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약진하는 주류 산업

한국 술이 전 세계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수출 첨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막걸리가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세계화’를 위한 환골탈태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 주류 산업의 국가 경제 기여도는 큰 편이다.

원료가 되는 농산물의 대량 가공을 통해 지역 경제의 풀뿌리 역할을 하며 연관 산업인 주류 유통과 포장업 등을 포함해 약 100만 명의 고용 효과를 올린다.

한식의 세계화·한류 등에 힘입어 우리 술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수록 더 큰 경제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이제는 세계인의 술이 된 와인, 1679년 프랑스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이 제조법을 개발했고 18세기에 이르러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가 보편화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중요한 무역 상품으로 자리를 잡고 아프리카·미국·호주 등지로 전파됐다.

이후 산업이 발달하고 국가 간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와인은 보다 대중화됐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고급화됐다. 프랑스의 메독 지방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독일·미국·호주·스페인 등도 와인의 세계적 생산지로서 명성을 얻으면서 주요 국가 산업 중 하나의 근간으로 성장시켰다.

반면 우리나라는 1909년 일제가 주세법을 만들어 술을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술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사케와 서구의 위스키·와인 등이 세계적인 술로 성장하는 사이 우리 주류 산업은 연구·개발은커녕 국내 주류 시장마저 상당 부분 외국 술에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주류 수출입에 따른 무역수지는 2008년 기준 4억3575달러 적자다. 적자 규모도 10년 전에 비해 4.6배 확대됐다.

하지만 국내 주류의 해외 수출이 최근 급증하면서 주류 산업도 효자 수출 종목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세청이 발표한 ‘주요 주류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출은 6.7%씩 증가, 2003년 1억6611달러에서 2008년 2억2929달러로 5년간 약 1.4배 성장했다.

산업화가 서구에 비해 늦게 진행된 우리나라가 제조업에서 급속도로 따라붙은 것처럼 국내 주류 산업도 최근 급성장하면서 세계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 기폭제는 최근 일본에서 웰빙주로 각광 받으면서 국내에서도 그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막걸리다.

국내외에서 막걸리 붐이 불면서 다양한 고급 막걸리가 속속 개발되고 있고 보관·유통 방법을 개선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서민의 값싼 술로, 농사일을 하다가 새참과 곁들이던 막걸리가 이제는 정상회담의 공식 건배주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지난해 10월 한·일 정상회담 때 ‘자색고구마막걸리’가 건배주로 사용됐고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한국의 날’ 행사에는 쌀과 인삼으로 빚은 고급 막걸리 ‘미몽’이 이용됐다.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막걸리는 세계 정상을 접대할 중요한 한국 술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도 막걸리 수출에 나서

1995년 살균 막걸리가 개발돼 수출 시장이 열렸지만 생막걸리의 경우 워낙 짧은 유통 기간 때문에 일본 시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기술 개발로 기존 10일 이내였던 생막걸리 유통 기간이 최고 30일까지 연장됐고 캔막걸리도 등장했다. 이와 함께 냉장 유통 시스템을 통해 일본·중국·미국에까지 수출이 본격화됐다.

지난 2월 1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9년 농수산물 수출입 내역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630만 달러(약 73억 원)로 2008년보다 41.9% 증가했다. 이는 10년 전 70만5000달러에 비해 9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수출액은 120만2000달러를 기록해 월 단위 수출액으로는 사상 처음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수출량은 7405톤으로 전년보다 35.7% 늘었으며 최근 5년간 연평균 29.2%씩 증가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은 일본으로 전체 수출의 86%(540만 달러어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점차 수출국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에서의 막걸리 붐에 이어 특히 미국에서도 ‘우윳빛 쌀와인(milky-white rice wine)’이란 설명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해 수출량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막걸리 수출액 중 비중은 24.9%(18만7000달러)를 차지했다. 기존 일본 수출이 90%에 육박하고 미국 수출은 7%에 불과했었다. 이 밖에 수출국은 2003년 4개국에서 2009년 중국·베트남·싱가포르·필리핀·영국·터키 등 20개국으로 늘어났다.

국순당은 한류 스타 배용준과 손잡고 내놓은 ‘고시레 막걸리’를 비롯해 생막걸리와 캔막걸리, 그리고 고급 막걸리 ‘미몽’ 등 제품 라인으로 세계 공략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순당은 미국을 중심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에서는 본격적인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국순당의 지난해 막걸리 총 수출량은 55만 병이었고 2010년에는 4배에 가까운 200만 병을 수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냉장 보관·운반이 필요한 생막걸리는 싱가포르·태국·베트남 등 가까운 아시아 시장을 개척할 예정이지만 유통이 편리한 캔막걸리는 인도·네팔·중동·아프리카까지 시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장수 막걸리’를 생산하는 서울탁주는 지난해 갑자기 폭증한 막걸리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크게 부족해 50% 밖에 맞추지 못했다. 지난 해 수출은 약 60만 달러 규모이며 2008년 대비 30% 늘어났다. 서울탁주는 올해 본격적인 수출에 나서 2010년 성장률을 200%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 공급을 위해 최근 식품 전문 유통 회사인 ‘명성 주류’와 손잡고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 서울탁주는 오는 3월 충북 진천에 국내 최대 막걸리 제조장을 준공하고 이를 통해 수출을 위한 공급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서울탁주는 서울 지역 양조장 대표 51명이 주주 회원으로 참여한 조합 형태다.

막걸리가 식품 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자 대기업들도 막걸리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최근 진로가 막걸리 사업을 시작했으며 종합 식품 기업인 CJ제일제당도 막걸리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일본 현지법인 (주)진로재팬이 일본 시장에서 ‘진로 막걸리’를 출시했고 오는 3월부터 일본 전역에 본격 시판한다.

진로막걸리는 진로와 국내 막걸리 제조사인 일송주조(경남 진해 소재)와 제휴로 개발돼 일단 내수시장용이 아닌 수출용으로만 생산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막걸리 사업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막걸리 사업과 관련된 팀을 구성하는 등 사업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 맥주도 아시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맥주의 최대 수출 시장은 홍콩(57.5%)·몽골(18.4%)·중국(7.9%)·미국(5.0%) 순이다. 국내 맥주 수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오비맥주는 지난해 약 779만 상자(500ml×20병)를 수출해 전년(2008년) 대비 24.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오비맥주는 현재 세계 30개국에 20여 종의 맥주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오비맥주의 현지화 전략에 따라 개발된 OEM 맥주 ‘블루걸’은 홍콩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 1위(21%)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몽골에서는 국내시장의 ‘카스’와 동일한 브랜드로 점유율 20%를 나타내며 국민 맥주로 성장했다.

특히 아사히·기린·삿포로 등 강력한 브랜드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일본에서 ‘베르겐브로이’, ‘노이벨트’ 등 오비맥주의 제3맥주(맥주 맛의 발포 알코올 음료) 브랜드는 매년 4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완제품 수출 기준 세계시장 수출량에서 중국 칭다오맥주 다음으로 아시아 지역 내 2위인 오비맥주는 2012년까지 아시아 최대 맥주 수출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이트맥주도 지난해 수출량이 2008년 대비 28.7% 늘어나며 해외 수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하이트맥주는 지난해 534만 상자를 일본·몽골·이라크 등에 수출했다. 특히 최대 수출국인 일본에서 하이트맥주는 오비맥주와 마찬가지로 제3 맥주 시장을 공략해 ‘프라임드래프트’ 등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트맥주는 지난해 일본에 395만 상자를 수출해 2008년 대비 58.5% 신장됐다. 한국 맥주의 인기가 높은 몽골에서는 수도인 울란바토르 기차역 인근에 현지인들이 ‘하이트 거리(hite street)’라고 부르는 상권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 거리의 대부분의 간판에는 하이트맥주 로고가 새겨져 있다.

한편 이라크는 하이트맥주가 지난 2006년부터 수출을 시작해 4년 만에 20배 이상 수출량이 급증했다. 이와 같이 한국 맥주가 해외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철저한 현지화와 한국 맥주의 부드러운 맛과 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통주 양조장 발굴과 현대화 필요

전통적으로 한국 술의 해외 수출은 소주가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전체 주류 수출에서 소주는 여전히 절반 가까이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77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진로소주는 이미 최고 브랜드에 올라 일본 소주 업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해마다 대일 수출량이 늘어 지난해 일본에만 336만 상자(700ml×12병)를 수출해 554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진로소주는 이러한 기세를 최근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옮겨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진로는 중국에 2007년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한 신제품 ‘진로주’를 지난해 11월부터 수출하기 시작했다.

진로주는 총 2년 6개월 동안 7000여 명의 중국 현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시장조사를 통해 개발된 철저한 중국 시장 지향 제품이다. 출시 1년차에 10만 상자, 2년차에 35만 상자의 판매 목표를 달성해 진로는 중국 시장에서 진로 브랜드를 대중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 술의 세계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일부에서는 주류 산업과 관련해 제조 면허, 원료·생산·유통까지 온통 규제 범벅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병마개와 술병마저 세금 부과를 이유로 규제 대상이다.

병마개는 1985년부터 국세청이 지정한 2개의 제조업체로부터 전량 납품받아야 한다. 병마개 개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규제다. 또한 미국·일본·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는 술병 안의 내용물에만 과세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술병까지 세금을 매기므로 고급스러운 병을 사용할 수 없는 구조다. 막걸리의 경우 맛을 높이기 위해 과일을 넣으면 과일주로 분류돼 세금이 5%에서 30%로 높아진다.

과도한 규제에 대한 비판에 따라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주류 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주류 산업 관련 26개 관 과제의 진입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했고 주류 시장의 독점 구조에서 경쟁 체제 도입을 유도하고 있다.

주류 병마개 제조사를 2개에서 3개로 확대하고 신규 사업자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전통주에 한해 인터넷 판매를 허용했다. 그리고 정부는 최근의 막걸리 열풍을 전통주로 확대하고 주원료인 쌀 소비 확대를 위해 전통주산업진흥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막걸리와 전통주 양조장의 발굴과 현대화도 중요하다. 대한탁주협회에 등록된 국내 막걸리 양조장은 700여 곳이다. 그러나 몇 개의 막걸리 제조업체를 제외하곤 대부분 양조장들은 시설이 낡고 영세해 세계적인 명주 양조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