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의 법칙

공명이 유비의 아들 유선이 황태자였을 때 ‘한비자’를 읽을 것을 권했다. 한비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함께 지금도 리더의 필독서로 꼽히는 고전으로 통한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인간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비자’는 ‘인간은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동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는 애정도 배려심도 아니고 의리도 인정도 아니며 오로지 이익뿐이라는 냉철하고 일관된 사상을 담고 있다.

‘부하는 늘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기회만 있으면 윗사람에게 달라붙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틈만 나면 윗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에서도 지나친 이익 추구를 경계한다. 그 사례로 ‘잃는 것이 얻는 것’이라는 역설을 지백과 선자의 고사로 들려준다.

춘추시대 말기의 진나라 귀족 지백이 위나라 선자에게 토지를 요구했다. 선자는 그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신하인 임장이 선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유도 없이 토지를 요구했기 때문에 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신하인 임장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무리하게 토지를 요구하는 지백의 탐욕스러운 태도가 자기 파탄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토지를 내주도록 진언했다. 이 말을 듣고 선자가 지백에게 1만 호의 마을을 주자 지백은 득의양양했다.

오만방자해진 지백은 다시 조나라에도 토지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의 진양을 포위했다. 그러자 지백에게 위협을 느낀 이웃 나라들이 단결해 지백에 대항했다. 결국 밖에서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내부에서는 조씨 일파가 공격에 가세해 결국 지백은 멸망하고 말았다.
먼저 주어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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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들려주는 교훈은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희생해야 할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지백에게 빼앗긴 토지는 일종의 ‘선행 투자’ 역할을 했다.

승리를 위한 일시적 손실이었던 셈이다. 이는 우선 양보한 다음에 적을 무너뜨리는 전법이다. 인간 행동의 지도적인 철학으로 ‘이익 중시’를 강조한 ‘한비자’에서도 “잃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다. 잃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탐욕을 자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 까닭에 탐욕으로 자기 파탄에 이른 사례는 역사상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잃어야 한다는 것,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의 인과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기업이 가장 강조하는 것으로 ‘이윤(이익) 중시’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짐 콜린스는 이러한 고전적 관점을 단호히 부정한다.

오히려 일류 기업일수록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일류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익 극대화는 그들의 주요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목표를 추구했는데 돈을 버는 것은 그중의 하나였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비전 기업’들은 기업 자체를 경제적 활동보다 의미 있게 생각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처럼 비전 기업들은 대개 느리게 출발하지만 결국 경주에서 이겼다.”

짐 콜린스는 일류 기업, 특히 수십 년 혹은 100년 이상 지속하며 선도적 위치에 있는 기업을 ‘비전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비전 기업에서 주요 목표나 동인으로 ‘이익의 극대화’나 ‘주주의 부의 극대화’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1802년 설립된 듀폰은 미국 화학공업과 군수공업 분야 일인자로 화학 제조를 시작으로 금융·교통·항공 등 산업 전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다. 그런데 듀폰의 기업사에서 주목할 점이 발견된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맨해튼 프로젝트’에 듀폰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후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듀폰가의 4대 경영인인 피에르 듀폰이다.

1944년 앨러모 연구소에서는 오펜하이머 박사의 지휘 아래 기폭 장치가 장착된 원자폭탄이 극비리에 제작되고 있었다. 피에르 듀폰은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과 맨해튼 계획에 협조하겠다는 비밀 계약을 맺었다.

‘첫째, 듀폰은 원자폭탄 생산을 위한 공장의 설계·건설·안전운행을 일괄 책임진다. 듀폰은 이윤을 1달러로 한정한다. 둘째, 모든 계획에서 듀폰이 개발해낸 신기술은 일괄적으로 육군 소유로 한다.’

듀폰은 6만 명의 직원을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시키는 등 손해를 감수하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거대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성공했고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우라늄 원자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듀폰이 얻은 이윤은 계약대로 단 1달러뿐이었다.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익금을 1달러만 받겠다고 계약한 점이다. 듀폰이 단돈 1달러로 원자폭탄 제조 계약에 선뜻 동의한 이유는 원자폭탄 관련 정보와 기술이 훗날 천문학적인 부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듀폰은 이 ‘어수룩한’ 거래 덕분에 계속적으로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고 오늘의 듀폰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한때 연봉으로 100원을 받은 남이섬 강우현 대표는 한국판 피에르 듀폰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작은 손실을 큰 이익과 맞바꿔라’는 말이 있다. 보다 큰 이익을 위해 작은 실수를 감수하는 것은 이른바 ‘바보 전략’의 중요한 내공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일명 ‘손해 보는 싸움’인 셈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결코 손해 보지 않을뿐더러 반드시 이기고 큰 이익을 보는 싸움이 된다는 것이다.

듀폰, 원자폭탄 제조에 1달러만 받아

청나라의 관리인 정판교가 지은 ‘난득호도경(難得湖塗經)’이라는 책이 있다. 난득호도는 어수룩한 척하기는 어렵다는 뜻인데 이른바 ‘바보경’이라는 성공의 처세술이다.

지혜롭지만 어수룩한 척하고, 기교가 뛰어나지난 서툰 척하고, 언변이 뛰어나지만 어눌한 척하고, 강하지만 부드러운 척하고, 곧지만 휘어진 척하고, 전진하지만 후퇴하는 척하는 게 지혜로운 처신이자 장기적으로 이기는 지혜라는 것이다. “먼저 손해 보는 것이 복을 불러온다”고 강조한다.

정판교는 ‘진짜 바보가 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바보인 척하라’는 자기의 색깔을 감추는 고도의 위장술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략이지 정말 바보가 되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기업 환경은 ‘너 죽고 나 살자’식의 무모한 싸움이 전개되는 곳으로 흔히 ‘정글’에 비유되곤 한다. 이 때문에 현대판 비즈니스 전쟁에서 바보 철학은 경시되기 쉽다. 자칫 눈앞의 이익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더욱이 당장 코앞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쁜데 먼 미래를 내다볼 여유를 가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다들 똑똑한 척, 센 척하며 결코 먼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전진해야 할 때 전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진의 기능과 효과만을 신봉하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추구하면 결국 화근만 불러올 뿐이다.

수나라 때의 문중자는 “멈춤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라며 ‘지학(止學)’을 주창했다. 문중자는 멈춤의 지(止)와 멈추지 않음의 ‘부지(不知)’ 사이가 실제로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자 큰일을 이루는 자와 용렬한 자의 경계라고 갈파한다.

홍콩의 대부호 리카싱 청쿵(長江)그룹 회장은 ‘지학’의 요체를 몸으로 실천하는 경영자로 통한다. 리카싱 회장은 자선사업 등으로 중화권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부와 권력을 지닌 그는 ‘멈춤을 안다’는 뜻의 ‘지지(知止)’라는 두 글자를 사무실에 걸어두었다. 잠시라도 지학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근시안적인 돈벌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손해 보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는 난득호도경의 정신이야말로 조급할수록 마음속에 화두로 되새겨볼 수 있는 경영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잃는 것이 얻는 것이다’, 혹은 ‘얻고 싶다면 먼저 주어라’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의 법칙이 아닐까.


[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퍼주기 마케팅’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