlin on May 21, 2010. Cameron is on his first visit to Germany since becoming British prime minister. (Xinhua/Luo Huanhuan)(dyw)/2010-05-22 10:39:24/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00522) -- BERLIN, May 22, 2010 (Xinhua) --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L) shakes hands with British Prime Minister David Cameron at a press conference in Berlin on May 21, 2010. Cameron is on his first visit to Germany since becoming British prime minister. (Xinhua/Luo Huanhuan)(dyw)/2010-05-22 10:39:24/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공공부문을 비롯해 사회 전체가 향유해 온 집단 철밥통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PIIGS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에서 비롯된 재정 위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공공부문에서만 30만 개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발표가 나왔다. 진보 성향의 노동당을 대신해 13년 만에 보수당이 정권을 잡은 결과다.

과연 유럽식 사회복지는 지금 근본이 흔들리는 것인가. 일시적인 현상인가, 생산성이 떨어지고 인구는 고령화되는데 경기도 침체된다. 이 상황에서 불거진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 급증은 위기처럼 유럽인들에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끔 하고 있다.

적어도 긴 휴가, 조기 은퇴, 은퇴 후엔 적지 않은 연금,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선진적인 의료보험 시스템이 이전처럼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만은 분명해졌다.

유럽인들 스스로도 위기 상황 인정

그간의 일상이 ‘비정상’이 됐고 한계를 노출했다는 점도 확실하다. 유럽인들 스스로도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칼 빌트 스웨덴 외무장관은 “지금 당장은 유럽 국가들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제 모드를 취하지만 조만간 재정 적자에 상응하는 개혁 모드가 유럽의 진정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도 문제 제기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각종 고급문화와 여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데서나 슈퍼 파워로 남을 수 있으리라는 유럽인들의 환상은 재정 위기 때문에 헛된 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식 사회복지는 냉전시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군비 지출을 줄였기에 가능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제 긴축정책으로 정부 지출이 줄어드는 데다 세입도 줄어들고, 인구구조도 사회복지 모델을 유지하기에는 부정적인 환경이라고 진단했다.

복지부문의 공공 지출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남은 부담은 유럽의 청년층과 다음 세대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젊은 세대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고, 이는 세대 갈등거리가 될게 확실하다.

그리스만 해도 현재 기성세대의 공무원들이 업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편하게 일하다 50대에 조기 은퇴한 뒤 이들이 노년을 한껏 즐길 수 있게끔 하기 위해 20대 젊은이들이 70세까지도 일을 해야 할 상황이다. 이들 젊은 세대에 미래가 있을까. 더구나 그리스의 은퇴 노인을 위해 독일의 젊은이들이 세금 부담을 더 하려 들까.

이러니 유럽 각국이 복지 혜택을 줄이는 길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먼저 영국의 새 정부가 대대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30만 개 감축을 내걸었는데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 서비스 종사자는 3만여 명(8.7%)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경비가 25%씩 삭감되는 기관도 있다. 이 작업을 120년 만에 최연소 재무장관인 38세의 조지 오스본이 진두지휘한다. 석탄노조와 한판 승부를 벌였던 마거릿 대처 이후 최대의 싸움이 될 전망이다. 그래도 1630억 파운드(2370억 달러)에 달하는 영국의 재정 적자가 감축될지는 미지수다.

프랑스는 퇴직 연령(정년)을 지속적으로 늦춰 연금 지출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독일이 공공연금 대상을 65세에서 67세로 올리는 등 다른 국가들도 연금 지급을 줄일 방침이다. 여기에 덧보태 독일은 매년 100억 유로씩 공공부문에서 긴축에 나선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