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 브랜딩 스페셜리스트 낸시 최

4년 만에 찾아온 동계올림픽 시즌이다. 요즘 동계올림픽을 보는 많은 이들은 저마다 똑같은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바로 ‘평창’이다.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을 보면 볼수록 ‘코리아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새삼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평창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데 앞장서 온 낸시 최 대표도 마찬가지다.

2010, 2014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글로벌 PR와 미디어 캠페인의 커뮤니케이터로 활동, 올림픽 전문 미디어 컨설턴트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며 그야말로 열성적으로 유치 활동에 앞장서 왔던 그녀였기에 그 아쉬움과 미련은 더욱 크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잖아요. 앞으로 2018년이 남아 있으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봐야죠. 비록 지금은 유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제 힘이 필요하다면 열성적으로 도울 생각이에요.”

글로벌 리더 1세대 꼽혀

언제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낸시 최 대표에게 한두 번의 실패는 좌절이 아닌 성공을 향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늘 ‘성공’이라는 결과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니다. “전 결과보다 그 과정을 더욱 소중히 하고 즐기는 편이에요. 오늘의 나는 그냥 만들어진 내가 아니기 때문이죠. 시간과 경험이 쌓여 바로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는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이가 왜 단지 숫자인가요? 그 사람의 나이는 그 사람의 축적된 연륜과 경험, 일에 대한 숙련 정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어요.” 이는 그녀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낸시 최 대표를 우리나라 ‘글로벌 리더 1세대’로 손꼽는다. 이는 그녀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1960년대부터 이미 세계를 무대로 일해 온 열혈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인생 항로를 결정짓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됐던 첫 직장은 바로 ‘팬암항공’이다.

“처음부터 세계를 꿈꿨던 것은 아니에요. 그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좀 잘했다 보니 영문과를 들어가게 됐고 영문과를 졸업할 즈음에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영국문화원을 찾았던 것이 저를 이 길로 이끌게 된 거죠.”

문화원에서 일하던 이가 그녀에게 팬암항공의 구인 광고가 실린 신문을 건네주었다. 그냥 단념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다행히 제가 키도 좀 큰 편이고 공부도 제법 했던 데다 얼굴도 그리 못생긴 편은 아니어서(웃음) 최종 합격할 수 있었죠.”

이처럼 쉽게 말하지만 그녀는 단 한순간도 스스로에게 나태해 본 적이 없다. 세계를 무대로 일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안주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그 덕분에 항공사 비서로 일을 시작해 예약·티케팅은 물론 항공 세일즈 업무에 이르기까지 항공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방위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십수 년간 팬암항공을 거쳐 KLM 네덜란드항공, 노스웨스트항공 세일즈 매니저를 두루 섭렵한 후 1990년 국제 관광 홍보 전문 회사를 창업했다.

“창업 역시 지인들의 권유에 힘입은 바 크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다 보니 자연히 세계 각국에 인맥을 갖고 있었는데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한국에는 국제 관광 홍보를 하는 이들이 없으니 낸시가 한번 관광 홍보와 PR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어떠냐고 권하시더라고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자신보다 그녀의 열정과 능력을 믿는 이들이 오히려 더 창업을 권했다. 해외 각국 관광청 및 대사관의 지인들이 먼저 나서서 현지 관광 PR를 같이해 보자고 제의했다.

마침내 1990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씨제이스월드(CJSW)를 창업했다. 그리고 20년, 낸시 최 대표와 CJSW의 행보는 곧 우리나라 국제 관광 및 스포츠 분야 PR 및 마케팅의 역사가 되었다.

오랜 실무 경험으로 축적된 국제 PR에 대한 전문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마케팅 프로모션 등의 전개로 국내는 물론 해외 관련 업계에서 탁월한 업무 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일반 대중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요한 스트라우스 서거 100주년 기념’,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등의 다양한 글로벌 캠페인을 국내에 선보인 것도 바로 그녀다. ‘한국 방문의 해’를 비롯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 해외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전 세계 스포츠 기자와의 긴밀한 네트워크 및 협력 관계와 현장에서의 미디어 로비를 통한 정보 발췌 및 전략 제시로 스포츠 분야에서도 눈부신 활동을 펼쳐 왔다. ‘2009 IBU 평창 바이애슬론 세계선수권 대회’, ‘2009 FIS 강원 스노보드 세계선수권대회’ 등의 국내외 미디어 대상 프레스 콘퍼런스 등을 진행하고 프레스센터를 운영한 것이 좋은 예다.

이 같은 눈부신 성과들 덕분에 그녀의 이름 앞에는 언젠가부터 ‘PR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당연히 따라다니게 됐다. 얼마 전에는 지난 20년간의 PR 스페셜리스트로서의 경험을 살린 비즈니스 에세이 ‘나를 마케팅하고 세계를 PR하라’를 출간해 세계를 꿈꾸는 젊은 층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PR와 마케팅을 하려면 아무래도 국제 정세에도 밝아야 해요.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해야 하죠. 그리고 현지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도 중요하고요.”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라

그래서 그녀는 그녀와 같은 성공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물건·기업·나라를 PR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고 PR 하고 마케팅할 수 있는 사람이 돼라”는 조언을 들려준다. “옷차림·헤어스타일·말투·행동…. 어쩌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들이기에 남에게 나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점검하고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스스로를 디자인해 나가는 것이 좋아요.”

스스로의 디자인에 자신이 없다면 자신이 가장 닮고 싶고 가장 본받고 싶은 롤모델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라는 이야기다.

“저에게는 그런 롤모델이 없었어요. 그 대신 언제나 어떤 자리에서나 자신감과 긍지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키가 큰 편이지만 늘 하이힐을 신고 허리를 쭉 펴고 다닌 것도 바로 그런 자신감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다.

그 자신감은 물론 충분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수없이 많은 현장 경험들로 든든하게 뒷받침된 것이다. 그녀의 자신감은 그녀를 유능하게 만들었고 돋보이게 만들었으며 ‘낸시 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일을 재미있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일 거예요. 일이 즐겁지 않다면 할 필요가 없죠.”

낸시 최 약력 : 이화여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한국 PR기업협회장, 이화 A&P명예회장, 유엔 IAEWP 유엔대사 등을 역임했고 각종 국내외 감사패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빈의 ‘요한 스트라우스 골드메달’과 오스트리아 관광청의 공로 메달을 받았다. 현재 국제 마케팅 PR 전문 기업 (주)씨제이스월드(CJSW)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세상의 창을 보았다’, ‘나를 마케팅하고 세계를 PR하라’ 등이 있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