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구제금융 지원 결정

불확실성과 불안감, 불투명과 불신…. 4불(不)이 문제다. ‘그리스 바이러스’로 불리는 남유럽 사태에 대한 원인, 그리고 위태위태한 세계 금융시장의 현상을 진단하자면 그렇게 된다. 2009년 11월 25일 ‘1유로=1.51’달러였던 유로화의 가치는 2010년 5월 중순 ‘1달러=1.27유로’로까지 떨어졌다. 유로화를 공식 통화로 쓰는 유럽 16개국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5월 초 유로존 16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향후 그리스에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총 1100억 유로였다. 구제금융 사상 가장 큰 규모여서 이 수준이라면 발족 11년 만에 위기에 처한 유로화를 흔드는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당초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불안과 불신이 커져가는 어두운 침체장에서는 역부족이었다.
<YONHAP PHOTO-0570> (100502) -- BRUSSELS, May 2, 2010 (Xinhua) -- Greek Finance Minister George Papaconstantinou (C) shakes hands with European Commissioner for Economy and Monetary Affairs Olli Rehn (R) as President of Eurogroup and Prime Minister of Luxembourg Jean-Claude Juncker (L) stands aside at a press conference after Eurogroup finance ministers meeting in Brussels, capital of Belgium on May 2, 2010. Eurozone finance ministers agreed on Sunday to activate the aid package for Greece, offering along with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110 billion euros to the debt-laden country in the next three years. (Xinhua/Wu Wei) (zw)/2010-05-03 06:24:0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00502) -- BRUSSELS, May 2, 2010 (Xinhua) -- Greek Finance Minister George Papaconstantinou (C) shakes hands with European Commissioner for Economy and Monetary Affairs Olli Rehn (R) as President of Eurogroup and Prime Minister of Luxembourg Jean-Claude Juncker (L) stands aside at a press conference after Eurogroup finance ministers meeting in Brussels, capital of Belgium on May 2, 2010. Eurozone finance ministers agreed on Sunday to activate the aid package for Greece, offering along with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110 billion euros to the debt-laden country in the next three years. (Xinhua/Wu Wei) (zw)/2010-05-03 06:24:09/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구제금융이 방화벽 역할은커녕 위기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지표로 받아들여지는 국면이었다.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로 한데 묶여져 유로존 내 재정 불량 국가로 분류돼 온 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을 넘어 영국까지 ‘잠재 위험국’으로 거론되는 상황에는 분명히 시장이 과민 반응한 탓도 있는 것 같다.

유로존 각국은 정상외교의 일정까지 바꾸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처음 “유럽연합(EU)과 IMF가 함께 나서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기자회견을 갖고 회동을 가졌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대통령과 총리는 유럽 최대 행사 중 하나인 러시아의 전승 6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계획도 바꿨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입장을 바꿔 시장 개입에 나섰다. 5월 둘째 주 일요일 오후 EU의 재무장관들이 긴급 회동했다.

11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도쿄 시장 개장 직전에 결론을 냈다. 유로존에서 5000억 유로, IMF에서 250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7500억 유로라는 사상 유례없는 천문학적인 지원 규모는 이렇게 나왔다. 유럽권과 미국 주가는 즉각 급반등하는 듯했지만 바로 다음날 다시 꺾이는 등 요동쳤다. 불안감이 시장에 깔려 있다.

불안감, 시장에 여전히 남아

신용 등급이 아직은 ‘AA’로 일본과 같은 수준이고, 정부 부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53%에 그치는 스페인이 그리스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는 상황이니 선악과 우열의 비교가 객관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울지 모른다. 7500억 유로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놓고도 ‘그 정도면 됐다’가 아니라 ‘그 정도로 많은 자금이 소요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로 받아들이는 시각, 곧 비관론이 문제다.

이런 분석이 먹히니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실제로 유로존 16개국 전체에 대한 구제금융이라는 비관론이 좀체 가라앉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 유로존의 위기에 대해 의미 있는 분석도 나온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때의 글로벌 금융 위기는 민간 부문 부실이 문제로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국가 재정 악화가 문제라는 지적이 그런 것이다.

민간의 주택 모기지 부실이 전체 경제를 마비시킨 것과 대조적으로 그리스발 남유럽 각국의 재정 위기는 거꾸로 공공 부문(정부)의 부실이 민간으로 전이돼 불안감을 가중시킨다는 얘기다. 현재 상황에선 일리가 있다.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요, 공공의 실패라는 말이 된다. 이렇듯 원인이 다르고 출발점이 다르지만 위기의 ‘점염’ 경로나 위기감의 결과는 비슷하다. 경제적 약자에게 먼저 충격이 미친다는 점은 2008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위기의 골이 깊을수록 시장의 출렁거림도 비례해 심해진다. 자산의 급등락 현상도 여전하다. 늘 달러화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면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설이다. 불확실성이 심해지면 달러에 대한 의존도는 지금보다도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사정에서 EU 정상들이 모이고 뒤이어 재무장관들이 긴급 회동해 한목소리로 시장과 전면전에 나섰기는 했다. 그러나 다시 불신이 가로막고 있고 그 아래 그리스 재정의 실상처럼 불투명한 현실이 더 크게 비치는 상황이다.

유로화는 출범 11년 만에 위기를 맞고 결국 퇴출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헤지 펀드의 공격은 면하게 될까. 이런 전망 자체도 불확실할 뿐이다. EU 각국이 다짐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모든 수단은 유로존 체제를 흔드는 외부 세력을 단호하게 격퇴해낼 것인가. 이것이 초미의 관심사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나저러나 시장 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