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 부문 - 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사장

눈부신 실적 행진…최장수 금융 CEO
1998년 7월 재정경제부 공보관에서 코리안리재보험(KoreanRe, 코리안리) 대표이사로 변신한 박종원 사장에게 닥친 현실은 당시 정권을 이어받은 ‘국민의 정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만신창이가 된 한국의 경제처럼 ‘대한재보험주식회사(현 코리안리)’는 보증보험 영업 손실 3818억 원, 당기순손실 2800억 원(1998년 말)이 예상될 정도로 파산 상태에 직면해 있었다.

1963년 정부 투자 기관으로 출발한 ‘대한손해재보험공사’는 당시 재보험 영업뿐만 아니라 보험기관 감독 업무까지 챙길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국내 모든 손해보험사들이 대한손해재보험공사에 재보험을 드는 것은 당연했다. 1978년 보험기관 감독 권한을 금융감독원에 내주고 민영 ‘대한재보험주식회사’로 전환할 때조차 국내 손보사들의 재보험을 독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재보험 시장이 완전 개방되며 국내 재보험 보호 조치가 사라지면서 위기가 닥쳤다. 35년 동안 정부의 감독권 아래에서 오랫동안 손쉬운 영업을 해 오다 세계 1위 재보험사인 스위스리 등의 대형사들과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1997년 IMF 구제금융 때 회사채 보증보험 실적 악화가 이어지며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1980년대 중반 재무부 손해보험과장 경력을 바탕으로 관료에서 민간 전문 경영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박 사장은 취임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취임 두 달 만에 전체 인원의 30% 감축 △자산관리공사에 보증보험 미구상채권을 매각해 1351억 원 회수 △고객인 보험사들에는 미지급준비금(OS Loss)을 할인 매각해 채무를 최소화면서 위기 상황을 벗어났다. 취임 당시 회기 말 당기순손실 2800억 원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당기순이익 37억 원의 흑자로 전환됐다.

IMF 때 구원투수로 등장…체질 확 바꿔

관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무색하게 회사 체질도 다 뜯어고쳤다. 오랫동안 손쉬운 영업에 익숙하던 조직을 바꾸기 위해 부서의 장기 근속 관례를 바꿔 순환 보직제를 실시했다. “보험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서 전문가가 아니라, 관료 조직처럼 한 분야의 정보를 독점하며 기득권을 누려왔다”는 것이 박 사장의 진단이었다.

생산 설비가 없는 재보험업의 특성상 맨파워를 키우기 위해 윗사람 눈치 보는 문화에서 개인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도록 조직 문화를 바꿨다. 부장급 이상에게 주어지던 독방(獨房)을 모두 허물어 오픈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을 넘어 취임 때부터 해외 진출을 적극 모색했다.

위기를 벗어난 코리안리는 박 사장의 리더십 아래 1999년 이후 11년 동안 당기순이익 누계 5972억 원으로 과거 36년(1963~98년) 동안의 당기순이익 누계 827억 원의 7.2배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박 사장은 올해 5번째 연임에 성공하며 국내 금융 최고경영자(CEO) 중에서는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코리안리의 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원혁희(85) 회장은 지난 3월 19일 본사에서 열린 창립 47주년 기념식에서 “앞으로 주주들이 필요로 한다면 박종원 사장과 나의 제휴 관계는 두 사람의 기력이 소진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얘기하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제조업·서비스 분야에서는 윤종용, 구학서 등의 장수 CEO가 있지만 금융 분야에서는 라응찬 회장이 4연임 중이지만 중간에 공백이 있었다.

현재 국내 유일의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의 국내 점유율은 65%, 나머지는 외국계다. 그러나 코리안리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뤘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세계 12위, 아시아권 1위가 확실시된다. 2010년 기준으로는 세계 10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코리안리는 1998년 발표한 ‘비전 2020’에서 2020년 세계 10위를 목표로 삼았지만 10년 빠른 조기 달성이 예상되면서 지난해 ‘비전 2020’의 목표를 세계 5위로 상향 조정했다.

약력 : 1944년생. 71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73년 행정고시 14회. 89년 재무부 국고국 결산관리과장. 94년 재무부 총무과장. 97년 통계청 통계조사국 국장. 재정경제부 공보관. 98년 코리안리재보험 대표이사 사장(현).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