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시작하는 10가지 패션 트렌드

2010년 경인년이 밝은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그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호랑이만큼이나 필자의 눈에 자주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 ‘10’이라는 숫자다.

잡지나 신문을 펴면 온통 ‘2010 패션 10계명’, ‘2010 베스트 주식 10’ 등 10이라는 숫자에 맞춰 작성된 기사들이 넘쳐흐르니 조금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지만 새로운 십 년(decade)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그 들뜬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의자 하나로 오피스에이치를 시작한 지도 10년을 맞아 10이 새겨진 기념 명함을 만들 정도니 10이라는 숫자는 필자에게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패션 역사의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봄·여름 패션계의 화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별다른 고민 없이 스포티즘이라고 말하겠다. 온갖 패션 브랜드들이 앞 다퉈 스포티한 의상들을 내어 놓고 웬만한 잡지들에서 스포티즘이라는 글씨를 빼먹지 않고 볼 수 있으니 확실히 트렌드는 트렌드인가 보다.

버버리 프로섬이 런웨이에 올린 빨강 파랑 아웃도어 점퍼를 보면 벌써부터 가방을 싸들고 캠핑이라도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스포티즘을 위한 팁들을 열거하자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도 모자라겠지만 2010년을 맞아 필자도 특별히 10가지를 꼽아보고자 한다.


◆ 은은한 색상 Pale Colors

봄이라고 해서 여느 해처럼 무작정 예년의 파스텔 톤의 옷을 꺼내려고 했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이번 시즌에는 파스텔보다 색감이 더 옅어져 색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하기도 힘든 페일 컬러(pale color)가 유행할 전망이다.

사실 페일 컬러는 머리가 검고 피부가 하얗지 않은 동양인들이 시도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아이템이기 때문에 페일 컬러를 시도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피부 관리부터 철저히 하고 헤어스타일을 단정하게 스타일링하는 것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배가 나왔다고 생각된다면 페일 컬러는 손도 대지 마라.

갖가지 색상의 페일 컬러들이 벌써부터 런웨이 위에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필자는 그중에서도 베이지색을 추천한다.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베이지 페일 컬러 셔츠를 무심하게 슬쩍 걸치고 나온 남자의 청량감 앞에서는 봄바람도 시원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 홀치기 염색

작년 한 해 여성들이 열광해 마지 않던 홀치기염색이 남성들 품으로 들어 왔다. 홀치기염색은 1960~70년대의 히피들의 흐트러지고 자유분방한 의상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지만 그건 일단 접어두자. 모던한 도시인들에게도 홀치기염색은 멋 부릴 수 있는 포인트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댄디한 정장에 타이 다이(Tie Dye) 기법의 스카프를 매치하거나 슬림한 재킷 속에 천연색으로 염색된 티셔츠를 살짝 보여준다면 답답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감성만은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 프린트

올해 남성복은 캔버스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홀치기염색에서 더 나아가 흩뿌리기, 손글씨 등 여러 프린트 기법들뿐만 아니라 아예 디자이너들이 직접 붓을 들고 옷 위에 붓질을 해대고 있다.

겐조(KENZO)는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단정한 회색 코트를 말 그대로 먹칠했으며 트루사르디(TRUSSARDI)의 청바지는 ‘불이 붙었나’ 착각이 들 정도로 빨강 노랑 페인트가 무릎을 뒤덮고 있다. 무채색 정장에 진절머리가 난다면 때로는 과감한 프린팅으로 자신의 예술적인 감각을 분출해 보자.

◆ 새로운 더블브레스트

더블브레스트라고 하면 아저씨 소리를 들을까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올봄 새롭게 등장한 더블브레스트는 굉장히 캐주얼해졌으니. 이번 시즌 마틴 마르지엘라나 시스템옴므의 더블브레스트를 보자. 가슴을 동여맨 듯 답답했던 버튼들이 아래로 내려가 숨통을 탁 틔워 주고 줄어든 버튼의 수와 전체적으로 짧아진 길이감은 보기에도 경쾌할 뿐만 아니라 활동성도 개런티한다.

클래식(Classic)에 활동성과 스포티즘이 가미된 이른바 뉴 클래식(New Classic)이라고 할 수 있겠다. 캐주얼 데이인데 너무 아저씨 같은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포멀하지 않게 입은 것이 아닐까 걱정되는 남성들은 뉴 더블브레스트를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 데님 셔츠

올 시즌 데님은 상의마저 정복할 기세다. 많은 브랜드들이 앞 다퉈 데님으로 된 셔츠들을 선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온 몸을 데님으로 물들이고 다니던 이른바 ‘죠다쉬’ 세대들에게 데님 셔츠는 청춘의 기억을 담은 추억의 아이템이겠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면 자칫 촌스러워 보일까 손사래부터 친다.

하지만 데님 셔츠로도 충분히 도회적이고 세련된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은은한 하늘빛이 시원한 A.P.C. 데님 셔츠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빠져 단정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넥타이와 매치해도 잘 어울린다.

좀 더 본연의 데님 셔츠 느낌을 살리고 싶다면 티셔츠 위에 단추를 풀어 젖힌 데님 셔츠를 걸치고 D&G 컬렉션의 모델들처럼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 가벼운 외투

스포티브 모드가 런웨이를 점령하며 같이 등장한 ‘가벼움’이라는 용어는 이번 시즌 반드시 기억해야 할 트렌드다. 여름용 가죽 소재인 ‘서머 레더’ 소재의 아이템들부터 불면 날아갈 듯한 비닐 소재의 아우터들이 벌써부터 잡지 화보를 장식하고 있다.

아무리 갖춰 입어도 비닐처럼 몸에 휘감겨 붙으니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 쉽게 배가 나오는 직장인들에게 이 가벼움이라는 트렌드가 환영할만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노출이 많은 여름을 겨냥해 운동을 시작했던 남성들조차 올해는 좀 더 시작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는 것.

◆ 메시

옷들이 가벼워지다 못해 이젠 구멍을 뚫었다. 이번 시즌 메시 소재의 아이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메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나라 돗자리와 같은 죽공예를 생각하면 된다. 보테가 바네타의 가죽 가방들이 이런 짜임으로 되어 있는데 천으로 짠 것보다 여유가 있어 통풍이 잘돼 시원하고 미학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올봄과 여름에 세련되어 보인다.

특히 정장 차림에 적용된 메시 소재들은 그동안 회사에서 트렌드를 뽐내지 못해 답답했던 직장인들이 두 손 들고 반길 만하다. 프라다는 모든 제품들에 메시 소재들을 적용하는 과감한 룩을 선보였고 메시 소재의 가방이나 벨트 등은 시원한 것은 물론이고 그 볼록볼록한 쿠션감이 회사에서 뽐내기에 제격이다.

◆ 반바지

반바지야 언제나 등장하는 아이템이지만 이번 시즌 반바지는 스포티브 모드가 가득하다. 넥타이에 군복 반바지와 군화를 레이어드한 디스퀘어드2의 (캠핑을 가는 캠퍼족들의) 캠퍼룩에서부터 루이비통의 도회적인 스포티즘이 물씬 풍겨나는 흰색 반바지까지 올 시즌 반바지들은 특유의 옥스퍼드 범생이 느낌을 벗어던져 경쾌해지고 젊어졌다.

특히 멋쟁이 소리가 듣고 싶다면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레깅스와의 레이어드를 눈여겨보았다가 과감히 시도해 보도록 할 것. 이제 남성들도 ‘꿀벅지’를 만들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톤 온 톤 코디네이션

창백한 페일 컬러(pale color)와 밝디밝은 비비드 컬러(vivid color)가 공존할 이번 시즌, 톤온톤 코디네이션(tone on tone coordination)을 얼마나 멋지게 해내느냐가 멋쟁이들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스포티브 룩을 쫓아간다고 하더라도 톤 관리가 안 돼 있다면 자칫 등산객 취급 받기 십상이다. 파란색이면 파란색, 빨간색이면 빨간색 베이스 컬러를 유지하며 다양한 톤으로 매치하는 것이 다양한 색상들의 향연 속에서 착장의 단정함을 잡아주는 팁이 될 것이다.

◆ 선글라스

이번 시즌의 선글라스는 보잉도 아니고 고글도 아닌 것이 참 멋들어졌다. 이런 유의 선글라스는 톰 포드가 자신의 영화 ‘싱글맨’ 시사회에 쓰고 나온 선글라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톰 포드가 구찌와 입셍로랑을 떠나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선글라스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가 선보인 스포티한 보잉은 클래식하고 스포티한 이미지를 한 데 엮어 놓은 듯하다. 보잉 특유의 클래식한 감각을 살리면서도 퓨처리즘을 놓치지 않아 착장의 포인트로 활용하기에 제격이다.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