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전쟁이 날지 안 날지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과거 사례를 봤을 때,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봤을 때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충격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윤여권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요즘 기자들로부터 답변 자체가 곤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한 간 긴장이 고조되고, 이 때문에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것과 관련해 일부 기자들이 ‘정말 전쟁이 나겠느냐’, 또는 ‘전쟁이 나면 경제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윤 대변인은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반문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설마 전쟁이야 날까 싶지만 정말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 부처 대변인으로서 어느 쪽으로든 단정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관련 당국자에게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똑 부러진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
나라 밖만 쳐다보는 글로벌 시대 ‘경제’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단지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서만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와 천안함 사건에서 비롯된 지정학적 위험 등 최근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는 요인들이 모두 우리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 부처 수장들은 ‘제한적인 영향에 그칠 것’이라며 시장과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4월 말 1100원을 깨고 1000원대로 떨어질 듯하던 원·달러 환율은 유럽 재정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5월 초부터 반등, 1200원대로 뛰었다.

정부의 천안함 침몰 원인 발표에 이어 북한이 전군에 전투태세를 명령한 것으로 알려진 5월 25일에는 장중 127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하루 수천억 원씩의 순매도를 기록하면서 코스피지수가 1500대 초반까지 급락했었다.

회의 거듭하지만 똑 부러진 해결책 없어

한국 경제가 대외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되면서 글로벌 신용 경색→국내 은행의 외화 유동성 경색→환율 급등의 시나리오가 재연되는 조짐이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한국 스스로가 잘못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은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7.8%에 이르는 등 주요 국가 중 가장 빨리 경제가 회복되는 중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세계경제가 하나의 망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 경제가 악화되면 유로화 가치가 급락, 상대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미국 주가가 하락하면 전 세계적으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한국 주가도 빠지는 식이다.

정부는 석가탄신일(5월 21일)부터 이어진 3일간의 황금 연휴까지 반납하고 관계 부처 합동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문제의 근원이 바깥에 있다 보니 회의를 거듭 해도 똑 부러진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외부 상황과 국내 시장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위기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도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싶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유럽 국가들의 부채를 대신 갚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변수 역시 우리 스스로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상황은 예측 불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 등 국제 신용 평가사에 ‘한국 경제 문제없다’고 설명해야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들이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떨어뜨리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고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들의 외화 조달 금리가 상승,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까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글로벌화된 오늘날의 경제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시장이 많이 개방돼 있는 한국 경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도 바깥에서 벌어진 일로 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경제가 충격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경제 관료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넘어가기에는 한국 경제가 치르는 비용이 너무 크다.

서기열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