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의 한류시대’ 열리나

우리 농산물들이 해외시장에서 소리 없이 한류(韓流)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까지 농산물은 해외무역에서 열세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수출 물량이 크게 늘어나며 해외 현지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가공식품을 제외한 신선 농산물의 경우 아직 금액으로는 적은 규모지만 최근 2~3년 사이 수출량은 품목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신선 농산물의 수출 규모는 총 48억 달러로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미국 마이너스 14%, 일본 마이너스 12%, 중국 마이너스 6% 등 주요 경쟁국의 수출액이 감소한 것을 감안할 때 우리 농산물의 선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 농산물은 해외시장에서 고가의 유기농 이미지는 아니지만 중국 등 값싼 농산물보다 믿고 먹을 수 있고 당도나 맛, 그리고 모양도 충분히 상품성을 갖추고 있어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농산물을 전량 수입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 한국 농산물 수입량이 2009년 전년 대비 물량 4.5%, 금액 13.7% 증가를 기록했다. 당근은 전년 대비 4만%, 버섯은 1만5000% 등 일부 품목의 경우 한국 농산물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홍콩은 이제까지 대부분의 농산물을 중국에서 수입해 왔지만 중국산 먹을거리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다른 국가의 농산물로 대체되는 가운데, 한류의 영향에 힘입어 한국 농산물을 찾는 이가 크게 늘었다.
해외 수출량 ‘쑥’…FTA 기회 활용해야
농가 구조조정·생산성 향상 ‘큰 힘’

우리 신선 농산물이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호주까지 수출을 확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농가의 구조조정과 생산성 증대를 들 수 있다. 팽이버섯은 15년 전 100g에 1200원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20원으로 떨어졌다.

인건비와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무려 20분의 1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이런 시장 상황에 따라 100여 개에 달하던 팽이버섯 농가들이 거의가 도산했고 경쟁력을 갖춘 농가 10여 개만이 살아남은 상황이다.

이들은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새로운 종균으로 재무장하고 품질 좋은 팽이버섯을 대량으로 생산하며 기업농으로 변신하고 있다. 중부버섯배양소의 신현교 대표는 “과거 버섯을 배양하는 플라스틱 병 하나에서 80g의 버섯이 생산됐지만 현재는 한 병에서 400g이 생산된다”며 “이전 100개 업체의 총생산량보다 현재 10개 업체가 생산하는 물량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해외 수출량 ‘쑥’…FTA 기회 활용해야
팽이버섯은 처음부터 수출하기 위한 제품 생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품질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인 것이 자연스레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다.

10여 개의 팽이버섯 농가는 올해 ‘KMC’란 이름으로 협업 단체를 구성, 공동으로 해외 바이어를 발굴하고 품질관리에 나섰다. 농가들은 협업 단체를 통해 과당경쟁을 견제하고 바이어의 요구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 결과 지난해 팽이버섯 수출은 총 2300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100% 성장했고 올해는 3000만 달러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산물 수출은 단순 무역이라고 볼 수 없다. 공산품과 달리 일기와 작황에 따라 가격과 물량이 수시로 변하고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부피도 크고 냉장 보관이 요구되므로 물류비도 많이 든다. 환율에도 민감하고 현지 농산물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에 따라 세계 각국의 농산물 수입이 쉬워지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기회다. 우리의 고품질 고부가가치 농산물 수출을 확대할 길이 열리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안전성 무너지면 수출길 막혀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농가에서부터 운송 업체까지 관련된 모든 사람의 각별한 주의와 노력이 요구된다. 지난 2005년까지 해마다 3000톤 가까이 대만으로 수출하던 사과가 2006년 갑작스레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대만의 검역 당국은 우리나라 사과 과수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복숭아심식나방을 자국의 농업 환경을 위협하는 검역 해충으로 판단하고 사과 수입을 금지했다.

농산물에서 불량품, 즉 농약 검출, 유통상의 부패 등이 발견되면 수출할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농산물의 안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aT를 중심으로 농가의 생산부터 유통업체 관리, 검역 지원, 판촉까지 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농산물 수출이 급증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다. aT 수출기획팀의 이원기 팀장은 “한국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생산해 지속적으로 (물량을 맞춰) 수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해외시장에서 외국산 농산물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기관인 aT가 품질에 대한 보증 역할을 하면서 해외 유통업자들의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보증 역할을 위해 aT는 수출 농산물의 안전성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수농산물인증(GAP)을 통해 농가의 토양·수질·잔류농약의 분석 비용을 지원하고, 수출 업체 및 농가에 ID를 부여해 농약 안전 사용을 관리하고 있다. 한편 수출 국가 검역 당국과의 조기 경보 네트워크를 구성해 한국 농산물 중 불량품이 발생할 경우 조기에 수습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해외 수출량 ‘쑥’…FTA 기회 활용해야
국내 농가의 과당경쟁은 효율적 수출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된다. 홍콩과 대만 등에 딸기를 수출하고 있는 엘림무역의 오성진 사장은 “최근 딸기 수출 시장이 확대되자 많은 농가들이 재배 면적을 늘리거나 새로 딸기 농사를 시작하고 있다”며 “시장이 좋다고 농가들이 몰리는 가운데,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농산물에서 해외 검역 시 농약이 검출되면 한국 농산물 전체의 수출길이 막힌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신규 시장이 더 확대되지 않는 상태에서 공급이 많아지면 제살 깎기 경쟁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에 과당경쟁을 경계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aT는 각 품목별로 수출 선도 조직을 지정하고 지원함으로써 생산과 수출까지를 일관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 과당경쟁 해소뿐만 아니라 품질관리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하지만 수출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 더 많은 현지 바이어와 거래를 트고 신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과제는 △수출 물량의 안정적 확보 △통합 브랜드 구축 △주류 시장 개척 등이 꼽힌다.

해외에서 대형 유통업체와 시장 상인에게 납품하는 외국인 농산물 유통업자는 우리 농산물이 정기적으로 일정한 물량을 공급할 수 있어야 수입을 결정한다. 농가들의 작황 사정, 국내 농산물 가격 등의 변수로 인해 납품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농산물 수출길이 닫힌다. 이러한 리스크를 막기 위해 aT는 정부 지정 원예전문생산단지를 구성하고 수출형 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또한 ‘제스프리(Zespri)’나 ‘선키스트(Sunkist)’와 같이 대표 농식품 브랜드 구축을 위해 공동 대표 브랜드 ‘휘모리(Whimori)’를 최근 개발했다. 휘모리는 우수한 한국 농산물을 나타내는 공동 대표 브랜드로 파프리카·국화·배·장미·새송이버섯·김치·팽이버섯 등에 붙여진다. 마지막으로 ‘한식의 세계화’와 맞물려 한식이 해외에 알려질수록 식자재인 우리 농산물도 함께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aT의 이 팀장은 “수출을 하지 않으면 농산물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며 “그동안 품종 연구·개발, 인프라 확보, 시장 개척 등의 기본적인 토양이 마련됐으므로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