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선수 바꾸는 FRB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가 핵심 멤버를 대대적으로 교체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인사는 시기적으로 ‘인플레 압력’과 ‘추가 경기 침체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어떤 인사들이 연준으로 새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통화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통화정책은 다른 주요 교역국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눈을 뗄 수 없는 대목이다.

◇ 오바마의 찬스? = 인사 요인은 미 연준의 본부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도널드 콘(67) 부의장이 6월 말 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불거졌다.

콘 부의장은 1970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에 첫발을 들여 놓은 후 지난 40년간 미 연방은행에서 일해 온 금융 통화 분야 베테랑으로, 연준 내에서 벤 버냉키 의장에 이어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로 꼽혀 왔다.

그의 퇴진은 FRB의 기능에 상당 기간 큰 공백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후임 인사를 해야 할 자리가 부의장 자리 외에 두 자리나 더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정부 들어 두 명의 이사가 퇴진하면서 장기 공석으로 남아 있는 자리다.

7월이 되면 7개의 이사직 중 3자리가 비기 때문에 가뜩이나 통화정책과 금융 규제로 바쁜 연준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상황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왜 그럴까.

현재 미국은 금리를 조금만 빨리 올리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어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을 악화시킬 수 있고, 조금만 늦게 올리면 유동성 과다에 따른 초(超)인플레를 초래할 수 있는 미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연준 내부에서는 인플레 위험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과 아직은 고용을 걱정해야 할 때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금융시장 규제 강화 문제를 둘러싸고도 시장 친화적인 자율론자들과 규제 강화론자들 간에 입장이 맞서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로서는 금리 인상 시기를 되도록 늦춰 고용 상황을 개선하고 시장 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인물을 FRB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YONHAP PHOTO-0067> The US Federal Reserve is seen on February 12, 2009 in Washington, DC. AFP PHOTO/Karen BLEIER

/2009-02-13 01:16:02/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The US Federal Reserve is seen on February 12, 2009 in Washington, DC. AFP PHOTO/Karen BLEIER /2009-02-13 01:16:02/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FRB 내부 세력 균형 팽팽 = 현재 FRB 구성(정원 7명)을 보면 금리 인상과 시장 규제 문제에 대해 상당한 균형이 이뤄져 있다. 현 멤버는 버냉키 의장과 콘 부의장, 케빈 마시 이사, 엘리자베스 듀크 이사, 대니얼 타룰로 이사 등 5명이다.

이 가운데 타룰로 이사는 ‘오바마 맨’으로 통한다. 오바마가 지난해 1월 직접 임명했다. 금융 규제와 금리 인상 시기 등에서 미 정부 입장에 가깝다. 버냉키는 전임 조지 부시 정권 때 의장으로 임명됐지만 오바마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다. 아무래도 오바마와 궤를 같이하는 쪽이다.

나머지 세 명은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콘 부의장은 연준 내부 출신이다. 금융 규제엔 강성이지만 인플레 압력에 대해서는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월스트리트 출신인 마시 이사와 듀크 이사는 모두 시장 친화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금융 규제에 반대하는 쪽이다. 그러나 인플레 선제 대응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만약 오바마가 콘 부의장 후임과 공석 두 자리에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에 신중한 인사들을 채워 넣는다면 이 같은 세력 균형은 깨지게 된다.

이들 이사들은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12명 정원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상시 멤버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금리 결정 과정에서 오바마의 입김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과 올 1월 FOMC 회의록을 보면 연준 내부에서 금리 인상론이 상당히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로 FOMC 회의록은 무기명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위원들의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을 통해 발언의 주체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인플레 조기 대응론을 가장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는 사람은 토머스 호이닉 캔자스시티(캔자스 주) 연방준비은행 총재다. 그는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중 재직 기간(19년)이 가장 길다.

그는 지난해 말 이후 줄곧 금리 조기 인상론을 설파하고 있다. 호이닉 총재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제로 수준의 연방기금(FF) 금리가 장래의 유동성 과잉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결국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며 “조만간 긴축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댈러스(텍사스 주) 연방준비은행의 리처드 피셔 총재도 “중국과 같은 큰손이 있고,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 위기가 있기 때문에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계속돼 기준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이 같은 상황이 영원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아직 이들의 목소리가 FOMC 내부에서 소수 의견에 불과하지만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화정책에 직격탄…물갈이 폭 ‘주목’
◇ 로머 CEA 위원장 부의장설
=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했을 때 오바마로서는 빨리 연준 내부에 정부 정책에 동조할 만한 인사들을 배치하는 게 시급하다.

FRB 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상원의 인준 절차를 받아야 한다. 의회 인준 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발에 부딪치게 될 공산이 크다.

버냉키 FRB 의장의 경우 전임 부시 정부 때 임명됐지만 연임 인준을 받을 때 홍역을 치러야 했다. 금융 위기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숫자의 구제 금융을 불투명하게 처리한 데다, 금융 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원 표결에서 찬성 70표, 반대 30표로 겨우 연임에 성공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11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버냉키는 어쨌든 역대 FRB 의장 가운데 가장 많은 반대표를 얻은 인사라는 불명예를 얻고 난 후에야 2월부터 임기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오바마가 자신의 의중을 반영하는 규제 옹호론자들로 연준 이사를 채우려고 할 경우 상원의 인준 과정에서 공화당은 물론 보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을 수 있다.

6월 말 FRB를 떠나는 콘 부의장의 후임으로는 크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 재닛 옐린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타룰로 이사가 부의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은 지난 3월 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콘 부의장의 임기가 만료되기 이전에 후임자가 상원의 인준을 받을 수 있도록 조기에 후임을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어 설명

◆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Federal Reserve Board) =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의 중앙은행 시스템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의 핵심 기구다.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이 통화 및 금융 규제 정책을 집행하는 ‘팔·다리’라면, FRB는 방향을 결정하는 ‘머리’역할을 한다. 7명의 이사(Governor)로 구성된다.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고 인준은 상원이 한다.

FRB의 최대 역할은 통화정책이다. 지급준비율이나 재할인율 변경은 FRB가 단독으로 결정하지만 기준금리는 지역 연방은행 총재들과 함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결정한다.

FRB는 주식거래 신용 규제, 가맹 은행의 정기 예금금리 규제 등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과 규제 정책도 관장한다.

◆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 미국의 중앙은행이자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을 총괄하는 기구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산하기구로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수립하는 곳이다.

위원은 총 12명이다. FRB 이사 7명과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이 위원이다.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당연직 위원이다.

나머지 네 자리는 11명의 연방은행 총재가 1년 주기로 차례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위원장은 FRB 의장이 겸임한다. 부위원장은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맡는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