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기업의 ‘중국 실패’서 배운다
맥도날드·도요타·BMW·월마트…. 세계시장 1위 기업이면서도 중국 시장에선 한결같이 경쟁자에 밀리고 있는 기업들이다. ‘세계 공장’에서 ‘세계시장’으로 변모하는 중국에서 이들의 실패담이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시장의 선점 기회를 놓치고 △해외 성공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현지화하지 못하면 중국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게 그것이다.
맥도날드는 지난 1월 중국 매장 수를 3년 내 두 배 수준인 2000여 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진출 20주년을 맞아 내놓은 사업 확대 계획이다. 올해에만 하루에 한 개꼴로 새 매장을 열기로 했다.
중국에 이미 2900개 매장을 운영 중인 KFC 따라잡기에 나선 것이다. 맥도날드는 세계시장에선 전체 매장 수가 3만여 개로 1만1000여 개인 KFC를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한 수 아래다. 그 이유는 뭘까.
맥도날드, 중국 현지화 수준 낮아
우선 중국 진출 시기가 1990년으로 KFC보다 3년 늦었다. 품질을 이유로 직영을 고수한 탓도 크다. 중국 내 맥도날드 매장 1100여 개 중 프랜차이즈 점포는 6곳에 그친다. 김명신 KOTRA 중국통상전략센터 연구위원은 “KFC의 중국 성공 요인은 프랜차이즈를 통한 대대적 점포 확장”이라며 “이미 2000년에 입지 선정까지 본사가 알아서 해 주는 원스톱 프랜차이즈를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KFC가 중국 전역의 관광객들이 몰리는 정치 1번지 톈안먼 광장 인근의 첸먼에 1호점을 낸 것과 달리 맥도날드는 개혁개방 1번지 선전에 1호점을 냈다. KFC의 입지가 유동인구 측면에서 훨씬 유리했다.
맥도날드의 중국 현지화 수준이 낮은 것도 KFC에 뒤진 배경으로 꼽힌다. 맥도날드는 고객이 가격을 깎아달라며 점장 앞에서 무릎을 꿇은 TV 광고를 내보냈다가 중국인을 무시했다는 여론에 휘말려 서둘러 광고를 내렸다. 반면 KFC는 모든 닭을 중국산으로 쓰고 현지 기업들로 납품 업체를 확보하는 등 중국과 동반 성장한다는 이미지 심기에 주력했다. 사회 공헌 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KFC는 중국 전문가들로 식품건강자문단을 만들어 옥수수 샐러드 등 중국 입맛에 맞는 메뉴도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 2005년 KFC가 판매하는 매운맛 닭다리 햄버거와 닭 날개 튀김 등에서 공업용으로 쓰이는 수단(sudan) 색소가 발견되자 KFC는 즉각 판매 중단을 취하고 철저한 식품 안전망을 구축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중국에서 불량 문제가 생긴 외국 기업들이 국제 기준을 준수했다고 버티는 바람에 반외자 정서에 휘말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요타와 BMW는 세계 자동차와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선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이들을 압도하고 있다. 도요타와 BMW가 뒤진 이유는 한발 늦게 뛰어든 때문이다. 도요타는 1998년 이치자동차와, BMW는 2004년 화천자동차와 합작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중국에 진출한 1980년대 중반에 비해 10∼20년 뒤진 시점이다.
1980년대 초 당시 중국의 최고 실력자인 덩샤오핑 군사위원회 주석은 도요타에 중국에 자동차 공장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도요타는 “도로교통법도 없는 나라에 생산 공장을 짓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거절했다.
덩샤오핑은 도요타로부터 냉대를 당한 뒤 독일 폭스바겐에 손을 내밀었고 폭스바겐은 전문가들을 파견해 자동차 산업 발전의 설계도를 만들어 줬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자동차 업체 1호가 된 것이다.
중국 고위 공직자들이 타는 관용차가 대부분 폭스바겐 계열 아우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도요타는 중국을 상징하는 사자상이 도요타자동차에 거수경례하는 광고를 실었다가 중국 내 반일감정을 부추겨 곤욕을 치를 만큼 현지화도 순탄치 않았다.
지난 4월 중국 승용차 판매 순위에서 도요타의 합작법인 이치도요타는 5만1500대로 9위에 머물렀다. 폭스바겐은 물론 제너럴모터스(GM) 및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법인에도 뒤졌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시장을 선점한 덕에 쌓은 아성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도 BMW는 올 1분기 전년 동기의 2배 수준인 3만4179대를 팔았지만 여전히 아우디의 아성(5만1449대)을 깨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할인점 업체 월마트는 중국에서 까르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중국 100대 유통 업계 매출 순위가 이를 확인해 준다. 지난해 월마트는 중국에서 340억 위안의 매출을 올려 할인점 순위에서 5위에 머물렀다.
366억 위안의 매출을 기록한 까르푸는 3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월마트가 중국에서 101개 점포를 운영하는 대만 계열의 트러스트마트를 지난 2007년 인수한 덕에 까르푸와의 격차를 좁힌 것. 2006년만 하더라도 월마트는 중국 유통 업계에서 매출이 22위에 그쳐 까르푸(6위)에 한참 뒤졌었다.
월마트는 까르푸와 비슷한 1990년대 중반 중국에 진출했지만 성공 모델을 현지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월마트의 ‘매일 저가격(Every day low price)’ 정책은 저가 제품 판매상들이 즐비한 중국에선 먹히지 않았다.
중국 고객들의 구매 패턴도 월마트 저가격 정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자동차를 몰고 와서 한번에 벌크 형태로 물건을 사가는 미국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자주 와서 조금씩 사가는 구매 행태를 보였다. 이는 비용 증대로 이어졌다. 대량 조달해 대량 판매하는 식의 ‘규모의 경제’ 효과를 중국에선 누릴 수 없었던 것.
폭스바겐 아성 쉽게 흔들리지 않아
또 중국인들이 신선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월마트는 점포가 있는 지역 인근에서 물건을 조달해야 했다. 인공위성까지 활용하는 글로벌 제품 조달망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 온 월마트지만 신선 제품을 공급하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
중국 특유의 지방 보호주의 장벽도 월마트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방정부에 세금징수권을 확대하는 등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그래서 심화된 게 지방 보호주의다. 자기 지역에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을 우대해 주는 풍토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된 것.
월마트는 중국에서 벌어들인 모든 소득의 결제 창구를 남부 선전에 있는 헤드쿼터로 일원화했다. 선전시에만 세금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라이벌인 까르푸에 비해 중국 내 출점 속도가 늦었던 것도 지방정부의 인가가 제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지난 2005년 중국의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출점을 좌지우지한 건 지방정부였다. 특히 월마트가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에 2005년이 돼서야 첫 출점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같은 지방 보호주의 장벽 탓이 컸다. 특히 상하이시는 물류센터를 상하이에 세울 것을 요구했지만 월마트가 이를 거부해 괘씸죄에 걸렸다는 지적도 있다.
월마트로서는 이미 선전과 톈진에 물류센터를 갖춘 상태에서 추가 설립에 큰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물류센터 1개당 120개 점포를 관할하는 게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 내 점포 수가 100개도 안 되는 상태에서 물류센터를 3개로 늘리는 건 월마트가 수용하기 힘든 조건이었던 것.
까르푸가 지역별 구매센터를 세워 지역 특화한 제품을 공급해 성과를 올리고 입점비 등을 통해 수익성을 높인 것과 대조된다. 지방 관료들과의 관시(關係)를 두텁게 쌓은 것도 까르푸의 강점이었다.
월마트의 반노조 정책도 중국에선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세계 5000여 개 점포에 노조를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는 월마트는 캐나다에서 한 점포에 노조가 생기자 이를 폐쇄할 만큼 노조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이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월마트는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월마트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모습으로 중국 관영 언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급기야 월마트는 2004년 11월 중국 내 노조 설립 허용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어 2006년 7월 노조 설립을 허용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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