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청와대가 경남도지사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사이에서 어떻게 교통정리할지 골몰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이 장관직을 던지고 지사에 도전한 것은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주류의 뜻을 반영한 결과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이 전 장관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친박근혜계와의 관계 때문이다. 친 박측은 이 전 총장을 공적 1호로 삼고 있을 정도로 굉장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이 전 총장이 2008년 총선 때 친박계 학살을 주도했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총장이 나서게 되면 친박 측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하다. 친박 측은 한발 더 나아가 강력한 대항마를 내세울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전 장관과 이 전 총장, 친박 후보 등으로 한나라당은 세 갈래로 쪼개진다. 경남지사 자리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청와대는 이 전 총장을 주저앉히고 친박 측의 거부감이 덜한 이 전 장관을 내세우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장은 친이명박계를 자처하며 출마를 선언하고 결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달곤 행안부장관이 23일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관련해 강력한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2009.9.23(도준석 pado@)
이달곤 행안부장관이 23일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관련해 강력한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2009.9.23(도준석 pado@)
이 문제는 여권 핵심부의 권력 구도와 맞물려 있다. 이 전 총장은 친이계 핵심 권력 축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최측근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는 이 전 장관을 징발하면서 이 위원장에게 긴급 지원해 달라는 ‘SOS’를 수차례 보냈다. “이 전 총장이 출마하지 않도록 설득해 달라”는 요지였다. 그렇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 전 총장도 이 위원장에게 “도와달라”며 수시로 ‘SOS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위원장으로선 양쪽의 콜을 받고 있지만 선뜻 나설 수 없다. ‘주군’인 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도 힘들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함께 활약한 동지인 이 전 총장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양측 사이에 낀 이 위원장은 ‘꿀 먹은 벙어리 작전’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측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 위원장이 입만 뻥긋해도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권익위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오 위원장 ‘꿀 먹은 벙어리’ 작전

당내 친이계 의원들도 조심스럽긴 매한가지다. 이 전 총장의 영향력이 많이 퇴색했다손 치더라도 과거 대선 당시 MB 캠프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만큼 전직이라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당 지도부는 일단 외형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친이계 정병국 사무총장은 “지방선거에는 누구나 경선에 참여할 수 있고 경쟁을 통한 경선이 되어야 한다”고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청와대는 가급적 공개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특별한 전략을 취하지 않고 있다. 물론 물밑에선 설득 작업을 하고 있지만 자연스레 정리되길 기대하고 있다. 경남 지역 당협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들이 하나 둘씩 이 전 장관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다소 낙관하는 분위기도 있다.

청와대 정무 라인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장을 인위적으로 주저앉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 전 장관이 뒤늦게 뛰어든 데다 현지에 표밭 기반이 없어 고전하고 있다가 최근 의원들이 하나 둘씩 이 전 장관 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게 그나마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탄력을 받게 되고 판세가 기울게 되면 이 전 총장이 경선 레이스를 계속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경선까지 가면 그야말로 친이계 내부의 계파 갈등이 촉발될 수 있기 때문에 (경선)이전에 정리됐으면 좋겠다”며 “그렇지만 이 전 총장이 여권의 중진인데 한번 꺼낸 칼을 다시 넣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참모는 “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며 “심정적으로야 이 전 장관에 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전 총장을 매몰차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정리되지 않을 경우 경선까지 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 대통령이 막판 정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전 총장도 주군의 결정을 무조건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청와대는 보고 있다. 어쨌든 이번 경남지사 선거전은 여권 주류의 신·구 대결 구도에 이 대통령도 직접 연관돼 있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