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대통령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뭘까.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 대통령은 4월 19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장병 46명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목이 메는 모습을 보이다가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 명령한다”는 대목에서 결국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추도의 뜻을 절절하게 담으려는 취지에서 녹음이 아닌 생방송을 택했다.이 대통령은 “가슴이 터지는 듯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하며 사랑하는 장병들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본다”면서 이창기 원사로부터 장철희 이병까지 하나하나 거명했다. 이 대통령은 4월 29일 진행된 영결식에서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통령이 눈물을 보인 것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 1월 19일 이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경기 고양시의 중증장애인 요양 시설 홀트일산요양원을 찾았다.
홀트장애인합창단 ‘영혼의 소리로’가 “대통령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며 초청 편지를 보낸 게 계기였다. 공연이 시작되고 여자 아이가 ‘똑바로 보고 싶어요’라는 노래를 부르자 이 대통령은 곧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올해 1월 7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 1년 점검회의 자리에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지시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한 김옥례 씨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닦았다.
김 씨는 전세 보증금이 없어 길거리로 나앉을 판이었지만 낡은 봉고차 한 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지 못했고 이 사실을 초등학생 딸이 청와대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본 이 대통령은 129콜센터에서 직접 김 씨와 통화하면서 지원을 약속한 바 있었다.
예정에 없던 현충사 방문의 의미
이 대통령은 2008년 6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에 기자회견을 갖고 “청와대 뒷산에서 시민들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북한 주민들의 피폐한 삶과 열악한 인권 상황을 놓고도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고 한다. 김윤옥 여사도 눈물이 많다.
김 여사는 2009년 2월 이 대통령과 함께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볼 때 “제가 원래 잘 울어서, 눈물이 많이 난다고 해서”라며 준비해 온 손수건을 꺼내 보였다. 김 여사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듯 슬픈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눈물에 있어서만큼은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셈이다.
대통령이 눈물을 자주 비치는데 대해 부정적 시각도 있다. 눈물은 순수해도 대통령을 나약한 인간으로 비춰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정책이 시스템적이 아닌 일시적 전시성 성격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이번 이 대통령의 ‘천안함 눈물’은 과거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과거의 눈물은 다소 감성적이라면 이번에는 감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눈물 뒤에 결연한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장병들을 한 명씩 호명하며 눈물을 보인 후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에게 약속한다. 대통령으로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끝까지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며 “그 결과에 대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이어지고 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예단을 앞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에 대비,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조용한 목소리로 한다고 해서 단호한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호한 대응을 위해 더 확실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특히 4월 27일 이 대통령이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귀경길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당이 있는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방문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의 현충사 방문은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으려고 나가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를 남겼다. 전장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군 통수권자로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각오를 다지고 결연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눈물 뒤의 단호한 의지와 연관 지을 수 있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눈물에만 그치지 않겠다는 ‘눈물의 역설’인 셈이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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