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세대 활용론

17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숭실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및 입학식에서 새내기들이 밝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217
17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숭실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및 입학식에서 새내기들이 밝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217
글로벌 세대라고 불리는 2010년 현재 20대 초반 연령대들은 유례없는 축복 세대다.

조부모 세대가 전쟁·경제성장·민주화·정보화 등 모든 골치 아픈 숙제를 떠안은 대신 이들은 ‘건강하게, 훌륭한 인재로 자라거라’는 기원 속에 애지중지 자랐다.

‘포스트 베이비 붐’ 또는 ‘386세대’인 이들의 부모 또래들은 세상 물정엔 서툴러도 교육의 중요성만큼은 투철하게 습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이 결실을 본 1980년대에 높은 대학 진학률 속에 성장한 사람들인데다, 1990~2000년대 글로벌화와 지식 정보화 물결을 온 몸으로 감당해 온 세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역사를 통틀어 가장 똑똑한 세대가 이들이다.

G세대는 이들이 길렀다. 공교육 예산을 뛰어넘은 사교육비는 모두 이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고 사교육 시장 또한 이들 또래의 친구들이 장악하고 있다. G세대의 생태계를 모두 조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가르쳐 주듯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G세대의 환경은 그 전 세대가 그랬듯 그들 부모 세대가 만든 생태계다. 이 생태계의 특징을 잘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G세대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관건이며, G세대 활용 전략 방침을 정할 수 있는 준거 틀이 될 것이다.

한편 G세대야말로 그 부모 세대와 질적인 차원을 달리하는 고도의 전략적 지능과 글로벌 관점을 보유한 첫 세대라는 시각이 있다. ‘위키피디아’의 저자 돈 탭스콧이 정의한 ‘디지털 네이티브’의 속성을 지닌 세대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기준 중 한 가지는 ‘디지털’을 ‘배울 것’이 아니라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에선 20대가 그렇게 여기는 첫 세대다(디지털 종주국인 미국에선 30, 40대가 이에 해당될 테지만 애플리케이션 소비자 시장인 한국은 다르다).

‘디지털 네이티브’…IT는 ‘장난감’

한국의 ‘G세대-디지털 네이티브’들은 흔히 게임 세대와 동일시된다. G세대들이 10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디지털이 벤처 중흥의 무기로 간주되면서 그 최종재로 게임 붐이 황사처럼 일어난 때문이다.

대다수 G세대는 1996년 개교한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상징하듯, 똑똑하고 훌륭한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고난이도 학습 과정의 물결 속으로 떼밀려 갔지만 그 스트레스는 ‘스타크래프트’로 상징되는 온라인 게임으로 풀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일부 직업적 필요성에서 자판 두드리는 법을 배운 사람들 외에는 아직도 문맹처럼 ‘자판질’을 못해 컴퓨터가 두려운 40, 50대들은 2010년에도 한강 모래알만큼 많다. G세대는 이들 부모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G세대는 또 업무상의 필요에 따라 떠듬떠듬 컴퓨터를 배우고 호기심에 여러 디지털 기기를 섭렵한 얼리어답터 세대인 30대와도 구분된다.

G세대가 컴퓨터와 온갖 디지털 기기의 진짜 소비자층으로 부상한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네이티브인 G세대는 2010년 벽두, 스마트폰을 만났다. 스마트폰의 수천 가지 애플리케이션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3D를 조우했다.

풍요한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조부모 세대의 근육이 얼마나 떨리며 혹사당했는지 모르고 지식 정보 경제로의 변동기에 적응하기 위해 형님·누나 세대가 얼마나 머리에 쥐가 났는지 모른 채 G세대 앞에 그 최종적 결과물로서 스마트폰과 3D가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역사의 흐름은 항상 이런 것이다. 죽어라고 독립 투쟁했지만 정당한 대우는 받지 못하고, 피땀 흘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지만 정작 콧노래 부르며 달리는 세대는 후세대인 것이다.

386세대 등 G세대의 부모 세대가 이루려던 꿈이 무엇이었건, 자녀 세대들을 위해 그리는 미래의 로드맵과 전략이 무엇이건, 2010년 이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기술에서 편리한 기기로, 문명으로 문화로 ‘(빛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빌 게이츠)’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G세대는 디지털 문명을 누리는 첫 세대로 디지털 문명 덕분에 마치 외계인처럼 전혀 다른 언어와 차원 다른 사고의 소유자들로 자라고 있다.

2001년 12월 24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전 세계에서 개봉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예감했다. 단군왕검 대신 해리 포터가 새로운 신화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10여 년 전에 강남에서 똑똑한 초등학생의 전형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원서로 읽는 아이였다.

지금도 해리 포터 시리즈 원서를 줄줄 읽고 외울 수 있다면 민사고·하나고· 대원외고 등을 넘어 하버드·예일·옥스퍼드·케임브리지 대학교를 갈 수 있을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 40대 조앤 롤링에겐 그 이야기가 밥벌이 수단이고 옛날 영국 전설의 변형일 뿐이었지만 G세대에겐 머릿속 가득 현실과 다름없는 판타지였고, 정말로 그 10년 후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첫 징조가 바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3D다. 스마트폰과 3D를 ‘뭐 그게 그거지’라며 폄훼하는 행태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삼성전자, 자칫 구멍가게로’라는 말의 무서움과 ‘도요타의 추락’의 암울한 미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해리 포터’는 그들만의 신화

G세대가 그들의 부모 세대만큼 나이가 들 동안 전개될 디지털 문명과 문화는 부모 세대가 ‘아마도 22세기나 23세기에나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일들이 눈앞에 벌어지는 모양새로 펼쳐질 것이다.

세계 영화사의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운 2010년 개봉작 ‘아바타’처럼 지구에서 조종되는 아바타 로봇이 달과 화성에서 기지를 건설하거나, 인간과 로봇이 반반 섞인 존재가 생겨나거나, 노화를 질병으로 취급하며 200세 인간 프로젝트가 성공을 눈앞에 두거나 하는 일들이 실현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걱정 없는 태양·풍력에너지의 천국이 되거나, 나노기술의 발달로 동물을 조립해 만들게 되거나, 아파트 대신 나노 텐트가 쳐지거나, 미국을 하루 만에 다녀오거나, 일본과 한국이 경제·문화적 통일을 이루거나, 국회의원이 월급 대신 명예만 얻거나, 빌딩이 텅텅 비는 대신 아무 길거리와 해변에서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업무가 처리되거나, 국내 제조업이 중국·인도·동남아시아 각국으로 옮겨가 노는 사람 천지가 되거나 하는 일들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G세대의 부모 또래 기준으로는 꿈인지 생신지 모를 세상이 펼쳐질지 모른다. 온갖 우주 관련 미스터리가 ‘사실은 사실이었어’라고 밝혀져 뇌리에 번개를 치게 할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역사적 경험들을 G세대는 매우 담담히 ‘어 그랬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태도는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챔피언이 된 후 보였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100m 육상을 8초대에 깬 것 같은 세기적인 이벤트를 연출하고서도 “이긴다는 생각보다는 즐긴다는 생각으로…”, “뭐, 어느 일이건 고생은 다 있는 거니까 굳이 고생으로 생각 안하고…”, “글쎄요,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저도…”라며 천연덕스럽게 굴던 그녀다.

G세대들은 이런 김연아에 대해 ‘소 쿨(So Cool)’이라고 표현한다. 그게 끝이다.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었으니 ‘선수 은퇴’니, ‘연예계 진출’이니 하는 망언을 내뱉지 않는다.

G세대를 다루거나 기업의 마케팅 대상으로 활용하는 데는 앞서 언급한 미래적 관점이 필수다. 미래에 달린 눈으로 현재를 조망해야 한다. 과거의 부산물인 현재의 찌꺼기로는 G세대를 활용하기는커녕 이해할 수조차 없다. 느릿느릿 전통적인 생각을 피력했다가는 접속을 툭 끊듯 간단히 차단될 것이다.

G세대는 미국의 트렌드 마케터들 사이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10대 선지자들’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코 묻은 돈을 야금야금 뜯어가는 온갖 마케팅은 이들이 더 컸을 때 보복당할지 모른다.

한국의 기업들, 정치 업계와 관료들은 G세대의 미래를 상상하는 작업에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한다.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라 100% 공감의 놀라운 ‘아바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보경 트렌드아카데미 대표·SERI 트렌드연구회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