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차의 스포츠 마케팅

‘미국의 국민차’로 불리던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로 미국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언론 보도만 보면 당장이라도 업계 선두로 올라설 것만 같다. 시장점유율로 봤을 때 미국 시장에서 7위권인 현대차가 1~2위를 다투는 도요타를 넘어선다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지만 창사 이후 최대의 기회를 만난 것만은 사실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현재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북미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시장 침투(market penetratio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마케팅의 핵심은 단연 스포츠 마케팅이다. 현대차는 미식축구(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당초 슈퍼볼 직전 4개, 1쿼터에 1개, 2쿼터에 1개 정도 광고를 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3, 4쿼터에도 추가로 광고를 집행했다.

현대차는 슈퍼볼 직전에 터진 도요타의 사태로 ‘광고 운’이 많이 따랐다. 여기에 올 시즌 NFL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명 쿼터백’ 브렛 파브를 광고 모델로 선점한 점도 유리했다. 파브가 소속된 미네소타 바이킹스가 슈퍼볼 진출을 결정하는 콘퍼런스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패한 점이 아쉬웠지만 파브를 광고 모델로 택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또 3년째 슈퍼볼 광고의 내레이션 모델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는 슈퍼볼 직전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아차는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메인 스폰서로 활약하고 있다. NBA를 중계하는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을 볼 때마다 기아차의 로고가 노출된다.

기아차는 또 최근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여자 프로 골퍼 미셸 위의 골프백에 로고를 새기는 후원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3월에 캘리포니아 주 칼스배드에서 LPGA 투어 대회를 공식 개최하기로 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는 주어진 상황들이 대부분 호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현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주도면밀하고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슈퍼볼보다 광고가 더 재미 있다고 말하기도

슈퍼볼 광고는 ‘광고 올림픽’이라고 할 정도로 광고 시장의 최대 격전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슈퍼볼에 어떤 광고로 주목을 끄느냐를 놓고 사활을 건 전쟁을 펼친다. 30초 광고에 등장하는 아이디어를 보면 슈퍼볼보다 광고가 더 재미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슈퍼볼이 끝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슈퍼볼 광고에 대한 인지도를 발표하는 것도 기업들을 긴장시킨다. 광고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질 경우 30초당 250만~3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광고비 손실에다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초특급 모델 기용에도 불구하고 슈퍼볼 직후 USA투데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지도 하위 5개 광고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잡았지만 현대차 광고는 지나치게 밋밋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의 물량 공세에 걸맞게 질적인 문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저가 이미지’를 아직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공공연히 현대차의 브랜드 로고를 떼고 탄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현대’의 발음이 불명확한 점도 문제다. 초기에는 ‘혼다’와 비슷해 유리하다는 말이 나왔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혼데’에서부터 심지어 ‘썬데’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기아차 역시 마케팅을 지나치게 안일하게 전개하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LPGA 투어의 경우 올해 생중계가 거의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국에서 인기를 상실한 상태다.

지난 1995년부터 15년간 ‘삼성월드챔피언십’을 개최하던 삼성이 올해부터 후원을 중단한 배경에는 이러한 인기 추락이 있다.다. 기아차는 인기가 검증된 미셸 위를 모델로 기용했지만 나이키로 이미지가 굳어진 그녀에게서 홍보 효과를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아직까지 돈은 많이 들더라도 검증되고 위험부담이 작은 마케팅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소극적인 마케팅으로는 다시없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진정한 공격적인 마케팅은 도요타가 점하고 있던 위치를 빼앗는 것이다. 그동안 도요타가 집중해 온 마케팅 분야를 연구하면 현대차와 기아차가 어디에 전투력을 집중해야 할지 그 해답이 나올 것이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 주)= 한은구 한국경제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